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역]퍼블리크-너무 잘 만든 빵?
홍대/상수역 근처에 또 빵집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내가 비뚤어진 인간이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어디에선가 홍보를 하는데 조리학교 이야기가 먼저 나오면 거부감을 가지게 된다. 하여간 그 근처에 원래 있던 빵집들도 별로 마음에 안 들고, 새로 생긴 집들은 더했다. 그렇다고 안 궁금한 건 아니었다. 들러보았다. 빵은 물론 타르트나 마카롱 같은 것들도 있었지만 일단 아무 것도 들지 않은 빵들부터 먹어보고 싶었다. 아, 디자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이나 로고 모두 프랑스 동네 빵집 같은 느낌을 좇으려는 것 같은데 투명한 재료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냥 무난하게 가면 중간은 갈텐데 괜히 홍대풍의 감각있는 무엇인가를 더하려다 이도저도 안 된 느낌이랄까. 명함이나 근처 골목 전봇대에 붙어 있는 필기체의 ‘상수동프랑스빵공장퍼블리크’라는 손글씨풍의 문구는 너무 안 어울리고 그 색도 빵집의 느낌과는 맞지 않는다. 로고인 수탉은 참으로 귀엽게 잘 만들었는데 그걸 주황 또는 오렌지색으로 하니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어쨌든 다시 빵으로 돌아가서, 맨 처음으로 치아바타(1,800)를 먹어보았다. 사실 아무 것도 아닌 빵이 치아바타지만 아무도 아무 것도 아닌 걸 좋아하지 않는지 맛있는 치아바타는 찾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 상황이 많이 좋아져서 이태원의 하이스트리트 마켓이었나 거기의 치아바타도 나쁘지 않았고…
하여간 이 빵에서도 아무 것도 아닌 맛이 나서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다시 가봐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갔을때는 찾는 종류의 빵이 별로 없어서 그냥 눈에 띈 우유식빵을 집어왔다. 역시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굉장히 맛있었다. 이렇게 유제품이 들어가는 빵은 그 유제품이 다른 맛들을 감춰서 맛없기가 어렵다고들 많이 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그 말이 원칙적으로 맞기는 한데, 우리나라에서 먹을 수 있는 빵들은 유제품의 두터운 맛 뒤에 남는 맛이 대부분 달고 텁텁하다. 이 빵은 그렇지 않았다. 유제품의 맛이 두텁기는 해도 무겁지는 않고, 끝맛도 달거나 텁텁하지 않았다. 토스트를 해서 먹으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게 정말 맛있었다. 과장 안 보태고, 유제품을 더한 식빵 가운데는 가장 맛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 그래서 내가 또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해야 되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그럴때 기분이 좋다.
세 번째 찾았을 때는 깡빠뉴(3,800)를 사왔다. 처음부터 가장 먹고 싶었던 빵이기도 했다. 바삭한 것은 물론 카라멜화가 잘 되어 살짝 씁쓸한 듯 단맛나는 크러스트도 훌륭했고, 속살도 밀도가 높지 않으면서도 촉촉했다. 거기까지는 참으로 훌륭했다. 그러나 맛이 어딘가 모르게 걸렸다. 달고 텁텁했다. 그냥 한마디로 말하자면 밀가루, 물, 소금, 효모만으로 이루어진 맛이 아닌 느낌이었다. 과일이나 치즈와 같이 강한 맛의 부재료와 먹으면 감춰지지만, 그냥 빵만 먹으면 계속해서 두드러지는 맛이었다. 빵을 살때 무화과 또는 건포도가 들어간 빵을 시식했는데, 같은 반죽이라고 생각되는 빵에서 같은 맛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재료만으로 잘 구운 빵은 씹으면 씹을수록 구수한 맛이 우러나는데, 이 빵은 계속 그 텁텁한 단맛이 증폭되어 많이 먹을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언제나 가지고 있는 샤프 체다와 함께 빵을 먹어보았다. 역시 그 맛이 감춰져 느낄 수 없었다. 거슬릴 정도는 아니지만 시큼한 냄새 또한 났는데, 한참 먹던, 에릭케제르에서 치아바타라고 부르는 빵에서 나는 냄새와 같은 종류였다. 이제는 먹지 않는데 기억을 더듬어 보면 에릭케제르의 빵에서는 대부분 그런 냄새가 났다. 그건 발효만으로 나는 냄새가 아니었다. 그런 냄새나 맛이 나지 않는 빵도 많다.
내가 깡빠뉴에서 느낀 맛은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효가 잘못 되어서 나는 맛이 아니었다. 오히려 실력이 너무 좋아서 나는 맛, 그러니까 의지-관련 내용은 <레스쁘아>에 관한 글 참조-를 가지고, 그렇게 될 것이라는 걸 알고 만들어낸 맛이었다. 대부분의 빵에는 부재료가 들어가니까 그것까지 계산하고 만든 듯한 느낌의 반죽. 퍼블리크의 빵은 폴앤폴리나를 뺀 주변 빵집의 빵들과 다르다(물론 폴앤폴리나와도 다르다. 전보다 못하다는 느낌은 들어도 폴앤폴리나의 빵에서 이 깡빠뉴와 같은 맛이나 냄새는 나지 않는다). 잘 만든 빵이다. 그러나 깡빠뉴를 먹고는 너무 잘 만들어도 문제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빵 종류를 다 먹은 다음 과자도 먹어보고 싶었으나 지금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일단 기록을 남긴다.
# by bluexmas | 2011/05/26 10:39 | Taste | 트랙백 | 덧글(14)
사족이지만 유기농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비싼 것처럼 깡빠뉴도 왜 그렇게 비싼지 (어느 빵집을 가던지) 예전엔 유기농이든 깡빠뉴든 둘 다 매우 저렴했을텐데 말이죠.
반면에 에전에는 매우 비쌌다가 지금은 매우 저렴한 음식도 굉장히 많지요. 잔치때에나 먹을 수 있던 소면 국수, 많이 만들면 왕실 재정이 흔들거렸던 유과, 부유층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르는 기준이었던 ‘봄에 먹는’ 흰 쌀밥……
시대마다 싸고 비싼건 갈리는게 당연한 것이라 그걸 이상하다 보기엔 힘듭니다.
게다가, 유럽에서는 깡빠뉴가 아직 비싼 빵이 아닙니다만(흔하고, 잘 팔리고, 자주 먹는 빵이니까요)… 우리나라에서는 판매량 자체가 적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