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앞]함박식당-음식과 가격의 관계
처음에 식당의 이름과 가격표, 그리고 계란을 보았을 때 나는 부정적이었다. 그 가격에 맞지 않는 음식이며 홍대 앞에 널리고 널린, 그럴싸해보이는 컨셉트와 디자인으로 포장한 아마추어 식당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편견을 깨려면 당연히 먹어봐야만 했다.
식당에 가기 전, 함박스테이크가 그 가격에 합당한 음식이려면 어떤 조건에 맞아야 하는지 생각해보았다. 대강 다음과 같은 것들을 끄집어 낼 수 있었다.
1. 버거
두말할 필요 없이, 함박스테이크의 중심은 버거다. 그 가격의 버거라면 당연히 고기를 직접 갈아야 하고, 다른 재료를 웬만하면 넣지 않아서 고기의 맛을 살려야 하며(잘 간 고기는 계란 없이도 뭉친다. 마이오신-귀찮아서 재확인 안 했음-_-이라는 단백질 때문이다), 소스가 없이도 먹을 수 있게 적당한 살코기와 비계의 비율을 살려(대개 말하기를 8:2) 뻑뻑하지 않게 구워야 한다. 직접 가는 건 선도도 있지만 식감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너무 곱게 간 고기는 씹는 맛이 없어져버린다.
식감을 고려할 때 고기를 뭉치는 정도도 굉장히 중요하다. 관련 주제에 대한 글을 쓸 때마다 언급하는 건데, 우리나라에서는 간 고기로 만드는 음식을 무조건 빡빡하게, 또는 오래 치대는 경향이 있다. 대체 어떤 근거로 이루어지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고기를 가는 이유 가운데 한 가지는 원래 정육으로 먹기 힘든 고기를 보다 더 부드럽게 먹기 위해서다. 그런 목적의 고기를 빡빡하게 치대버리면 다시 딱딱하게 뭉쳐버리고 고기를 가는 목적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다. 만두 같은 경우도 속을 너무 뭉치면 만두피와 어우러지지 않고 찌거나 끓였을 때 속만 덩그러니 떨어져버린다. 버거는 더하다. 버거의 나라에서는 무엇을 찾아봐도 패티를 빡빡하게 뭉치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고기가 뭉칠 정도로만 가볍게 힘들 줘서,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뭉치라고 이야기한다. 심지어 학교에 있던 싸구려 그릴에서도 간 고기 100%로 패티를 만들었는데, 늘 조심스럽게 뭉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간 고기로 만든 버거를 미디엄 이하로 구워 먹는 건 건강상태에 따라 고려해봐야 한다. 고기를 가는 과정에서 겉면에 있는 박테리아-정육의 경우는 고기의 겉에만 박테리아가 있다-가 온 고기로 섞여 안으로 들어가고, 열에 의해 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버거를 잘 굽는 것 또한 기술이 필요하다.
2. 계란
사실 계란이 고기보다 더 조리하기 어렵다. 흰자의 단백질은 열에 정말 빨리 질겨진다. 그래서 ‘서니사이드업’이 훨씬 더 어렵다. 그래서 권장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뚜껑을 덮고 1분 30초~2분 정도 익혀 노른자에 막을 살짝 입히는 것이다. 거기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흰자는 최소한 너무 익혀 질긴 상태가 아니어야 한다.
3. 소스
솔직히 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적당한 고기를 갈아 적당한 정도로 구운 버거는 소스 없이도 먹을 수 있다. 그래서 기대는 별로 없었지만, 상식에 기대어 일단 맛이나 농도가 너무 두드러져서 고기의 맛과 식감을 해치지 않는 정도라고는 생각할 수 있다. 주인공은 어쨌거나 고기님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집의 가격대를 생각해보았을 때 어떤 형태의 조미료나 가공품을 쓰면 안 되는 것은 기본이라 딱히 언급할 필요도 없다.
4. 밥
밥이 굳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내온다면 마르지 않고 찰기가 있어야 한다. 이건 여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물론 아닌데, 의외로 신경 쓰는 곳도 많지 않다. 맨날 ‘한국인은 밥심으로’ 어쩌구 말만 많지, 밥 존중을 잘 안 한다.
5. 피클이나 기타 반찬
딱히 특별할 건 없는데, 피클의 경우 가격대를 생각해보았을 때 직접 담그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그에 준하거나. 야채는 뭐…
그런 생각으로 함박식당에 갔다.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가격대가 조정이 되어 있었다. 12,000원에 계란은 기본이라고 했다. 위의 조건을 다 만족한다면 원래 가격에도 불만은 없었지만, 이 가격이라면 기대 또한 살짝 낮아질 수 있었다. 주문을 하니 고기를 뭉치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역시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조금 더 뭉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주문을 받고 10분 정도 걸렸는데, 두께를 보았을 때 그 정도 버거라면 면당 6분 정도가 걸린다. 마무리는 오븐에서 하는 것으로 보였다.
