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파리 같은 짜증이 꼬인 월요일
단지 월요일이라는 이유만으로 짜증을 느낄 많은 직장인들과 고통을 분담한다는 취지로 나는 오늘 날파리처럼 자질구레한 짜증들을 마음껏 만끽하며 하루를 보냈다.
얼굴이 좀 길고 눈이 쳐졌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모 연예인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이런 얘기를 꺼내면 누군가는 ‘에 뭐 그래서 네가 얼굴 좀 생겼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냐’라는 반응을 보이던데 그럼 제발 좀 닥쳐달라고 말하고 싶다. 그가 설사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라고 해도 나는 그와 닮았다는 소리 따위 듣고 싶지 않다. 나는 그보다 못생겼고 키도 작고 돈도 없고 뭘 하거나 상관없이 훨씬 못 나가지만 그냥 나다. 이 빌어먹을 ‘나는 나다’라는 이야기는 스물 세살쯤까지만 쿨하게 써먹고 그 뒤로는 버려야 할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나이 먹으면 먹을 수록 찌질하게 사골 우려먹듯 써먹어야 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성별도 생김새도 모호하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가며 자신이 되는 과정을 거치고 정점을 찍은 다음 다시 늙어가며 모호해진다. 어쨌든 그냥 나는 나일 뿐인데 이렇다는 이유로 누군가와 비교하고, 또 저렇다는 이유로 또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면 심사가 불편해진다. 만약 내가 고도비만인 두 사람을 놓고 ‘니들은 고도비만이니까 닮았다’라는 논리를 펼치면 두 사람 모두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할 것이며 나는 졸지에 개싸가지 없는 인간이 될 것이다. 고도 비만이 너무 극단적인 예라고 생각한다면 그냥 키가 2m인 사람 둘을 비교한다고 바꿔보자.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렇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두 사람은 그깟 키 말고도 다른 많은 측면에서 자신은 비교의 대상이 되는 상대방과 다르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논리를 궤변의 영역에 이를 때까지 길게 늘리면 손가락이 다섯 개라는 이유로 비슷하다고 생각할 것이며, 가다보면 궁극적으로는 남자라서 어떻고 여자라서 저떻다는 별로 설득력 없는 일반화에 이르게 될 것이다. 요점은 그거다.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 만인의 자유인데, 그게 정답일 확률은 별로 없으며 혹시라도 확인하고 싶어 나에게 얘기를 해줄 필요도 딱히 없다. 어떤 답을 내밀어도 내가 그걸 정답이라고 말할 확률은 거의 없으니까. 심지어 진짜 정답이라고 해도 심사가 뒤틀려 아니라고 말할 확률이 높다. 나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래, 나는 이 블로그를 포함한 온갖 곳에 나를 조각내어 글을 써서 싣는다. 그러나 그 조각들을 모두 찾아 맞춘다고 해서 그게 내가 되지는 않는다. 그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래서 ‘글을 보면 사람을 안다’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참으로 오만에 가까운 구석이 있다. 알 수 있을지 몰라도 그건 전부가 아니고 전부여서도 안되니까. 아니면 감출 줄 아는 자신을 글에 드러내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어서 그런 소리를 생각없이 하는 듯.
컨디션도 별론데 뭐 이런 글을 써대고 있는지 나도 참…
내시경을 제외한 나머지 검사의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갔다. 손님이 많아 기다려야 된다고 해서 병원 건물 바로 옆의 시장을 둘러보았다. 떨이로 파는 바나나와, 시장 건물 앞에서 따서 파는 듯 못생긴 토마토를 사서 돌아왔다. 딱히 큰 이상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머지 자질구레한 것들은 사생활이므로 굳이 여기에 풀어놓을 필요는 없다. 돌아오는 길에 운동을 하고 저녁을 먹은 뒤 나가 커피를 마시자 기분이 좀 나아졌다. 그러나 버스에서 내리는데 뒤에 있던 아줌마가 먼저 내린 딸을 쫓아가려고 대각선으로 점프해서 내리다가 그대로 내 발을 밟았다. 그러니까 오늘은 이런 월요일었던 거지.
# by bluexmas | 2011/10/18 00:51 | Life | 트랙백 | 덧글(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