돈지랄 빙수를 위한 변명
우연히 라디오에서 4만원짜리 빙수 이야기를 듣고 바로 신라호텔에 먹으러 갔다. 32,000원에 부가세를 더하면 근 4만원이 맞는 건 맞다. 그러나 하나의 반전이 있는데, 바로 성인 남성 2인분, 여성이라면 3인분도 가능할만큼 양이 많다는 것. 나는 혼자 갔으므로 다 부담을 했지만 만약 나눠 먹는다면 실로 엄청나다고는 할 수 없는 금액이다. 그리고 사진으로 보면 알겠지만, 일단 애플망고의 양이 엄청나다. 두 개를 넣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걸 먹고 다음날 신세계 강남점에서 확인해보았을때 애플 망고는 개당 3만원대 후반이었다. 단가라는 걸 어떻게 계산했는지 모르겠지만 과일의 질을 생각할때 가격 그 자체가 불합리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게다가 빙수 전체를 따져보더라도 맛은 훌륭했다. 주인공인 애플망고는 일단 섬유질이 하나도 없으며, 너무 무르지도 않고 단단하지도 않도록 딱 적당하게 익은 상태였다. 게다가 보통 망고만큼 신맛이 강하지 않은데, 여기에 딸려 나오는 망고 소르베가 그 부족한 신맛을 더해준다. 빙수쪽은 잘 모르는데, 하여간 우유를 얼려서 아주 곱게 갈아 입자가 약간 파코젯 같은 걸로 간 것처럼 알갱이가 아닌 결을 이뤄부드럽고 섬세했다. 여기에 팥을 좀 단단하게 삶아 균형을 더했는데, 아주 살짝 부드럽게 더 삶고 소금을 더했더라면 망고와도 더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딱히 큰 문제는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빙수라는 음식 자체가 4만원인 것을 문제 삼는데, 나는 시각이 좀 다르다. 빙수든 뭐든, 4만원일 수도 있고 40만원일 수도 있다. 그게 값어치를 하는지는 일정 기준을 가지고 반드시 따져보아야만 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비싸기 때문에 욕을 먹어야할 이유는 없다. 비싸지만 돈값 못하는 음식들을 너무 많이 먹어본지라, 오히려 나는 비싸지만 돈값은 하고도 남는 이 빙수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왔다.
절대적인 금전적 가치를 감안했을때 이 빙수가 비싼 건 맞다. 나도 맛있게 먹었지만 올 여름이 지나기 전에 한 번 더 먹으려면 고민을 해봐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비싸다고 해서 이 빙수 자체가 존재해서 안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기에는 우리 사회의 씀씀이가 너무 커지지 않았나? 물론 나에게는 그 씀씀이 자체를 비난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만 거의 모든 상품이 온갖 다양한 가격대로 넓은 선택의 폭을 지니고 있는 현실에서 유독 사람들이 음식에만 보수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이유를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허기를 모면하게 해주는 음식도 의미있지만, 맛을 향한 욕구를 채워주는 음식도 의미있다. 개인적으로는 존재 자체를 문제 삼는 시기는 지났고, 금전적인 가치에 맞는 질을 갖추고 있는지를 따져보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절대적 값어치로는 먹을만한 음식이 따져보면 얼마나 음식으로써 자격이 없는 경우가 많은지, 지속적인 작업을 하는 블로그들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양화와 함께한 음식의 상향 평준화 작업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우리나라 음식의 미래는 없고 그 피해는 결국 고스란히 소비자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한편, 만만하면 음식을 재료별로 분해해서 단가를 따지는 언론의 보도 시각에 문제가 있음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고 싶다. 그러한 선정주의가 결국은 사람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음식의 가격에는 사람의 노동력부터 가게의 인테리어까지, 수많은 요소가 반영된다. 그걸 모르고 단지 단가만으로 음식의 가격을 산정했다면 무지한 것이고, 알면서도 주의를 끌기 위해 일부러 그랬다면 그런 사람들은 다른 건 몰라도 음식에 관한 기사는 쓸 자격이 없다. 그렇게 따지면 취재행위도 하나하나 분리해 기사별 단가 같은 걸 책정해 보수로 주어야 하는 것인가? ‘공감’이니 ‘위로’니, 심지어는 ‘힐링’같이 병신같은 단어조차 이 시대의 화두인 것처럼 남발해가며 ‘소통’이니 인간 중심의 따뜻한 사회를 읊어대는 분위기에서 정작 사람의 역할을 홀랑 빼놓고 음식의 가격을 논하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정리하겠다. 빙수가 비싼게 문제가 아니다. 빙수가 비싼데 비싼 값을 못하는 게 잘못이다. 앞으로 이런 빙수 같은 음식이 더 많이 나오고 가격 자체가 아닌, 음식 자체가 주는 만족에 대해서 보다 더 많은 담론이 있어야만 한다.
# by bluexmas | 2012/08/17 19:03 | Taste | 트랙백 | 덧글(22)
비싼 만큼 가치가 있으면 되는 것이고…
하긴 남 비싼 것 먹는 것 보니까 배알이 꼴려서 에어리안이 튀어나올 심보라면야 뭐 그런 기사도 쓸 수 있겠죠.
소비 양극화의 어두운 면이 우려되는 점은 분명히 있습니다만 이건 업소의 문제라기 보다는 사회의 문제가 영향을 미친 현상이라 봐야겠죠.
빙수가 4만원이네….라는 단세포적 비난은 곱세길 가치가 없다는 점 동의합니다
이상 다큐멘터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