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길]구 스테이크 528-온도계는 안 되나요?
구 스테이크를 갔다 온지도 사실 꽤 되었다. 에스콰이어에 <우월한 스테이크의 디테일>을 게재한 것도 몇 달 전의 일이니까. 시간이 좀 지났으므로 간략하게 정리만 하겠다.
사실 결론은 아주 간단하다. 이날 먹은 스테이크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었다. 숙성의 정도는 논외-솔직히 말하자면 귀찮아서 말하고 싶지 않은데 별 감흥 없었다-로 치더라도, 나머지 부분에서 모두 기대에 못 미쳤다. 기억이 확실하지 않은데 남아 있는 것 가운데 250/300그램짜린가가 있다고 해서 그걸 주문했다. 여러번 글을 통해 언급한 것처럼 맛있는 스테이크의 첫번째 조건-조리의 측면에서-은 크러스트를 통한 식감의 대조다. 그리고 이 식감의 대조는 적정 무게를 통해 두께를 확보하는데 있다. 그것이 내가 보통 레스토랑들의 테이스팅 코스 스테이크에 딱히 신경쓰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크러스트가 스테이크의 식감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마이야르 반응을 통해 맛을… 이 부분은 너무 많이 이야기해서 나도 지겹고 읽는 분들도 지겨울테니 넘어가기로 하자.
(미디엄 레어?)
이렇게 무게로 인해 훌륭한 크러스트를 만들 수 있는 두께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스테이크의 크러스트는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다. 사실은 스테이크의 구운 정도(“템퍼?”ㅋㅋ이 짓도 재미없으니 이제 그만해야 되겠다-_-) 자체가 추천 받은 -물론 미디엄 레어- 정도에 맞게 나오지 않았다. 바에 앉아서 조리하는 걸 쭉 지켜봤는데(딱히 지켜보고 싶지 않아도 할 일이 없으므로 결국 지켜보게 된다), 스탭들 모두 온도 측정용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탐침(probe)을 조리복소매에 하나씩 지니고 있었다. 이들이 모두 하루에 수백 개씩 스테이크를 구워 정말 익숙하다면 사실 탐침까지도 필요 없을 것이다. 눌러보거나 아니면 그냥 눈으로만 보아도 익은 줄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만일 그렇지 않다면 굳이 탐침만으로 온도를 파악하는 시도를 손님의 비용으로 해도 되느냐는 것이다. 물론 정석대로만 하자면 언제라도 음식을 주방을 되돌려보낼 수 있겠지만, 사실 우리나라 정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걸 과감하게 할 수 있을까? 비싼 음식이라면 사실 더 그렇게 할 수 있어야 되는데 오히려 반대로 그렇게 못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안 그렇다면 물론 다행이고-).
결론은 그렇다. 폼이 좀 덜나더라도 정확하게 익은 스테이크를 내는 것이 목표라면 나는 온도계를 써도 얼마든지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아마추어 쿡들만 온도계를 써야 한다는 법은 절대 없기 때문이다(사실 얼마나들 쓰시겠냐만…). 그리고 온도계를 쓰면 딱히 폼이 덜 난다고, 적어도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최소 10만원을 써야 하는 끼니라면 가능한 완벽해야 되는 게 맞고, 그 완벽을 위해서라면 가능한 어떤 수단을 써도 상관없지 않을까?
사이드로는 구운 야채와 으깬 감자를 시켰는데, 둘다 괜찮은 수준이었다. 물론 당연히 괜찮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테이크하우스의 사이드에는 무엇인가 의식적인 의미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거기에 비교적 충실했다. 그러나 스테이크의 특성이 그렇듯 사이드가 아무리 좋아봐야 스테이크가 별로면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그리고 빵이었던 빵.
장류나 김치와 같은 발효식품이 있어서 그런지 우리는 은근히 숙성에 목숨 거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경향에 스테이크를 슬쩍 끼워 넣어서 ‘이런 거 저런 거 다 숙성 잘 시키니 우리 민족은 스테이크도 숙성 잘 시킨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까 궁금해졌다.
# by bluexmas | 2011/08/03 10:27 | Taste | 트랙백 | 덧글(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