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남용-임재범의 경우
지지난주였나, 집에 돌아와서 생각없이 텔레비젼을 틀었는데(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 그냥 DVD 따위를 돌려본다) 김도균이 나왔다. 오화면 오른쪽 위에 프로그램의 제목이 뜨는데 <나는 록의 전설이다>란다. 그래서 나는 김도균을 대상으로 그런 프로그램을 만든 줄 알고 지켜보았다. ‘전설’이라는 말이 좀 손발 오그라들기는 해도 김도균은 훌륭한 기타리스트니까.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이 프로그램, 김도균에 관한 게 아니다. 임재범이 나온다. 계속해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록 음악을 하고 싶었으나 못했다.’ 그러나 정말 왜 못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자세히 하지 않는다. 앨범을 내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서 오랜만에 앨범을 냈으나 또 록음악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만 한다. 그런데 프로그램 제목은 <나는 록의 전설이다>였다.
나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임재범은 정말 전설인가? 두 가지 경우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 번째 프로그램이 말하는 대로 정말 임재범이 ‘록의 전설’인 경우다. 이 물음에 대답하려면 먼저 록 음악이 뭔지부터 정의해야될 텐데, 사실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 프로그램에서조차 하는 이야기가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록음악 하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였다. 상황이나 록음악이 뭔지를 따지기 이전에 임재범은 록의 전설이라고 띄워주고자 하는 프로그램에서조차 록을 하지 않았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록의 전설이 될 수 있을까?
프로그램에서 보여주었던 1991년의 솔로 데뷔 ‘토토즐’ 출연 장면은 나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긴 머리에 흰 셔츠, 그리고 청바지. 나는 외인부대때부터 임재범을 알고 있었지만, 솔직히 <이 밤이 지나면>과 같은 노래들이 그의 목소리에 훨씬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프로그램을 보다가 좀 어이가 없어져서 그가 부른 외인부대의 노래들을 다시 들어봤는데, 솔직히 듣기 너무 힘들었다. 물론 그 시대에 일반적으로 조악한 창작 및 작곡력을 속주 등 테크닉으로 덮으려는 경향이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임재범의 목소리는 금속성이 있어 얼핏 들으면 호쾌한 것 같으면서도 쭉쭉 치고 나가는 맛이 없다. 언제나 테두리 안에 머무는 느낌이 나서 답답하다. 그래서 나는 그때도 임재범의 목소리는 록 또는 메틀 음악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뭐 그래, 임재범이 록 음악을 안 했다고 치자. 사실 그것조차도 별로 상관없다. 음악만 열심히 했으면 된다. 전설, 특히 음악의 전설이 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짧게 불꽃처럼 활동하다가 요절하는 거다. 내가 굳이 예를 들 필요도 없다. 지미 헨드릭스를 꼽으면 된다. 재니스 조플린도 가능하다. 요절의 원인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면 전설로 각인될 확률이 더 높다. 막 세상을 떠난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가능할까? 다들 반대할 확률이 높다. 어쨌든, 두 번째는 벽에 #칠할 때까지 활동하는 거다. 꼽을만한 가수, 밴드 많다. 주다스 프리스트도 있고 롤링 스톤스도 있다. 아이언 메이든은 어떤가? 솔로라면 에릭 클랩튼도 있다. 나는 메탈리카도 이미 전설의 반열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한다. 메탈리카의 주요 멤버들은 대략 1962~3년 생이다. 임재범의 프로필을 네이버에서 찾아보니 비슷한 나이다. 물론 우리나라와 미국의 음악 토양이 다르니 직접 비교는 불가하다고 치면, 한 1/2 정도만 깎아서 생각해보자. <나는 가수다>로 주목을 받고 있지만, 그 전까지 임재범이 인기는 고사하고 창작 면에서라도 전설이라는 딱지를 붙일만큼 이룬게 딱히 있기는 있나? 임재범을 보면 ‘하면 당연히 최곤데 안 해서 최고가 못 되는’ 뭐 그런 존재가 생각난다. 반에 그런 애들 하나씩 있지 않았나? ‘내가 말이야 공부 마음 먹고 하면 니들보다 당연히 잘 하는데…’ 머리 좋고 뭐 이런 것도 능력이지만, 사실 몸과 마음을 움직여서 그걸 최대한 이끌어 내는 것도 능력이다.
