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대
그 오후가 때로 생각난다.
토요일이었다. 오전에 월드컵경기장으로 건너가 하프마라톤을 뛰었다. 서울에서 참가할 수 있는 마라톤이 거기에서 거기라지만 그보다 지루한 코스는 지옥에서나 가능할 정도였다. 그저 강변을 따라 죽 뛰다가 반환점을 돌아 왔던 길을 되짚어 오는 수준이었다. 설상가상, 해도 내내 머리 위에 떠 달리는 길을 밝혔다. 그저 그런 기록으로 간신히 마무리하고는 집에 돌아와 잠시 넋놓고 있다가, 점심을 먹고는 9호선을 타고 강남에 내려가 세 시간 동안 서서 부업을 했다. 오전에 달리기를 하고 왔노라고 지나가는 얘기를 학생들에게 했더니 평균 열 살 어린 그들이 나더러 ‘체력 좋으시네요’ 라고 한마디씩 던졌다. 찬사로 듣기에 나의 현실은 너무 각박했고, 아직도 그러하다,
삶이 삶이므로 어쩔 수 없이 기대가 따를 수 밖에 없다는 사실 자체는 그럭저럭 받아들일 수 있는데, 그 기대의 수준이랄지 그 수준을 충족시키는 방안에 대해서는 진짜 심각하게 불혹을 앞둔 나이에도 부끄럽도록 무방비 상태다. 집 앞 편의점에서 냉동만두나 한 봉지 사들고 들어가야겠다. 삶의 기대가 나를 움츠러들게 하지만 그래도 만두와 함께라면 버텨낼 수 있다. 만두여, 어둡고 칙칙한 이 중년의 삶을 밝혀달라.
# by bluexmas | 2012/05/12 01:59 | Life | 트랙백 | 덧글(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