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과 빵의 건조, 전분의 노화 사이의 관계
(사진은 본문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음 달 월간 조선 연재<맛있는 상식>에는 아래에서 언급한 내용 등을 담은, “식사빵”에 대한 기사가 실릴 예정이다)
어떤 빵집에서 ‘우리 빵은 기공이 커서 빨리 마른다’라는 문구를 붙여놓는데, 그 집 빵을 좋아는 하지만 빵이 마르는 것과 기공 크기의 관계는 좀 석연치 않다.
일단 빵이 딱딱해지는 건 말라서, 즉 건조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만약 건조라면 빵에 있던 수분이 날아가는, 즉 손실된다는 이야기인데 그렇지 않다는 걸 밝혀낸지가 꽤 오래이기 때문이다. 빵이 마르거나 밥이 굳는 건 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분의 노화(retrogradation)다. 찾아보면 온갖 복잡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빵을 맛있게 먹는데는 별 도움이 안 되므로 ‘수분과 녹말 분자의 결정 구조가 재배치’정도의 수준으로 이해하고 좌우지간 수분은 빵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으면 된다. 보통 ‘하루 지나 굳은 빵이 프렌치 토스트에는 제격’이라고들 말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아서, 오븐에 빵을 따로 구워 수분을 적당히 날려야 커스터드 반죽에 담갔을때 산산히 흩어지는 걸 막을 수 있다.
물론, 전분의 노화니 무슨 결정이니 하는 이야기는 굳이 몰라도 되니까 손님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최대한 쉽게 쓰다보니 결국 ‘기공이 커서 빨리 마른다’라고 말하는 것일 수는 있겠다. 하지만 설사 수분의 손실이 일어난다고 해도 기공의 크기와 손실률이 비례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반죽에서 물의 비율이 높을 수록 기공이 커지는데, 그냥 경험에 바탕한 것이기는 해도 그런 빵들은 대부분 겉이 딱딱할지언정 속살은 부드러웠다. 오히려 통밀이나 호밀 등을 많이 써서 반죽이 단단하고, 그래서 밀도가 아주 높은 빵들의 자른 면이 오히려 더 빨리 “마르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즐기는 입장에서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니까 마무리하자면, 두고 먹을 빵이라면 냉동실에 보관하는 게 좋다. 냉장실은 전분의 노화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온도범위에 속하므로 오히려 상온보다 더 나쁘다. 지퍼백에 담아두는 게 좋다고들 하는데, 은박지에 싼채로 지퍼백에 넣어두었다가 실온에서 해동한 뒤 은박지에 싼채로 200도의 오븐에 넣어서 데우면 수분의 재배치로 인해 노화가 역전되어 다시 빵이 부드러워지고(자른 면은 바삭하더라도 속살은 부드럽다) 그 과정에서 수분의 손실이 일어나지 않는다. 종이봉투에 싼 채로 봉투 표면에 물을 뿌려서 오븐에 넣어도 된다고 들은 기억이 난다.
# by bluexmas | 2012/05/09 08:19 | Taste | 트랙백 | 덧글(7)
…근데 상온이고 냉장실이고 몇 달간 “전분의 노화” 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미국 수퍼마켓산 대량생산 빵은 대체 뭐가 들은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