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 베네딕트
아틀란타에 사는 시골 촌놈이 뉴욕까지 날아가 브런치를 먹을 일이 있었다. 7년 쯤 전으로 기억한다. 소호 근처, 블리커랑 뭐가 만나는 동네였다. 먹을만한 곳 많은 뉴욕이지만 그냥 눈에 뜨이는 곳에 들어간지라 딱히 훌륭했던 집은 아니었던 것 같다. 브런치도 처음이었지만, 에그 베네딕트도 처음이었다. 사실은 내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마주 앉은 사람이 시킨 건데, 궁금했지만 맛 좀 볼 수 없냐고 묻지도 않고 그냥 구경만 했다. 나는 아마 칠면조 햄 따위가 들어간 오믈렛을 시켰을 것이다. 재미없게. 내가 그렇지 뭐. 정확하게 그 여행 이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 이후로 예전보다 더 열심히 혼자 밥을 먹으러 다녔다. 브런치라는 걸 먹을 일도 또 있었지만, 워낙 프렌치 토스트를 좋아해서 에그 베네딕트를 시켜 먹을 일은 없었다. 게다가 남부에서는 잉글리시 머핀 대신 비스킷을 쓰는 경우도 꽤 많았다.
하여간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서 결국 처음 먹게 된 에그 베네딕트는, 내 손으로 만든 것이었다. 딱히 만들어보고자 했던 건 아니다. 어느날 갑자기 잉글리시 머핀을 한 번 만들어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만들어 놓고 나니 그때 생각이 났다. 그래서 홀렌데이즈 소스 레시피를 찾고, 예전에 보았던 비디오의 기억을 살려 수란을 만들었다. 두 가지 모두 처음 만들어보는 것이었다. 편하게 좀 가보겠다고 버터를 녹여서 믹서로 만드는 레시피로 홀렌데이즈를 만들다가 한 번 실패-결국 유화는 되었지만 이상한 냄새가 나서 먹을 수 없었다. 분명 금속과 산의 반응 때문 같은데…-했고, 수란은 의외로 쉽게 만들었다. 마침 해시 비스무리한 걸 만들어 먹다가 남았길래 더했고, 샐러리는 접시에 빈공간 남기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 그냥 담았다.
지나간 사람들은 민망해서라도 다시 얼굴 마주치고 싶지 않고, 또 그럴 일이 거의 없는데 아주 가끔 생각날 때가 있다. 한때 품었던 원망 비슷했던 감정도 세월에 닳아 스스로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가 되어 버렸으니, 뭐 마주칠 일 있으면 그냥 팔꿈치로 한 대 툭 치면서 ‘아 그때는 미리 신신당부했는데 왜 꼭 그래야만 했나염 ㅋ’라고 한마디쯤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피해자 코스프레에 집착하는 건 너무 병신같으니 이제 그만 접을까 한다. 게다가 남 원망하기엔 별로 내세울 것도 없다. 누군가는 7년 동안 돈이며 지위를 벌었을텐데, 나는 잉글리시 머핀 구워서 에그 베네딕트나 간신히 만들게 되었으니. 이거 뭐 세상 사는데 아무런 도움도 안 되고. 생각이 나서 그때 사진을 들여다보니 나는 꼭 털 홀랑 빠진 새 같아서 스스로 들여다보기도 민망하다. 지나간 일들은 때로 지나가서 그냥 다 너무 우습게 느껴진다. 기억할 필요 없는 일들만 골라서 기억하면서 잠 못자는 것도 병이다.
# by bluexmas | 2012/04/23 03:08 | Taste | 트랙백 | 핑백(1) | 덧글(11)
Linked at The Note of Thir.. at 2012/04/23 12:25
… 바로 앞 포스팅의 에그 베네딕트 시발점이 되었던 잉글리시 머핀. 어딘가에서 먹을만한 잉글리시 머핀을 파는지 잘 모르겠다. 아주 어렸을때 ‘코알라’ 상표가 찍혀 팔던 것을 맛 … more
만들어 드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