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ㅈㅁ의 계절
‘ㅈㅁ=절망’이라는 답을 내신 분들께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볼 줄 아는 사람이라는 찬사를 드리고자 한다. 가만, 절망을 답으로 선택한 상황이 긍정적이라니 이 무슨… 그러나 알고 보면 참 행복이라는 것이 상대적인 개념 또는 상황이므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예를 들면 오늘 길에서 미끄러져 넘어졌는데 누군가 차 사고나서 다쳤다는 얘기를 들으면 사악하게도 남의 불행을 발판삼아 상대적 행복의 나라에 한발짝 더 다가서고 뭐 그런.
분명히 ‘버터: 1 3/4 stick’인데 무슨 마가 씌었는지 ‘버터 한 덩어리의 3/4’으로 읽고서는 말도 안 되는 양의 버터를 쳐넣어 버리니 이건 뭐랄까 버터스프가 가까스로 고체화된 상태랄까… 들인 버터값만 해도 귀인에게 충분히 나눠줄만 하지만 파괴력을 무시할 수 없는 칼로리 폭탄이 되어버렸으므로 그냥 자체 처리를 할 수 밖에 없어져버렸다. 비디오만 마지막으로 확인했어도 괜찮았을텐데 그렇게 하지 않아 같은 걸 두 번 만들어야 했다. 아 물론 먹기 위한 거 아니고… 먹기야 먹겠지만.
오늘 하루 딱히 제정신이었던 같지 않다는 증거는, ‘그래 밀가루통 연 김에 빵이나 만들어볼까’ 생각해서 레시피대로 조합을 했는데 분명 ‘액체(물+우유): 1 1/3컵’으로 읽고 정작 2 1/3컵을… 아무리 밀가루를 더해도 뭉치지 않은 반죽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나 사실 진짜 이상한 건 멀쩡하지 않은 내 정신상태였다. 뭔가 알 수 없는 비율로 밀가루를 섞어 알 수 없는 반죽 덩어리를 만들어 냉장실에 쳐넣었다. ㅈㅁ도(영어로 하자면 ‘the degree of ㅈㅁ’쯤 되려나…)를 확인하기 위해 아침에 구워볼까 한다. 오븐 미안, 전기 미안…밀가루도 계란도 미안…(ㅅㄴ님 인용;;;)
고지라와 미니라와 킹기도라를 벗삼아 며칠 동안 일을 했다. 아니 괴물들 싸우는 것만 훌륭해도 감지덕진데 무슨 스토리라인이 이렇게 제대론지 계속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심지어 어린 아이의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괴물괴물와 인간괴물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 복잡한 전개는 정말…제목이 그러니 ㅈㅁ한 이야기만 할 수 밖에 없는데, 예전에 ㅈㅁ한 고지라 말고 정말 제대로 된 현대판 고지라가 한 번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녁까지 다 먹고 쓰레빠를 찍찍 끌고 나가 뒹굴다 왔다. 요즘 계속 하는 이야기: 집에 붙어 있지 않으려 한다. 시작은 창대한데 언제나 끝은 잠이니까.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미국의 집이 또 다시 문제의 낌새를 보이고 있다. 보이고 닿는 것만 처리하려고 해도 골치 아픈데 이제는 그 존재 자체가 가물가물한 것까지 속을 썩일때는 정말 ㅈㅁ밖에는 할 말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외로움은 불치병 같은데, 그나마 그것도 없는 세상을 상상하면 더 끔찍해지지 않나. 외로움은 감정의 공기며 그림자다. 가실 것이라고 생각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봐도, 모든 것이 다 지나고 난 다음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그렇지 않다’일 수 밖에 없다. 하긴, ‘그거라도 있어서 다행이야’라는 생각을 외로움에게 투사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기는 하다.
내일도 날씨가 이러면 반드시 부침개를 부쳐먹을까 한다. 어제는 하루 종일 빵쪼가리 같은 걸 대강 주워먹고 일하다가 저녁에 잘못된 욕구가 폭발해서 게맛살을 안주로 막걸리를 먹다가, 삼겹살을 넘어 라면에 밥까지 말아먹는 것으로 허전한 정신상태를 달래려다가 배가 너무 불러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물론 내 얘기는 아닌데(왜냐하면 나는 외롭다고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고, 만약 그렇다면 내가 200% 선택한 것이므로 또는 그렇지 않은 상태=불가능이므로), 배부른데 외로우면 또는 외로운데 배부르면 기분 최악이다. 잘 먹고 잘 사는데는 영겁이, ㅈㅁ에는 찰나가 걸린다. 십중팔구 ㅈㅁ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왜? 쉬우니까. ㅈㅁ은 운명이니 거스르려 들지 마라. 호미로 막을 ㅈㅁ 가래로 막고 피눈물 흘린다. ㅈㅁ앞에 장사 없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아침에 이 노래를 들었는데 오늘 날씨랑 어찌나 잘 어울리던지 듣다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It’s a sucker song.”
# by bluexmas | 2011/07/13 00:48 | Life | 트랙백 | 덧글(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