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articles of Depression (1)
뚜렷한 아이디어는 가지고 있었지만 쓰는 게 너무나도 구차하다는 생각을 도저히 지울 수 없어 마지막 데드라인을 그냥 허송세월 넘겼다. 쓰는 게 구차하다는 생각 드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다. 근데 요즘 좀 구차하다. 그래서 슬프다. 우울하다.
“쟤는 블로거야”라는 말을 (나보다도 더 뚜렷한 직장이 없어 보이는 인간들에게) 듣는 것도 기분 나쁘지만, 그와 맞먹는 이야기들도 꽤 있다. 그게 뭔지 생각해보았다.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원인들이다. 나는 왜 우울한가.
1. “다른 일은 안 하세요?”
이 말은 참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나는 대개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나는 참으로 부정적인 인간이 아닌데 사람들은 그렇게 보니까 그 기대에 맞추기 위해서.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과연 이 일은 어떻게, 또는 얼마나 시간을 들여서 해야 하는가? 얼마 전 어떤 모임에 자리했던 적이 있다. 뭐 나는 이런 사람이지만 나머지는 거의 대부분 등단한 작가거나 그에 준하는 지명도 또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술잔이 몇 순배 돌고 나서 또래의 기성 작가와 먹고 사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초면인 그는 내가 올해 전반기에 부업을 하다가 (망해서) 때려쳤다고 했더니 안타까워서 하면서 이렇게 병행하는 게 참 힘들지만 그래도 해야하는 현실이 아니냐는 의견을 피력했다.
정말 현실만 놓고 보면 그의 의견에 200% 공감하는데, 한 번 더 현실을 들여다보면 그러지 못하는 이유도 있다. 전반기를 돌아보면 나는 정말 미칠듯 현실에 만족할 수 없었다. 부업이라는 건 하지만 돈은 절대 들어오지 않았고, 시간은 온통 빼앗겨 글을 쓰는게 필요한 일들을 거의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았다.
내가 돈을 받고 쓰는 글들의 대부분은 나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정체성과 상관 없는, 굳이 분류하자면 지식 전달을 위주로 하는 것들이다. 달리 말하자면 사생활이나 개인적인 수준의 감상을 바탕으로 써야만 하는 글이 아니라는 의미다. 물론 그런 글을 쓸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자체에 관심을 기울일만한 사람의 수는 분명히 한정되어 있다.
물론 감상이나 사생활 위주로 쓰는 글들이 딱히 더 쓰기 쉽지는 않다. 어쨌든 별개의 문제로 내가 밥값을 벌기 위해 쓰는 글들을 위해서는 연구까지 거창하지는 않아도 꽤 많은 시간의 취재나 자료 수집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건 어딘가에 속한 기자처럼 사람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결국은 모두 사람이 빚어낸 결과물이겠지만 나는 주로 문헌에 기대는 경향이 있고 그건 분명히 학교에서 얻은 방법 또는 습관이다. 말이 길어졌는데, 그냥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모든 과정은 ‘다다익선’이라는 한 가지 원칙에 기댄다. 어차피 자료는 거의 무한정이므로, 시간이 많을 수록 자료를 소화 흡수해서 내 방식대로, 또는 각각의 매체가 원하는 대로 더 잘 가공할 수 있다.
올 전반기에는 이러한 과정을 내가 원하는만큼 가지지 못했고, 나는 그 점이 가장 힘들었다. 하루가 24시간이라지만 사실 시간이 없어 생각을 못하지는 않는다. 진짜 문제는 부업 위주로 생각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생각할 수 없었고, 또한 시간이 나도 육체적 정신척 피로로 인해 원하는 만큼 깊이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부업이라는 게 어차피 돈을 많이 버는데 망한 건 정확히 아니었어도 오히려 망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아쉬움이 없으니까. 사람들마다 가치관이 다르겠지만 나는 이 일을 도저히 부업으로 삼을 수 없다. 물리적인 시간을 쪼개는 것과 정신적인 시간을 쪼개는 건 굉장히 다른 문제다. 전자는 거의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후자는 때에 따라 불가능하고 그 경우 콘텐츠의 깊이를 위협한다.
2. “언제까지 이렇게 일하실 거에요?”
얼마를 벌어서 어떻게 먹고 쓰고 사는지 뭐 그런 이야기를 여기에 조목조목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냥 핵심만 말하자면, 지금 현재 하는 일로 받는 보수만으로 그럭저럭 먹고 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는 않다. 뭐 미래를 위한 준비? 이런 건 대기업 직장인이나 꿈꿀 수 있는 것인지 몰라도, 어차피 인간관계 별로 없고 오랜 해외 생활에 술마실 친구 이런 거 없어진지 오래며 그러느니 혼자 마시거나 집에서 뒹굴면서 뭐라도 들여다보는 걸 좋아하는 종류다보니 딱히 돈이 많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사실 쓰는 돈의 거의 대부분은,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지만 먹는데 들어간다. 이 문제는 참으로 이중의 고통이다. 현재 나는 음식과 건축 글을 6:4, 또는 7:3의 비율 정도로 쓴다. 건축글에는 비용이 안 들어가지 않느냐고 누군가 물어볼 수도 있겠는데, 그게 다 예전에 다녔던 여행 비용의 간접 또는 초 지연된 비용의 회수라고 보면 된다. 음식은 보다 더 현재진행형이다. 반드시 먹어보고 써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 경험이라는 요소는 종종 사람을 유혹에 빠뜨린다. 언제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가지 않은 곳을 간 것처럼, 먹지 않은 것을 먹은 것처럼. 외국 셰프의 음식이라면 내가 다 먹고 쓸 수가 없으니 대신 공부할 자료라도 있어야만 한다. 적어도 유튜브 비디오 이상은 되어야 하며, 요리책이라도 한두 권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어쨌든 백 가지에 대해 쓰면 백 번 모두 경험에 의존할 수가 없다. 그러고 싶으나 단순히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정황 때문이다. 가끔 부득이하게 그런 일이 벌어지는데 그러면 때로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므로 웬만하면 경험하거나 아는 것, 또는 금방 자료나 정보를 습득해서 소화 흡수 및 재분배가 가능한 쪽으로 글감을 찾는다.
