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여름
점심을 먹으러 간 곳에서 5분 차이로 셔틀을 놓쳤다. 식사를 마치고 바깥을 잠시 바라보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설마 했다. 다음 버스는 한 시간 뒤에 있다고 해서 택시를 불러달라고 했다. 카드 결제기도 없는 허름한 택시가 곧 왔는데, 공항에 가자고 하니 요 앞인데 자기는 강서구청에서 왔다고 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대신 행선지를 부산으로 바꾸죠. 간만에 바닷바람을 좀 쐬고 싶네요. 휴계소 통감자는 기사님이 사실거죠? 어차피 한 40만원 나오는 걸로 알고 있으니까 통감자쯤은… 먼데서 택시를 부른 미안함에 기사님과의 데이트를 잠깐 생각하다가, 할 일이 너무 많아 다음으로 미뤘다. 바닷바람이 쐬고 싶기는 했다. 이마트로 데려달라는 말을 세 번이나 무시하고 어디론가 가려다가 결국 이마트로 간 기사는 주차권까지 끊고 들어가야만 했다. 짜증이 난듯 보였지만 나는 그 안까지 데려다 달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콜비에 500원을 더 주고 내렸다. 닭가슴살과 두부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더운 것 같지 않았지만 꽤 더웠다. 시간이 조금 있길래 소파에 누워 기절한 듯 잤다. 일어나 운동을 하고 돌아와 저녁을 간단하게 차려먹었다. 여름이다. 에어콘 재설치를 위해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었더니 이러저러 견적이 25만원 정도 나온다고 했다. 내 안의 여름은 4월부터 잠에서 깨어 있었다. 그와 바깥 세상의 여름이 만나서는 안된다. 너무 오랫동안 만나고 싶어했던 것들이 드디어 만나면 정신을 못차릴 확률이 높다. 그들도 그렇지만 그 사이에 있는 내가 정신을 못차릴 것이 너무 뻔하다. 조금은 더 버텨야 한다. 물론 아예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건 내 능력 밖의 일일테고. 아침에 일어나서 넋은 집에다 빼놓고 길을 나선다. 생각은 집에서만 한다. 밖에서는 몸만 움직인다. 아무하고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들켜서는 안될 생각을 하고 다닌다.
다행스럽게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 by bluexmas | 2011/06/08 21:27 | Life | 트랙백 | 덧글(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