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음악에 관한 온갖 잡담
1. 처음으로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를 여러 곡 들어보았다. <우리 지금 만나> 말고는 끝까지 들어본 노래가 없었다. 지루해서 끝까지 들을 수가 없었다. 곡 자체에 대한 느낌은 여전히 그런데 자꾸 의식적으로 ‘전략적으로 차용한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복고풍의 사운드는 좋았다. 처음 기타학원을 다닐 때만해도 합주실에는 해몬드 오르간으로 추정되는 키보드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 음색을 습관적으로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텔레비전 끄자마자 제목이 기억 안 나는 마지막 곡의 사운드가 특히 좋았는데 하세가와 요헤이가 딜레이라고 추정되는 무엇인가를 랙에서 만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15년 전 델리스파이스 앨범에 참여할때 처음 보았는데 별로 변한 게 없는 듯. 뭘 만지는지 모르겠는데 무대쪽을 보고 용틀임하면 더 멋있지 않을까 싶다. 듣고 있으면 ‘아, 똑똑하네’ 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가지 의미로. 근데 왜 산울림을 머리에서 지울 수 없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심지어 산울림 노래도 즐겨 듣지 않았는데.
2. 정말 나는 산울림을 딱히 즐겨 들었던 적이 없다. 지금 수퍼그룹으로 추앙받는 어떤 날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 새>와 같은 노래들을 좋아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종교적인 메시지에는 별 관심 없었지만. 어릴 때, 특히 방학에는 어머니가 출근하시면 하루 종일 라디오를 끼고 살았는데 주로 MBC를 들었다. <2시의 데이트>를 즐겨 들었지만 끝나고 네 시부터 하는 가요 프로그램을 더 좋아했던 걸로 기억한다. 가시나무 새와 같은 노래들이 주로 나왔다.
3. 기타를 처음 배운 건 쌍팔년 초였다. 당시 조지 마이클의 <Faith>앨범이 나왔는데 그 주크박스 옆에서 가죽잠바 입고 기타치는 모습이 멋있었다. 그래서 6만원짜리 기타를 4만 5천원에 사서 학원에 다녔다. 어머니의 거래처에서 좀 싸게 살 수 있었지만 완전 불량품 기타여서 반년도 안 되어 넥 부분 접합이 쪼개져 버렸다. 그때의 아쉬움을 아직도 핑계처럼 지고 살면서 좋은 통기타에 대한 욕심을 부리지만 손이 구려서 안 사는 게 맞다.
4. 당시 학원에서는 70~80년대 가요를 중심으로 배웠다. 노사연도 이름과 달리 사연 있는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 <님 그림자>라고. 꽤 좋다.
5. 전기 기타는 고등학교 들어갈 때 샀다. 메탈리카 때문이었다. 그 기타는 아직도 가지고 있다. 한 번 싹 고쳤는데 세월은 어쩔 수 없는지 픽업 하나가 끊임없이 하울링을 만들어 내더라. 퍼포먼스 할때 쓰면 좋을 것 같다. 합판에 버즈아이 메이플 흉내낸 걸 붙인 국산 베스타였다. 나의 꿈은 솔로를 하는 것도 아니고 제임스 헷필드처럼 리듬기타만이라도 멋지게 치는 것이었으나 1/2 빠르기로도 칠 수 없어 포기했다. 사실 나는 손재주가 있는 듯 없다. 다 할 줄은 아는데 잘 하는 건 없다.
6. 들국화도 좋아했지만 전인권을 좋아한 적은 없다. 언제나 과잉이라고 생각했다. 최성원을 훨씬 더 좋아했다. 그의 노래나 목소리가 더 들국화답다고 생각했다. <사랑한 후에> 같은 노래를 좋아는 하지만 들국화 아닌 전인권의 노래라고 생각한다.
