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으로 장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옆 벽 알림판의 구 문화강좌 안내문에 시선이 미쳤다. 무슨 교수의 강의라는데 제목이 ‘운명을 바꾸는 #가지 거시기’ 란다. 끝없는 격무에 반 졸고 있다가 잠에서 화들짝 깨어났다. 운명이라니! 운명을 바꾸는 거시기라니! 신도 아닌데 어떻게 운명을 바꾸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또 그걸 사람들이 정말 진지하게 듣는단 말인가?! ‘파스타 한 그릇이라도 좀 제대로 먹을 수 없을까요 뿌잉뿌잉’해도 나는 아직도 정체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무슨 게시판에서 ‘내면이 비뚤어진 인간’이라느니 ‘다른 사람 다 좋다는데 저 사람만 맛없다고 말한다 이상하다’라고 비난받을만큼 냉혹한 현실인데 운명을, 그것도 바꾸는 법에 대해 말하는데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니 그것 참 놀랄 노자였다.

아니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운명보다 파스타를 사람들이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반증일지도 모르니 나 또한 저런 비난을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일지도… 조금 더 생각해보면 진짜 아이러니한 사실은 따로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진짜 운명을 바꾸는 사람은 남의 운명 바꾸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 장본인 아니냐는 것. 강의료 이런 게 제법 짭짤하니까… 말장난을 좀 했는데 어쨌든 운명 운운하는 건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by bluexmas | 2012/06/19 23:43 | Life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by Sran at 2012/06/20 00:18 

‘운명을 바꾸는 #가지 거시기’를 보고 대체 무슨 비뇨기과 광고를 보시고 포스팅하시나 했어요… 야밤에 매우 비뚤어진 사상을 가지고 글을 읽는 저를 매우 탓하며 다시 한번 ‘냉면이 비뚤어진 인간’에서 마구 웃었는데 다시 보니 내면이 비뚤어진 인간… ㅜㅜ 안과 예약할까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네요.

요새 운명을 바꾸는 ~~~라는게 책이나 강좌로 자주 보이는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뭔가 변화를 원하지만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 감도 못 잡고 있는걸 노리고 애매모호하지만 그럴싸한 운명이란 단어로 포장하는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떡밥으로는 참 그럴싸한 떡밥이죠.

 Commented by 번사이드 at 2012/06/20 00:49 

땅덩이에 인구가 많다보니,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서 돈벌어야하나 봅니다..

 Commented by Ji Lee at 2012/06/20 03:16 

거시기?? 진짜 거시기…??

전 포스팅 읽다 보면 잘못 읽었었다는 말이 나올 줄 알았어요. 허헣..

 Commented by 당고 at 2012/06/21 13:31 

아, 저는 진심으로 이 운명을 바꾸고 싶어요.

제가 이 판에서 벗어나야 살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