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역]한성문고-라면 한 그릇에 지운 무거운 짐?
며칠 전 <한성문고>에서 ‘서울라면’을 먹었다. 한성에 서울이라니, 그야말로 옛 서울에 현재의 서울이다. 그만큼 나의 경험이 서울스러웠나? 글쎄,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일단 가격을 생각하지 않았을때, 이 서울라면이 잘 만든 음식이라고는 생각한다. 면의 인상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일단 육수만 놓고 봐도 그렇다. 동물성 재료를 고아 틀(흔히 서양 음식에서 ‘body’라고 말하는)을 잡고 그 위에 가쓰오부시의 감칠맛을 올린, 그러나 무겁지 않고 깔끔한 육수에 짭짤한 양지머리 고명의 악센트는 좋았다. 만약 이 라면이 서울라면 아닌 다른 어떤 무엇이었다면 그냥 ‘잘 먹었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그 이름 때문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이 라면이 굳이 ‘서울라면’이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의도를 나는 두 가지로 생각했다. 첫 번째는 대표성에 관한 것이다. ‘이 라면을 서울을 대표할만큼 맛있는 라면으로 만들겠다’라는 의도다. 그건 이 라면이 가질 맛의 구성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것과 상관없이 맛있는 라면으로 만들어 대표성을 불어넣겠다는 의지다. 성공적이었나?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가능성이…
두 번째는 맛 그 자체에 ‘서울스러움’을 담겠다는 의도다. 나도 그 서울스러움을 정확하게 한두 가지 요소로 인식하기는 건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어쨌든 이런 의도로 이 라면에 ‘서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면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건 ‘왜 하필 가쓰오부시인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할 것이다. 가쓰오부시가 일본의 재료라서 그렇다기보다, 서울이고 아니고를 떠나 우리 음식에 잘 쓰지 않는 재료며 맛이기 때문에 그렇다. 요즘은 거의 모든 것에 ‘이게 정말 우리 고유의 재료며 맛일까’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어쨌든 멸치나 북어라면 차라리 설득력을 더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반드시 동물성+해물의 재료 구성이 육수에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납득이 가는 대답을 얻은 다음에야 가능하다.
또한 그 출발점을 무엇으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할 수 밖에 없다. 일본식 ‘라멘’에서 출발해야 하는가, 아니면 칼국수나 온면 같은 우리 면 음식에서 출발해야 하는가(물론 칼국수나 온면이 서울의 음식인지에 대한 고려는 딱히 없이 제시한 것이기는 하다)? 자, 라면을 한 그릇 먹으면서 굳이 이런 생각까지 해야 할 필요는 절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름이 ‘서울라면’이다 보니 이렇게까지 생각이 복잡해진다. 음식 문화에 대해서 생각하는 기회를 가진다면야 절대 나쁜 건 아닌데, 서울이라는 이름 프리미엄에 그러한 기회를 제공하는 비용까지 포함되어 이 라면 한 그릇의 가격이 만원이 된 건 아닌가 싶다. 물론 책정한 가격에 대해 아주 심각하게 생각해야 될 정도는 아니다. 하카다 분코도 그렇고 여기도 마찬가지, 음식을 성의없게 만든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두 가지의 문제는 있다. 첫 번째는 개인적인 것인데, 그냥 한 끼 식사를 위해서라면 여기보다 바로 몇 백미터 앞에 있는 본향 바지락 칼국수의 들깨 수제비가 가격대 성능비 면(6,000)에서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두 번째, 이 라면 한 그릇에 만원을 꼭 받아야 되겠다면 곁들이는 김치도 만원짜리 식사의 격에 맞는 것이어야 한다. 하카다 분코에서는 그 가격에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이 가격에 그런 김치는 격이 맞지 않는다. 가격만 놓고 단순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는데, 만 천원짜리 우래옥 냉면에 딸려 나오는 유일한 반찬(가끔 못 먹을 때도 있지만;;;)인 배추 겉절이는 정말 만천 원짜리에 맞는 반찬이다. 이 김치는 아니다.
전체적으로 ‘서울라면’이라는 이름이 아니었다면 괜찮을 한 그릇의 라면에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운 건 아닐까 생각했다. 가격도 살짝 함께.
사족
1. 일본말로 ‘이럇샤이마세!’라고 크게 외치는 것을 그냥 우리식으로 옮기면 ‘어서오십시오!’라고 똑같이 크게 외치는 게 되는 걸까? 일본 라면이니까 그 분위기 그대로 한다는 점은 받아들일 수 있는데 이건 거슬렸다. 한성문고의 공간은 하카다 분코에 비해 훨씬 넓고 쾌적한데 이렇게 점원들이 외치는 것과 별로 좋지도 않은 음악 크게 틀어놓는 건 그 공간의 분위기를 해친다. 살바토레 쿠오모 더 키친에서는 점원들이 이탈리아 인삿말을 완전 우리말 억양으로 크게 외치는데, 레스토랑의 분위기와 전혀 맞지 않는다. 다 비슷하다.
2. 고명으로 얹은 양지머리. 모양새도 의성어도 좋지만 이제 고기를 결대로 생각없이 ‘쪽쪽’ 찢는 건 좀 그만 먹었으면 좋겠다. 쇠고기 양지나 닭가슴살처럼 지방없이 근섬유가 한쪽으로 긴 부위는 그 결의 반대로 짧게 잘라줘야 먹기 편하다. 아줌마 요리 블로거들 장조림해서 올리시는 거 보면 다들…
3. 왜 팜플렛에 굳이 ‘생선뼈’라고 써 놓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누구라도 먹자마자 가쓰오부시라는 걸 알 수 있다. 정체성의 측면에서 그걸 밝히고 싶지 않은 의도가 있어서 그런건 아닌지, 그게 궁금했다.
4. 가게의 상호/로고가 붙은 그릇과 그걸 가지런히 진열해놓은 선반 등등은 일종의 프로페셔널리즘을 느낄 수 있어 좋다. 특히 우리나라 백반집 같은데서 다른 가게 상호가 붙어 있고 그을거나 이 빠진 플라스틱 접시들을 많이 보았다면… 설사 이미지 만들기에 치중한 전략이라고 해도 이런 게 낫다.
합정역, 라면, 라멘, 한성문고, 하카다분코, 서울라면
# by bluexmas | 2011/07/30 10:43 | Taste | 트랙백 | 덧글(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