7. 우리나라 메탈 음악은 <Friday Afternoon>앨범부터 기억하는 것 같은데, 언제나 연주력은 되지만 작곡이 안 되어 ㅈ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국내 잡지에서 기타의 신이라고 띄워주던 임덕규며 안회태 같은 기타리스트들도 연주를 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앨범을 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곡들을 내놓곤 했다. 그런 면에서 차라리 90년대 초반까지의 블랙신드롬이 낫다는 생각을 했다. 92년 인천인지 부평 시민회관에서 비디오 감상회+메탈 밴드 공연을 본 적이 있다. 난생 처음 보는 공연으로 기억하는데 나중에 몽키헤드로 들어가 가요 탑텐 출연으로 이미지를 구긴 최종문의 무슨 밴드(그때 막 나온 세풀투라의 케이오스 에이디 같은 곡들만 했다. 어느 공연에서는 두 번 했다는 소문도 있었는데…;;)와 당시는 그래도 정말 본토 분위기의 스래시 메탈을 한다고 모두들 좋아했던 나티(그러나 앨범은 내지 못했다. 정형섭 맞나? 목소리는 꽤 좋았는데. 나중에 터보로 갔지만 뭐 그냥…), 블랙신드롬이 나왔다. 블랙신드롬은 정말 공연 잘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음악 동호회 사람들로부터 웃긴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여기에 쓸 건 아니고.
8. 그렇게 ‘수퍼 뮤지션’ 운운하며 잡지에서 띄워주는데 정작 앨범이 나오면 별로인 경우가 꽤 됐다. 특히 신윤철. “대철이는 기타를 잘 치지만 윤철이는 천재” 운운하던 신중현의 인용구까지 들먹이며 수퍼밴드라고 말했던 원더버드는, 막상 뚜껑을 열어보자 그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기회만 닿으면 그렇게 써댔던 박 아무개씨도 막상 앨범이 나오자 실망스러웠다는 식으로 썼던 듯. 차라리 솔직해서 좋았다. 그 뒤로 원더버드는 누구의 동생이라고 알고 있는 여자 보컬을 들여 알 수 없는 앨범(들어보지 않았다)을 내고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신윤철 새 앨범이 나왔다고 하는데 별 관심은 없다.
10. 그 박 아무개씨는 정말 노력을 많이 하고 공헌도 많이 하셨다고 생각하나 솔직히 글은 너무 못 쓴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10-1. 그 박 아무개씨, 같이 잡지 <아래>를 만든 성 아무개씨 이런 분들과는 연결 고리 같은 게 있었다. 11번의 <뜨거운 음악> 창간 기념 음악 퀴즈 프로그램 결선 참가자라는 것인데… 정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라 끄집어 내기도 민망하다. 박 아무개씨의 글은 읽기 괴로왔지만 잡지는 전반적으로 튼튼했고 씨디도 훌륭했다.
11. 먼 옛날 옛적, 그때까지만 해도 대표적인 음악잡지였던 <뜨거운 음악>에서는 기자들 사이의 반목 같은 것들이 불거져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웃기는 얘기 많은데 길어질까봐 여기까지만.
11-1. 사실 어릴 적 꿈은 음악잡지 기자였다. 11에서 문제가 되었던 구태의연함의 원인이 아직도 현역인 음악 저널리즘쪽에는 별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문제는 그런 옛날 세대 아닌 사람조차 구태의연함을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11-2. 힌트: “케미칼.”
12. 우리나라 인디 음악은 그 출발부터 좀 삐끗했다고 생각하는 게, 생각 없으신 분께서 레이블 이름을 <인디>라고 붙여 떡허니 나타나셨기 때문에… 조금 과장하자면 출판사 이름이 <출판사>거나 식당 이름이 <식당>인거랑 비슷한 꼴일까?
13. ‘인디’라는 딱지의 얘기를 하자면 원 아무개라는 분이 내셨던 음반 <나쁜 맛>을 반드시 얘기해야 한다. 제목처럼 나쁜 맛이 남는 앨범이었다. 물론 그 제목이 정말 나쁜 맛이라는 의미에서 나온 건 아니라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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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bluexmas | 2011/08/18 02:01 | Music | 트랙백 | 덧글(7)
2. 저도 산울림을 최근에야 알게되었죠.
3. 저도 쌍팔년도 빛을 볼때였죠.
4567음…이런 경험은 없습니다.
8.원더버드는 ‘옛날사람’ 이 생각나네요…집에 카세트 있던데…
9~13. 알듯말듯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