이 얘기를 왜 이렇게 길게 늘어놓고 있지? 아, 생각났다. 수입의 재분배 경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던 참이었다. 음식 관련 기고의 경우, 다음 글을 위해 재투자 되는 비율이 꽤 높다. 내 글의 대상이 되는 음식점들은 재료비가 전체 비용의 30%가 되면 돈 벌기가 어렵다던데, 나는 웬만하면 50%, 100%는 치지 않았지만 80% 정도가 되는 경우도 많다. 지난 달 나는 케이크에 대한 기사를 쓰고, 마지막에 갈만한다고 생각하는 집의 목록을 덧붙였다. 이러한 목록에 다섯 집 정도가 소개되었다고 하면, 3배수는 아니더라도 2배수는 들러서 먹어봤다고 생각하면 된다. 음식 자체의 질도 고려해야 하지만, 지역적인 안배(?) 또한 당연히 고려해야 한다. 내가 홍대 근처에서 자주 나다닌다고 해서 홍대쪽의 케이크 가게만 다섯 군데를 고를 수는 없다. 독자층을 고려한다면 선호지역이 아닐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 지역적인 분포를 고려하는 와중에, 예전의 경험이나 새로운 정보로 인해 고려해봐야 된다고 생각되는 집이 있다면 반드시 들른다. 예전에 들렀던 곳이라도 아주 확신이 서는 곳이 아니라면 반드시 다시 들러봐야 한다. 음식 외적인 이유로 도저히 넣고 싶지 않으나 음식이 괜찮다면 또 내가 가지고 있는 비호감과 상관없이 포함시켜야 한다. 어느 동네의 어떤 케이크 가게는 몇 번 먹어봤는데, 기사를 위해 마지막으로 확인하고자 또 들렀을 때 셰프가 매장 앞에서 아래의 쿡과 참으로 즐겁게 담배를 피우고 있더라.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음식 만드는 사람이 매장 앞에서 버젓이 담배피는 것인지라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케이크 자체의 수준이 내가 생각하는 만큼이라고 해도 이러한 점을 고려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냥 그 자체만으로 판단을 해서 혹시라도 이러한 추천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정보를 준다는 단계까지만 내가 신경써야 하는 것일까? 이게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나에게는 그럴 수가 없다. 늘 하는 얘기지만, 내가 쓰는 글이 누군가의 생계에 영향을 미친다면 신중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게뷔르츠트라미너’라는 품종으로 만든 와인이 있다. 알사스 지방에서 많이 나오니까 간단하게 ‘리슬링 사촌’이라고 하면 될 것 같은데 그게 또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리슬링처럼 달거나 꽃 또는 과일향이 두드러지지도 않는다. 굳이 리슬링 사촌 어쩌구 하는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다음 달에 실릴 기사에 이 와인을 언급할 상황이 생겼기 때문이다. 치즈에 관한 기사를 쓰는데,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을 찾아보니 많은 사람들이 가장 무난한 선택으로 꼽은 것이 바로 이 게뷔르츠트라미너였다. 나도 여태껏 마셔본 경험이 없는데, 기억하기로는 우리나라 와인 매장에서도 흔히 본 기억이 없었다. 짐작하건데 마트에서는 가능성이 없고, 백화점을 위주로 돌아보니 만원대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리슬링과는 달리 소매가 57,000원에서 시작하고 그마저도 몇 종류 없다. ‘이게 아니고 리슬링이 치즈랑 더 잘 어울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게 아니니 어쩔 수 없이 나는 이거라도 사서 맛을 봐야만 했다. ‘치즈와 와인의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프랑스 알사스 지방의 게뷔르츠트라미네를 치즈의 가장 무난한 짝으로 꼽는다’라는 한 줄을 쓰려면 어쩔 수 없지 않겠나, 아니면 내가 너무 강박에 휩싸여 일종의 자위를 하고 있는 걸까? 거기에 기사에 언급하기 위한 치즈를 그저 엔트리급으로만 사는데 15만원 가까이 들었다는 이야기는 차마 해서 뭐에 써먹을지.
…여기까지 쓰고 나니 너무 힘들어서 다 못 쓰겠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잡담, 우울, depression
# by bluexmas | 2011/12/13 03:31 | Life | 트랙백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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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비나 여러 가지 경험들은 아주 오랜 기간 유예되었지만 결국에는 비용이고 회수되어야 하는데 통상 그것에 대해서는 원가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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