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처음 한 반 년쯤은, 덮어놓고 돌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면 그게 얼마나 멍청한 생각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런 삶도 다 생활인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게 불가능해진 상황이라면 돌아갈 수도 없고 가서도 안 된다. 그런 생각으로 쭉 살았다. 그래도 종종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날이 있었는데, 그건 사실 반드시 ‘그곳’에 대한 생각이라기 보다 그냥 ‘이곳’아닌 어딘가, 또는 그저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빚어낸 환상일 뿐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간만에 찾아온 기회에, 별 고민없이 그곳을 행선지로 택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가봐야 속만 상할게 뻔하니까.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생활인이 아니므로, 아무리 낯익은 느낌이 든다고 해도 나는 그저 이방인일 뿐이다. 낯선 곳에서 이방인 취급 당하면 더 속상하다.
원래는 겨울의 땅에 갈 계획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그랬는데, 지금까지 끌어왔더니 갈 자신이 없어졌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길래, 만만하면서도 아직 호기심을 품고 있는 곳에 가기로 했다. 그때 다 잇지 못했던 점들을 마저 이으러 간다. 돌아오면 기대만큼 좋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으면 좋겠다. 3일 동안 원고지 60장 채우고 이제서야 짬을 냈는데, 아직도 설거지가 한 무더기 남았다. 목욕탕에 들르고 싶은데,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다.
# by bluexmas | 2011/11/07 05:32 | Life | 트랙백 | 덧글(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