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괴물

모든 시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다만 어떤 시를 싫어한다. 강박관념으로 가득찬 시가 있다.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다. 그 이유를 딱히 헤아리기 어렵다. 줄여야만 하기 때문에? 딱히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알고 보면 시만 그러한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글이 그렇다. 사람들이 감동에 목말라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현실이 팍팍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어쨌든 그렇게 감동에 대한 강박관념의 산물과 같은 것들이 시의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잠이 덜 깬 아침 어김없이 가득찬 지하철을 기다리는 역의 플랫폼 유리문이나 먹는 것만큼 중요하며 숭고한 행위인 배설을 위해서 소변기 앞에 섰을때 어쩔 수 없이 접해야만 하는 시들은 오히려 시라는 것에 대해 문외한이 막연하게나마 품을 수 있는 경외심을 뿌리까지 짓밟아버린다. 나는 아직도 그런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고 믿는다. 그건 너무 쉽게 희망에 대해 나불거리는 것들에 대해 그 나불거림 자체로 절망을 느껴서 차라리 절망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아직도 어딘가에는 있을 거라고 희망을 품는 상황과도 같다. 희망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절망을 안기고, 그 반대로 절망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그 존재 자체만으로 희망을 안긴다. 늘어놓고 나니 이것도 참으로 지독한 삶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다.

그래, 좋아하지는 않지만 동의는 한다. 삶은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삶이 그렇다는 걸 이야기하려면 남의 그것부터 들먹일 필요도 사실은 없다. 내 것부터 들여다보자. 나는 내 삶이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종류의 위대함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 규모가, 그도 아니면 의외성이 그렇다는 의미다. 나는 내 삶이 어마어마해서 감당이 도무지 되지 않는다. 그것도 꽤나 오래 되었다. 이제 거의 10년에 다다르고 있다. 아주 어렴풋하게나마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개념을 가까스로 잡을 수 있던 시절, 만약 나의 삶이라는 것도 지금 이 모양 이 꼴인 상황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더라면 몸은 그렇다치더라도 마음은 어떻게든 준비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때로는 그 대가를 이제서야 치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어쨌든, 삶이 그렇게 어마어마하다고 대문짝만하게 서울 시내 그것도 가장 중심부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너무 함축이 되어서 그런가 나의 삶은 그렇지 않은데 올 사람의 삶만 그렇다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올 사람의 삶이 그러니까 존중해주자- 이건 마치 천주교에서 ‘내 탓이오’ 캠페인을 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도 사실 너무 지겨웠다. 왜 내 탓인가, 꼭 내 탓이어야 하는가… 그보다 더 깊이 들여다봐서 정말, 근본적으로 죄가 있다고 말하는 종교의 가르침을 평생 어깨에 짊어지고 사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일까 회의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나는 이제 갓 태어났는데 죄가 있대. 살면서 어차피 실컷 지을 죄인데 꼭 지은 채로 태어나야만 하는 걸까? 그래, 아무리 애를 써도 이룰 수 없는 것들이 있다지만 그것이 삶에 문신처럼 배겨 있다고 아예 처음부터 단언하는 그 큰 가르침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건 손발이 다 날아가거나 아예 가지고 있지도 않은 채로 태어났음에도 생명은 고귀하니까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시도와 과연 얼마나 궤를 같이 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 또한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한 입으로 말하는 것은 아닌가?

아 뭐 이야기가 너무 삼천포로 빠졌는데… 내가 너무 비관적인 인간이라 그렇지, 어쩌면 저 글귀는 함축하느라 한쪽 방향에서만 생각해서 그렇지, 상대적으로 따져보자면 결국 양쪽에 다 해당되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내가 가만히 있고 상대방이 움직이거나, 아니면 그 반대거나 뭐, 두 사람이 만나려면 어찌 되었든 결과라는 건 움직인 상태일 테니까. 그건 사실 언제나 감동을 찾는, 너그러운 사람들의 창작이며 해석일테고,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삶이라는 것이 스스로도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괴물이라는 생각이 오늘따라 머릿 속에서 도저히 떠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너무나도 하고 싶었다. 날씨 탓이었겠지 뭐.

 by bluexmas | 2011/07/03 02:04 | Life | 트랙백 | 덧글(12)

 Commented at 2011/07/03 02:5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7/03 20:10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루아 at 2011/07/03 05:58 

끓여서 ‘삶은’ 괴물인줄…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7/03 20:11

저도 그런 줄 알았어요 ‘ㅅ’

 Commented by 차원이동자 at 2011/07/03 10:45 

사람이라면…아니 생명이라면 누구든지 삶이라는 괴물과 싸우는 장대하고도 어마어마한 싸움을 벌이고 있군요… 좋은 명제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이걸 곱씹어봐야겠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7/03 20:11

원숭이나 오랑우탄의 경우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어떨지 잘 모르겠네요…

 Commented by 당고 at 2011/07/03 11:20 

마이 밸리에서 제목만 보고 ‘삶은 괴롭’인 줄 알았어요. 저도 참…… 문학적이지도 않고 비관적인 인간인 듯;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7/03 20:11

아무렴 저만큼 하시려구요… 옮긴 알바 시간은 괜찮으세요? 여름이라 힘드실듯.

 Commented by settler at 2011/07/03 11:52 

저런 감동적인 서체로 아로새긴 문구는 사실 거의 다 싫어요 고흐 그림이 새겨진 에어콘이나 김치냉장고처럼 시가 엉뚱한 데서 고생하고 있는 거죠 시도 아닌 것들이 시 행세를 하고 있기도 하구요 감동을 목적으로 창작된 모든 것들은 늘 좀 가소로운 것 같아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7/03 20:12

크리에이티브 리치가 어쩌구라잖아요. 키스 헤링도 한없이 망가지고 있어요…

 Commented by 파고듦 at 2011/07/03 19:16 

이거 어제 강남역에서 신논현역 걷다가 본거 같네요. 그건가. ?

딱 길건너에 저게 있었는데.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7/03 20:12

같은 건데 여기는 광화문이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