음식이 나왔다. 일단 버거부터. 역시 뭉친 정도만큼은 뻑뻑하다는 느낌이었지만 잘 구웠고, 고기맛과 불맛이 잘 살아 있었다. 육즙도 인색하지 않았으며, 간 고기의 식감을 생각해보았을 때 직접 간 것 같다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소스는 뻑뻑하고 살짝 짜다고도 할 수 있는 편이었지만, 고기와 먹으면 별 문제는 없었다(그러나 원칙은 고기와 소스에 따로따로 간을 하는 것인데, 이 부분은 나도 정확하게 감지하지 못했다. 버거를 간하는데도 다른 의견들이 있는데, 전자는 고기에 소금을 고루 섞은 뒤 패티를 만드는 것이고, 후자는 그럴 경우 육즙이 나와 버리므로 겉에만 넉넉하게 간을 하는 편이 좋다는 것이다. 물론 두 가지 다 해 봤는데 후자가 더 설득력 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스테이크도 겉만 간을 하니까). 기성품 느낌은 아니었다. 먹고 난 다음에도 딱히 조미료미터가 올라가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리고 밥. 찰기가 있고 마르지 않은 느낌이었다. 상식적으로 기대할 수 있거나 그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이었다. 온도도 알맞은 수준. 식당이 막 문을 연 시점이었으니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밥그릇이 조금 더 오목했으면 온도도 조금이나마 천천히 떨어지고 먹기도 편하지 않았을까 잠깐 생각했다.
계란은, 흰자의 경우 예상했던 것처럼 살짝 질겼는데, 예상외로 노른자가 아예 차갑지는 않았다. 이건 사실 5,000원짜리 밥집에서 바라는 건 아니다. 12,000원짜리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요소다.
피클은 때깔이 파는 것과 조금 달라보였는데(파는 것들은 대부분 너무 쩔어버린 느낌?), 맛도 너무 시거나 달지 않다는 면에서 느낌이 좀 달랐다. 직접 담그는 것이냐고 물어보지는 않았다.
나머지 야채들 또한 좋았는데, 구운 마늘은 솔직히 의미를 잘 모르겠고, 껍질에서 꺼내 먹어야 된다는 차원에서 딱히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구운 상태에는 큰 불만이 없었다. 아, 으깬감자가 찬 건 싫었다. 상온도 아니고 냉장 온도였다. 다른 것들에 비해 너무 차가워서 균형이 깨진달까.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고기를 직접 가느냐고 물었다. 알목심인가를 덩어리로 받아다가 직접 간다는 대답을 들어서 찾아보니 그게 Chuck, 살코기와 지방 비율이 적당해서 집에서 고기를 갈아 버거로 만들 때 추천하는 부위였다.
새로 어떤 집이 문을 열었다고 해서 금방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없는데, 이상하게도 이 집에는 그랬다. 어쩌면 이 집에서 내놓는 음식이 홍대 앞의 트렌드를 대표하는 경우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글의 맨 처음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그럴싸하게 포장한 아마추어리즘으로 만든 음식이 싫다. 카페도 마찬가지. 컨셉트도 없어 보이는 인테리어에 집에서 모은 인형이나 액션 피겨 몇 개 가져다 늘어놓고 볶았다지만 맛없는 커피와 납품받은 케이크를 내놓는 집들에는 돈을 쓰고 싶지 않다. 이 모든 건 홍대 앞에서 두드러지는 경향이지만 딱히 그 동네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음식을 팔아야 되는데 컨셉트부터 내세우는 경향은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다. 먹는 건 음식인데 만들어 파는 쪽이나 먹는 쪽 모두 딴 얘기만 한다. 함박식당의 음식은 다행스럽게도 그렇지 않았다. 먹기 전에 내가 가졌던 생각은 편견이었다.
절대가치로만 놓고 본다면 한 끼에 12,000원은 싼 가격이 아니다. 그러나 내놓은 음식이 그 값어치를 못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재료가 좋거나, 아니면 만드는 사람이 그동안 축적한 기술이 있다면 음식 가격에 불만을 가지지는 않는다. 어차피 나같은 경우는 외식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자주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싼 음식을 먹고 화가 나는 이유는, 그러한 것들보다 부동산과 같이 음식의 맛과 상관없는 요소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가격에 대한 불만을 직접 먹어서 덜었다. 나머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UPDATE: 양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버거는 150~200그램 사이라고 짐작되고, 전부 먹었을때 모자라다고 느끼는 수준은 아니었다.
# by bluexmas | 2011/05/19 11:39 | Taste | 트랙백 | 덧글(11)
역시 백문이불여일견 방문해보고 판단해야겠네요
그리고 가는 방식에서도 좀 미묘한 것이 가는 과정에서 열이 생기는 경우에는 찰기가 떨어져서 (안 찰지구나!) 고기만으로 안 뭉쳐지고요
트위터 보고 다녀오실줄은 알았는데, 이렇게 일찍 다녀오실 줄은 몰랐네요. ^^
전 버거는 별로 안좋아해서 일 년에 한두 번 먹을까 말까 하는데 요새 이상하게 함박스테이크는 먹고 싶더라구요. 이러다 어느 순간 귀차니즘을 뚫어버릴 만큼 엄청나게 먹고 싶어지면 해먹던가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