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동] 조이(Zoe)-슈(O), 크림(X)
근처의 다른 가게에 갔다가 롤케이크의 이야기를 듣고 들르게 되었다. 태극당 롤케이크를 들었다 놓았다 할 정도로 몸이 롤케이크를 미친듯 부르짖고 있던 시기였다. 일단 슈크림부터 먹어보자는 생각을 하고, 우여곡절 끝에 네 종류의 슈크림 모두를 가져오게 되었다.
슈는 거의 어디에서나 살 수 있지만 그렇다고 만들기 쉽거나 맛있는 건 아니다. 슈에 크림을 더하면 그 수분 때문에 질겨지는데 워낙들 씹는 맛을 좋아하다보니 생각보다 크게 개의치 않는듯 싶다. 어쨌든, 슈만 놓고 보았을때는 괜찮았다. 수분을 많이 빨아먹지 않았는지 별로 질기지 않았으며 맨 윗쪽은 바삭하기까지 했다. 그러므로 통과. 하지만 크림은 그렇지 못했다.
지방이 들어간 제과류의 경우 먹고 난 뒤 뒷맛이 중요하다. 시큼한 맛의 여운이 긴 제품들이 대다수인데,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다고 나는 아직도 정확하게 이러한 맛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알고 쓰는 재료의 범위 안에서는 이러한 맛이 나지 않는다. 유제품 선택의 폭이 넓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제과제빵에 쓸 수 있는 생크림은 꼴랑 두 가지고, 그 둘도 별로 차이가 없다. 그냥 동물성 100% 생크림이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초고온멸군(Ultra High Temperature Pasteurization) 또한 하지 않은 제품을 의미한다. 이 공정을 거친 제품은 맛도 없어질 뿐더러 잘 올라오지 않아서 카라기난 등의 증점제를 섞어서 내놓는다(카라기난이 딱히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선택하지 않을 뿐). 마트에서 파는 네모난 팩의 ‘휘핑크림’은 바로 이런 제품이다. 종종 수입 크림들도 있는데 이 또한 증점제 포함 유무를 떠나 초고온 멸균공정을 거친 것들이다.
이날 먹은 슈의 크림을 무엇으로 만들었는지까지 알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케이크류가 먹고 싶을때 종종 들르는 집들의 제품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깔끔한 뒷맛은 아니었다. 거기까지만 이야기하면 될 것 같다.
식빵도 팔길래 맛있어보여서 사왔는데, 이렇게 단맛이 두드러지는 식빵은 처음 먹어보았다. 집에서 구워먹는 식빵들에도 적당한 양의 설탕이 들어가는데 이 정도의 단맛은 나지 않는다. ‘식빵’이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무색할 정도였다. 그 식빵 한 가지만 파는 김 아무개 제과점에서 파는 것도 그렇고, 일본의 영향을 받았는지 이렇게 설구운 빵들은 사실 빵맛이 난다고 하기가 어렵다. 카라멜화가 주는 특유의 맛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음식은 양념을 많이 하고 갈수록 자극적인 쪽으로 가면서 빵이나 외국 음식은 그럴 필요 없는데 “담백한” 것들만 찾는 현상은 늘 말하지만 참으로 모순이다.
* 어느 동네 홈플러스의 유제품 코너에서 두 40대쯤의 가정주부가 나누는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동물성만 쓰면 잘 올라오지 않으니까, 이런 걸 섞어서 써야 돼.”
# by bluexmas | 2012/04/04 09:42 | Taste | 트랙백 | 덧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