나는 임재범에게 어떤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지금까지 자기가 원하는 음악을 못하고 방황했는지, 사실 그런 면은 솔직히 관심 없다. 따지고 보면 그런 게 없는 사람도 거의 없고, ‘임재범 댁이 뭘 한게 있다고 그런 칭호를 받는지 모르겠슈, 꼴 사납게’라고 비난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나는 가수다>를 통해 조명을 받자 그걸 울궈 먹겠다고 ‘전설’이라는 딱지까지 붙여 마케팅하는 방송국의 처사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글을 쓴다. 어쨌든 훌륭한 가순데 여태껏 여건이 안 되어 하고 싶은 음악을 못했다면 뭐 프로그램 하나쯤 만들어 띄워주는 것도 큰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리고 방송이라는 게 참으로 선정적이기도 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설’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건 남용이다.
그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 다음 주엔가, 6호선을 타고 상수로 가다가 같은 칸 맞은 편에서 기타리스트 최일민과 마주쳤다. 나는 보자마자 그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망설이다가 자리를 옮겨 그에게 인사를 했다. 당연히 그는 누군가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는데 놀랐다. 그가 이름을 처음 알린 것이 1992~3년 경이니 근 20년이 다 되었는데, 지금까지 앨범을 겨우 세 장 냈다. 안 내고 싶어서 안 낸 건 아니었을 것이다. 곧 디지탈 싱글을 내는데, 음악을 한참동안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다수가 임재범을 록커라고는 생각해도 최일민은 누군지도 모를 확률이 높다. 그런 사람들이 왜 지난 20년 동안 앨범을 겨우 세 장 밖에 내지 못했는지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까? 물론 그는 ‘록 기타의 전설’ 과 같은 칭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러한 실력을 갖추었다고 해도(개인적으로는 그가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다 상관없다. 최일민을 알건 모르건, 임재범을 록커라고 생각하던 하지 않던. 그러나 진짜 이런 분위기대로 흘러가서 그에게 성급하게 ‘전설’이라는 딱지를 붙이면 모든 게 괜찮아지기는 하나? 이제부터 관심가져주고 진짜 전설이 될 수 있도록 음악적인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기만 해도 되는 것 아닐까? 아직 시간은 많다.
# by bluexmas | 2011/08/03 00:30 | Music | 트랙백 | 덧글(13)
임재범이 롤모델로 삼았던 사람이 David Coverdale 인데, 그 사람은 임재범이 데뷔하기 전부터도 전설이 되어 있었고, 얼마 전 나온 Whitesnake의 2011년 앨범에서도 커버데일 형은 여전히 건재하더군요. 임재범이 한 사람을 롤모델로 삼고, 그를 따라가다가, 커리어를 망치고, 다시 복귀하는 시간 동안에 그 롤모델은 계속 정상을 걷고 있는데, 임재범을 전설이라고 얘기하는 건 좀 낯 간지러워요.
그나저나 최일민 선생을 아실 정도니 질문을 드립니다만, 혹시 ‘Wave’ 라는 한국 재즈 밴드 아시나요?
웨이브는 당시 매체에서 기사로 접하고 몇 곡 들어도 봤던 것 같습니다만, 제가 재즈에는 완전 문외한입니다. 재즈 좋아하시면 혹시 <재즈문화사>라는 책 읽어 보셨는지요?
웨이브를 여쭤봤던 건, 최일민 만큼이나 국내 음악씬에서 과소평가 받았던 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답니다. 요즘에 웨이브 4집 후에 나왔던 라이브 앨범을 다시 듣고 있는데, 들으면 들을 수록 참 놀랍단 생각이 들어서요. 그런 양반들도 앨범을 제대로 못 내고 있을 정도니, 대한민국 음악환경이 깝깝한 부분도 많구나 싶습니다.
임재범 얘기 보고 생각나서 얼마 전 페북에 썼던 글 하나 블로그에 옮겨놓겠습니다 ^^;
임재범은 ‘이 밤이 지나면’을 생각하면 은근히 ‘소프트 록’이란 측면에서 어울리죠..
저는 임재범이 딱히 헤비메탈 보컬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다만 조심스럽게 덧붙이자면 임재범 스페셜이 아니었고 그래서 섭외에도 응한 것으로 아는데 홍보도 편집도 임재범 중심으로 해놓아서… 오히려 반감을 부르는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