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DIY의 현장
오산집을 딱히 그리워하지는 않는다. 섬에 사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걸 서울에 올라와서 살다보니 더 절실하게 깨닫는다. 정말 갈 곳이 없어서 집에 있다가 낮에 자고 밤에 못자는 생활을 두 여름 모두 되풀이했다. 지금 생각하면 끔찍하다.
그러나 좋은 점도 있었다. 특히나 넓은 공간에 들어오는 역광이 그랬다. 적어도 내 마음에는 드는 사진을 별 노력없이 찍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다르다. 지금 집은 향을 따져보지는 않았는데 새벽에 해가 떠 얼굴 피부를 벗겨낼 것처럼 따갑게 비추다가 아파트 뒷쪽으로 넘어가 버린다. 그러니 낮에는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뭐 사진에 대해 아는 거 하나 없지만 찍기가 어렵다. 특히나 이런 장마에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고민 끝에 조명을 써보기로 했는데 뭐가 필요한지도 몰라서 버벅거리다가 그냥 가장 싼 DIY 시스템을 어제 꾸역꾸역 구축했다. 물론 아직 미완성인데 오늘 꼭 써야할 일이 있어 일단 저기까지만 만들었다. 아무래도 사진 공부를 해야될 것 같기는 한데… 거두는 것 없이 일이 덩치만 커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최근에 산 푸드 스타일링에 관한 책은 정말 스타일링에 대한 사항들만 다루고 있어서 좋은 사진 말고는 딱히 도움이 안 된다. 그런 사진들은 대부분 피사체로 쓰는 것이 목적이라 실제로 먹지는 않는다. 음식 모형을 만드는 것과도 비슷하다. 으깬 감자로 녹지 않는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식이다. 나는 그런 것과 별 상관이 없다. 만들어서 다 먹어야 한다. 오늘도 사진 찍어 가면서 만들어 다 먹었다.
아침 일찍 상판이 배달되어 올려놓았다. 영 싸구련데 역시 나무의 느낌이 좋기는 하다. 내일은 동대문쪽 주방용품 가게에 스테인레스 쟁반을 보러 간다. 거기에 양념통들을 담아 놓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무늬도 없고 형태도 복잡하지 않은 걸 좋아하는데, 그런 걸 찾기가 영 쉽지 않다. 그런 건 대부분 싼티가 너무 많이 난다. 물론 싼 것 밖에 살 수 없는데 싼티나는 걸 피하려드는 건 돈이 없으면서도 맛있는 음식 먹기를 바라는 놀부심보와 딱히 다르지는 않다. 지난 번에 어떤 가게에서는 다른 곳에서 오천원에 산 거품기를 팔천원인가 불렀다. 늘 그런 식이다. 모르면 속는다. 이런 짓거리를 하고 다니면 재미는 있는데, 그래도 꼴에 건축을 배운 인간이 자기 집 짓는 건 우리나라 현실에 그렇다고 쳐도 공간 꾸미는 건 원하는 대로 한 번 하고 죽을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잘 모르겠다. 기회가 몇 번 있었던 것도 같은데 나는 항상 그르치곤 했다. 역시 나는 그르치는 걸 바르게 할 수 있다. 이제는 왜 그랬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 by bluexmas | 2011/07/29 00:17 | Life | 트랙백 | 덧글(14)
오늘은 The Caffe체인 원두상품을 200g 9900원 주고 샀는데, 똥폼 잡는 로스터리 카페들, 가X양, 마X스터 등 도매업체의 100g 9천원,만원 하는 향빠진 원두보다 더 낫네요..
제가 잘 속는 편이라 뭘 사러 다니질 못하겠어요ㅡ.ㅡ;; 사놓고 돌아서보면 다른데가 낫고…;;
비공개 덧글입니다.
예전에 옥수 살던 친구의 거실을 보는 느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