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은 스벅스벅
실패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second guess하지 않는, 스스로의 시각에서 보았을때 참으로 건강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물론 이러한 주관적 건강함은 정신적 여유 따위라고는 가질 수 없는 생활 때문이니 큰 그림을 보았을때 진짜로 건강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도 아주 나쁘지는 않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지하철이 미어터지기 훨씬 이전의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움직여, 문을 연지 얼마 안 되었는지 노트북을 위한 전원이 자리마다 달린, 널찍한 통나무 탁자가 있는 스타벅스의 첫 손님으로 입장 ‘새로 내리려면 5분이 걸리는데요 어쩌구저쩌구’하는 미사여구와 함께 내렸으나 절대 신선하지 않은 커피를 스벅스벅 마시며 하루를 여는, 뭐 그런 삶을 스벅스벅 살고 있다. 목표는 8월 17일까지 그렇게 버티는 거다. 버틸 수 있으면 일단 성공이라고 지금은 생각하고 있으므로 그 이후에 누군가 사실은 실패했노라고 말해도 괜찮을 것 같다. 적어도, 적어도 지금은.
지난 주, 취재를 위해 어떤 건물의 21층 회의실에 갔더니 옛날 생각이 났다. 나에게도 냉방 때문에 한여름에도 긴팔을 입어야만 하는 사무실에서 일하던 시기가 있었다. 직장이라는 곳에서의 성공을 어떻게 일궈내야 하는지 깨달음과 동시에 나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없다는 사실 또한 알아차렸다. 그래서 늘 이야기하지만 나는 순수한 의미에서 그 삶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다음의 삶 같은 건 생각도 해 본 적 없지만 만약 그런 게 있기라도 한다면 그런 환경에서 묵묵히 참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참으로 좋겠다.
도저히 다른 생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여건 덕분에 해봐야 별로 도움될 것 같지 않은 것들을 파묻어 놓은 채로 하루하루 보내고 있지만,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바로 이런 삶을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그러한 일들이므로 결국에 나는 생각하거나 또는 생각하지 않고 사는 형태 둘 가운데 하나로 그러한 일들을 계속해서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도 이전에 받은 이상적인 삶의 매뉴얼은 결국 족쇄가 되어 바로 그 매뉴얼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금 만들어 버린다. 회사 같은데서 정해진 월급 꼬박꼬박 받으며 사는 삶이 좋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으면 이야기 듣는 것 자체가 너무 지겨워져버려 사람들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으면서 살아야만 하는 회사 생활 같은 건 도저히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고, 그래서 스스로에게 편한 길을 찾고 만들어 앞으로 스벅스벅 나아가도 머릿속에서는 암시 아닌 암시의 메아리가 끊임없이 사람을 회의하도록 만든다. 행간을 읽을 필요가 없는 시간과 공간에서도 행간을 읽어야만 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면 그건 사실 실패다. 그리고 그게, 아무리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나는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리는 이유다. 나는 소진할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만들어가면서 살 생각이지만, 그 지난함마저 계승되어야할 이유는 없다. 알고 보면 뭐 그리 어렵고 복잡한 일도 아니다. 실패는 절대 하루 아침에, 찰나의 형태로 찾아오지 않는다. 초슬로우 모션이면서도 되돌릴 수 없는 갈피, 그게 바로 실패다. 바로 지금 이 상황이 실패가 아니라면 딱히 또 다른 무엇일 수가 없다.
# by bluexmas | 2012/06/24 21:50 | Life | 트랙백 | 덧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