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통밀가루 한 포대

별 주저없이 통밀가루를 아주 큰 포대로 샀다. 11.3kg인가 그렇다. 지난 주, 늦은 밤에 다음날 구울 빵의 스폰지를 준비하다가 통밀가루가 떨어져 낭패를 본 경험 덕택이다. 사실은 구례에서 나온 우리통밀이 있어서 실험하는셈 치고 써봤는데, 결과는 예전처럼 처참한 실패였다. 입자 크기 때문인지, 예전에 멀쩡하게 구운 빵의 반죽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질었다. 밀가루를 30%가량 더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바로 그 며칠 전에 그 밀이 생산되는 동네에 취재를 갔다와 다시 써볼까 산 것인데, 정말 완전 낭패였다. 그 신선한 맛이 유기농이라고 말하는 사진의 이 밀가루보다 더 좋아서 오히려 더 안타까웠다.

취재에서 듣기로, 우리밀을 키워서 밀 자급률을 10%까지 올리려는 것이 정부의 목표인데, 수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진지하게 다루려면 취재를 좀 해봐야 되겠지만, 그 동안 개인적으로 써보았던 경험만 가지고 말하자면 내가 쓰는 레시피와는 호환이 전혀 되지 않아서 쓸 수가 없다. 집에서 자급자족하는 수준이라면 밀가루 값이 조금 비싸다고 해서 딱히 문제될 건 없고, 그래서 유기농 밀가루도 비싸게 주고 모셔온 건데 그래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쓸 수가 없다. 글루텐 함량은 그렇다쳐도, 입도 즉 제분한 밀가루 입자의 상태 때문인지 아무리 물을 많이 넣어도 반죽이 원하는 상태가 되지 않는다. 사실 굳이 유기농일 필요도 없으니 적정한 제품을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

거대한 포대만 바라봐도 뿌듯하기는 하지만, 사실 아주 빨리 쓸 생각이 아니라면 집에서 이만큼의 통밀가루를 사는 건 손실 부담이 크다. 밀겨나 눈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산패 또는 변질이 백밀가루보다 훨씬 더 빨리 되기 때문이다. 천상 냉장고에 넣어두는 수 밖에 없다(포장에도 신신당부;). 이제부터 한여름 전까지 집에서 발효시키기 좋은 계절이니 통밀빵을 좀 열심히 구워볼까 한다.

저 밥아저씨의 제품이 정말 엄청나게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품목은 정말 엄청나게 다양하다. 곡식의 가루는 대부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밀과 호밀가루가 수입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레이엄 밀가루 같은 제품도 좀 수입되었으면 좋겠다.

 by bluexmas | 2012/05/10 13:36 | Taste | 트랙백 | 덧글(6)

 Commented at 2012/05/10 14:0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2/05/11 12:25

네 양도하실 거면… 밥이라도 같이 드세요. 바쁘신가봐요?

 Commented at 2012/05/11 12:3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2/05/14 01:05

으악 근데 제가 요즘 좀 정신이 없어졌습니다ㅠㅠ

 Commented by 백면서생 at 2012/05/13 03:02 

밀’가루’의 상태에 대한 기준 자체가 서양 기준인가봅니다. 그러면 각종 요리책이나 레시페, 경험들도 그걸 기준으로 할테고요. 우리 기준이라야 뭐 국수, 전병 등등이고 표준이 없으니 잘 모르겠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2/05/14 01:06

쌀은 원래 아주 곱게 빻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써보다 포기했지만 적어도 제가 써 본 것들은 너무 고와서 빵 반죽이 안 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