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처럼 녹는 두통
이제서야 두통이 가셨다. 아드빌 두 알을 던져넣자 30분 내로 정말 눈 녹듯 사르르, 두통이 사라졌다. 영화를 보던 도중에 쨍-하고 두통이 머리 한 가운데를 가르고 들어왔다. 썩 선명하지도, 초점이 잘 맞지도 않는 3D 영화 때문인 게 뻔했다. 트랜스포머 3를 보았다. 영화 자체도 화면만큼이나 선명하지 않았다. 마이클 베이는 지루한 음식을 만드는, 거만한 미슐랭 별 셋짜리 셰프같은 느낌이었다. 영화 곳곳에 자만이 넘쳐 흘렀다. 바깥 세상 어찌 돌아가는지 잘 모르는 미국인으로서의 자만과 블럭버스터 감독의 그것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상대에게 질세라 영화를 타고 진하게 흘러내렸다. 물론 그 둘은 결국 하나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차라리 2편보다도 못했다. 벌써 소문이 그렇게 퍼진 걸까, 비싼 3D 상영관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반대로 2D에는 남은 자리가 별로 없었다.
집에 사탕처럼 먹어도 1년은 갈 아드빌이 있었으므로 굳이 두통약을 사먹지 않고 버텼다. 커피를 마시면 좀 나아질까 싶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아침부터 박차를 가해서 일을 해 놓고 나온 길이라 마음이 가벼웠는데 두통 때문에 나다니기가 버거웠다. 태풍이 지나간 뒤 공기는 굉장히 무거웠다. 일찍 일어나 집으로 향하는데, 합정역 앞의 삼겹살집 냄새가 유독 거슬렸다. 썩 좋지 않은 비계 타는 냄새를 타고 애초에 성의 없이 대강 만들었으나 여름의 더운 손아귀에 우격다짐으로 밀려 억지로 푹 익어버린 김치 타는 냄새가, 그 무거운 공기를 뚫고 덤벼들었다. 아아 삼겹살이여, 그리고 김치여, 그대들은 위대하도다. 두통에 그 둘의 타는 냄새에 무거운 공기까지 합세하자 나는 거의 쓰러질 듯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그 사이 저 앞 건널목에서는 파란불이 들어왔다. 저 신호를 놓치면 손해를 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도저히 뛸 수 없었다. 간신히 두 냄새의 협공에서 벗어나 건널목 앞에 섰는데 아니나 다를까, 6712번이 들어왔다. 그리고 버스가 정류장을 막 떠나자 마자 파란불이 들어왔다. 역시 삶은 이렇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야 삶이니까.
# by bluexmas | 2011/06/30 20:30 | Life | 트랙백 | 덧글(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