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불치병
윤씨밀방으로 만두를 사러 갔다. 사실은 만두에게, 아니면 만두로 위로를 받고 싶었다. 그러나 월요일은 원래 영업을 안하는 날이었다. 돌아서는 발걸음이 왜 그리도 쓸쓸하던지. 만두, 그 단어를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질 때가 있지만 진정한 위로는 먹어야만 이루어지지 않는가. 음식이니까…
계획했던 것보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면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는 오늘 왜 이렇게 짜증이 나는걸까. 나가기 전에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기로 해놓고 못한 것이 아무래도 가장 큰 원인이었다. 동사무소는 싼 대신 토요일에도 일찍 닫고 일요일에도 안 한다. 그래서 월수금이나 화목토나 마찬가지다. 많이 해야 일주일에 사흘이고 다음주로 접어들면 또 이틀 이상 운동을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운동을 못하면 주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쌓인다. 물론 오늘 갔어야 하는데 못 간건 순전히 내 책임이기는 했다. 어제 하루 종일 슬렁슬렁 집정리를 하다가 일을 늦게 시작해서 결국 늦게 끝내 늦게 잤는데 사실 그 전날 거의 못자서 아침에 제대로 일어나지 못했다.
거기에다가 곧 넘겨야 하는 일의 마감을 살짝 착각하고 있었다. 물론 딱히 문제될 것은 없다. 하면 되고 기한 안에 끝내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러나 때로, 이 모든 것들을 정확하게 뚫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게다가 ‘요즘은 부업도 안하고 상대적으로 한가하므로 더더욱 남은 일들을 착오없이 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있다. 거기에 ‘일단 8월까지는 있는 일만 하면서 쉬자’라고 생각했지만 일주일만에 해야만 하는데 안 하는 것 같은 일들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다. 아무래도 나는 바빠야 하는 것 같다. 돈을 벌고 뭐 이런 문제가 아니라, 그래야 생각의 가지를 좀 쳐내고 단순하게 산다. 몸이 지쳐서 생각을 안 하게 된다. 물론 거기에 정말 돈을 그럭저럭(‘잘’이라고 썼다가 지웠다…) 버는 일을 한다면 완전 일타쌍피가 되겠지. 정신건강에 도움되도록 단순하게 살면서 돈도 벌고…
그냥 버릇처럼 그런 생각을 했다. 아, 나라는 인간은 왜 스스로도 감당하기가 이렇게 힘든 걸까. 나라도 나를 이해해줘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가끔 너무 버겁다. 스스로도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또 얼마나 나라는 인간이 피곤할까. 물론 그래서 그 주변사람이라는 걸 가급적이면 만들지 않으려 하지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병처럼 아 #발 다 놓아버리고 싶다…라고 생각하다가 집 앞 편의점에서 1+1으로 싸게 파는 불량 음료수 몇 캔을 사는 것으로 마음을 누그러뜨리며 집에 왔다. 빵을 먹을까 밥을 먹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밥을 해서 먹었다. 그래, 이건 기정 사실이다. 나는 나라는 불치병에 걸렸다. 치유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그냥 나니까. 원래 쓰려던 글은 <피해자 코스프레 재미없다>였는데 그럼 땅파고 들어가야할 것 같아서 일단 접었다. 그 대신이 <나는 나의 불치병>이라면 그것도 썩 아름다워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남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는 겸양의 미덕에 어떻게 좀 점수를 줄 수 있지는 않을까?
# by bluexmas | 2011/07/26 01:08 | Life | 트랙백 | 덧글(12)
편의점 1+1 싸구려음료수에 기분이 좀 풀어지는, 피곤한 서울생활입니다~
남 이야기를 하지 않는 덕목까지 갖추셨으니 아름답습니다. 진정. 🙂
비공개 덧글입니다.
그 병은 혹시 완벽주의자에게 잘 새기는 병이 아닐까요.
다음에는 꼭 만두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ㅠ_ㅠ 만두는 정말로 큰 위로를 해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