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하라 도너츠-“안심간식”에 대한 생각 몇 가지
아직도 기억한다. 이웅평 소령인가가 전투기를 몰고 남한으로 왔던 날. 우리 집에서는 도너츠를 튀기고 있었다. 실제 상황이라고 해서 그걸 싸들고 대피를 하려 했다. 도너츠라면 항상 그 생각이 난다.
딱히 잘 아는 건 아닌데 어디에선가 일본에 그런게 있는데 우리나라에도 생겼다고 해서 찾아가 먹어보았다. 전부 몇 종류인지는 모르지만 예닐곱 가지를 먹어보고 든 생각들 몇 가지.
1. 별 장난 안 치고 만든 도너츠
올 초,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많이 받을 때 불량식품을 많이 먹었다. 특히 두 대량생산 브랜드 도너츠를 이것저것 먹어봤는데… 조금 극단적인 표현을 쓰자면 굳이 사람이 먹어야 할 게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첨가물이니 뭐니 이런 걸 떠나 그냥 너무 못 만들어서 그렇다. 어쨌든, 매장에서 튀기는 이 도너츠는 최소한 별 장난 안 치고 깨끗하게 만든다는 느낌은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2. 그리 차이 없는, 수줍은 맛
플레인, 계피, 초콜릿, 파인애플…하여간 뭐 이것저것 해서 예닐곱 종류를 먹었는데, 일본의 것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맛의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았다. ‘대체 이게 무슨 맛이더라’하는 경우도 있었고, 아이싱이 없으면 다 비슷해서 나도 모르고 심지어 점원도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위 사진의 도너츠는 모두 다 다른 것이다-_- 가장 기억 나는게 초콜릿 도너츠의 초콜릿 맛이었는데, 괜찮은 초콜릿을 쓰는지 향이 강한데 오히려 너무 두드러져서 어울린다고는 하기 어려웠다. 가뜩이나 수줍은 맛의 싸대기를 때려서 구석탱이에 찌그러져 훌쩍거리게 만든달까. 아, 게다가 너무 달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 애를 쓴 건 아닌가 싶었다. 3과 더불어 기름이 많이 나오면 달지 않았을때 더 느끼해서 부담스럽다.
참, 위에서 언급한 것 같은 ‘어릴때 먹었던 그 맛’이라는 표현은 나의 경우 가져다 붙이기 좀 어렵다. 그래봐야 믹스 도너츠인데 거기 든게 뻔하지 않겠나…
3. 튀김과 식감
매장에서 직접 튀기고, 주문을 받으면 작은 오븐 토스터에 데워준다. 먹어본 것들로만 판단하자면 하라도너츠는 부드럽다고 말하기 어렵다. 식감도 보기에도 그래서 발효를 시킨 건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라고 했다. 도너츠도 이스트로 부풀리거나 퀵브레드 식으로 베이킹 소다/파우더를 쓰는 종류가 따로 있다. 딱히 비교하고 싶지는 않은데 하라도너츠의 식감은 미스터 도넛의 폰데링에 가깝다. 물론 그 정도로 쫄깃거리지는 않는다. 원래 딱히 부드럽지 않은 도너츠를 오븐토스터에 데우면, 방법은 맞지만(누가 브라우니를 전자렌지에 데운다고?!), 더 뻣뻣해질 우려는 있다.
사실은 그보다 소량생산 방식으로 가게에서 튀기는 게 좀 걱정된다. 사실 튀김이라는 걸 나는 가장 어려운 조리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무엇보다 조리시간이 짧고 온도 맞추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한 번 재료를 넣으면 기름은 당연히 온도가 떨어진다. 다시 올라가는데 시간이 걸리는데, 온도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 튀기면 재료가 기름을 너무 많이 먹어버린다. 기름에 쩐 튀김을 종종 먹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처음 먹은 것들은 그렇지 않았는데, 그 뒤로 사다주거나 먹은 것들은 모두 살짝 과하다고 싶은 정도로 기름에 쩔어 있었다. 딱히 사람이 많이 몰리는 시간이 아니었는데, 가장 번화한 거리 명동에서 손님이 최대로 많이 몰렸을때 튀김의 질이 균일하게 유지될까 궁금했다. 그게 하라 도너츠 성패의 관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안심간식”
딱히 동의하기는 어렵다. 진짜 건강을 생각한다면 과일이나 야채, 닭가슴살을 먹어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일본에서 그런 컨셉트인지는 모르겠지만,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보다 즐거움을 위해 고칼로리라도 감수하고 먹는 사람으로서는 딱히 공감이 가지는 않는다. 건강한 재료에 대한 팜플렛을 보면, ‘삼온당’을 쓴다고 나와 있는데, 이게 사실은 ‘가짜’ 흑설탕으로 설탕으로 만든 카라멜을 백설탕에 섞은 것이다. 일본식으로, 원래 흑설탕은 당밀을 섞은 것이고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생산된 것이 없어 말도 안되는 수입산을 비싼 가격에 쓰고 있다. 단맛이 더 강한지도 모르겠고, 영양소나 풍미와도 아무런 상관은 없다. 일본에서 들여오다보니 그대로 가져온 듯.
5. 가격과 그 밖의 것들
개당 평균 1,500원 정도인데, 개인적으로는 튀김의 불안정함만 빼놓으면 돈값은 한다고 생각한다. 가게까지 와서 “왜 이렇게 비싸요?”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던데 그건 완전히 난센스고… 매장이 넓지는 않지만 2층의 분위기는 나름 괜찮다. 다른 대량생산 도너츠들에 비해 가격이 비싼만큼 신경 써서 잘 만들었다는 점을 내세워야 장사가 잘 될 텐데 일단 질보다 양을 추구하시는 우리나라 소비자님들께서 지갑을 여실지 그게 의문이고, 위에서도 거듭 언급한 것처럼 튀김의 안정성을 얼마나 잘 유지할 수 있을까가 관건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안 달아서 썩 자주 찾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어중간한 맛이랄까. 단맛이 적당히 있어야 이런 음식에서 나머지 맛들도 덩달아 더 두드러질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듯?
# by bluexmas | 2011/07/04 10:53 | Taste | 트랙백 | 덧글(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