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대신 닭” 만두의 하루
이런 날씨에는 사실 집에 쳐박혀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밖에 나갈 수밖에 없었다. 파스타를 먹으러. 물론 그것도 일이기는 했다. 내가 만들어 내는 일이다. 안해도 그만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한발한발 내디디는 게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공기가 이렇게 무거운 날은 정말 처음이었다. 공기 안에 빗덩어리가 들어간 느낌이랄까. 오늘은 싸대기와 아구창을 동시에 맞는 느낌이었다. 사실은 그렇게 안해도 될지 모르겠으나, 이렇게 먹으러 갈때는 반드시 긴바지를 입어서 더 힘들다. 반백수인 나는 여름 내내 반바지로 산다. 그래서 이렇게 더운 날 그런데를 가면 더 고통스럽다. 물론 반바지를 입고 가도 될지 모른다. 오늘 간 곳에서도 반바지 입고 온 남자손님을 봤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못하겠다. 딱히 격식을 엄청나게 차리자는 건 아닌데, 그냥 그게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일의 연장선상에서 가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일은 일처럼 해야 한다. 성게크림 파스타를 첫 입 먹었는데 뭔가 패류의 껍데기라고 생각되는 것을 씹었다. 다시 내올까 물었지만 귀찮으므로 됐다고 했다.
약간의 반전이 생겨 긴바지를 입은 것이 일종의 호재가 되었다. 갑자기 일에 관한 무엇인가가 생겨 예정에 없는 미팅을 했기 때문이다. 모르고 나왔다고 해도 반바지를 입고 일에 관한 미팅을 하기는 좀 그렇지 않나. 어쨌든 이후 끔찍한 두통이 찾아왔다. 날씨탓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보다도 생각이 미친 듯이 쏟아져서 그런 것 같다. 가끔 그래서 주체를 못할 때가 있다. 커피를 몇 잔 마시고 난 다음에도 두통은 가시지 않았다. 혹시 만두를 먹으면 나아질까 싶어 윤씨밀방에 갔으나 영업을 하지 않았다. 이번이 세 번째다. 예전에 어느 중국집에 세 번 찾아간 적이 있는데, 세 번째는 망했더라. 윤씨밀방이 망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아, 지난 번의 포스팅에 업데이트를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식으면 후추맛과 무말랭이의 그것이라고 생각되는 냄새가 너무 두드러진다. 고민하다가 꿩 대신 닭이라고 본향 칼국수에 들러 만두(5,000)를 샀다. 합정역으로 가는 길에는 지난 달에 가르치던 학생과 우연히 만났다. 남자친구의 인상이 좋아보였다. 광역버스를 개조한 6712를 타고 왔는데 이건 좌석이 많고 복도가 좁아 서서가기 불편했다. 집 앞 마트에 파스퇴르 우유 두 병이 남아 있어 얼른 모셔왔다. 어제도 MBC 뉴스에서 우유 파동에 관한 기사가 나왔는데, MBC의 유제품에 관한 기사는 어째 내가 가는 이마트 가양점에 계속 찍는 것 같다. 처음 갔던 날도 찍었던 기사가 그날 저녁 뉴스에 나왔다. 집에 와서 만두를 먹어보니 차라리 윤씨밀방 것보다 나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두 만두는 조금 다르다. 이 만두에는 두부가 많이 들어있다. 물론 꿩은커녕 닭도 들어있지는 않다. 잠깐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계속 머리가 아파 생각해보니 두통약을 안 먹었다는 걸 알았다. 주섬주섬 챙겨 먹었다.
일하고 있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꾼이 되고 싶다. 그러나 사회에 딱히 빚진 건 없다고 생각한다. 과체중 4급으로 현역 갔다온 순간, 이 사회에 진 빚은 그게 뭐든 다 갚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다.
# by bluexmas | 2011/08/05 00:21 | Life | 트랙백 | 덧글(8)
비공개 덧글입니다.
문화적 인프라가 참으로 부족한 대한민국입니다.
저 또한 그리되길 갈망하나 끼지는 못하겠지요.
결국…종국에는 문화만 남을 듯 합니다.
어디에서 누군가랑 얘기를 하는데 책을 좋아한다고 그래서 “집에 들어오는 책들이 좀 되는데 드릴까요?” “네” “아 그리고 제 책도 있어요” “네 나중에 시간 되면…”
제가 주려는 책을 쓰는 사람들보다 못한 거죠 제가, 아니면 제 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