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으로 보낸 일요일
하루 종일 잤다. 일어날 수가 없었다. 다리가 너무 아팠다. 자다가 배가 고파 깨서 아침을 먹고, 또 깨서 점심을 먹었다. 저녁에도 그래서 깼다. 시계를 보니 여덟 시가 조금 못 된 시간이었다. 대강 저녁을 먹으면서 잠에서 깨었다. 중간중간 소파에 누워 책을 읽다가 졸음이 밀려오면 책을 내려놓고 그대로 나를 맡겼다. 시작할 때는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한 주가 끝났다. ‘힘든 한 주였다’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건 생각의 흐름이라서 늘어놓기에 곤란하다. 화제의 성격 때문이 아니라, 늘어놓을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한 마디로 말하자면, 지난 주에 나는 스스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다리의 통증이 다 가신듯 해서, 저녁을 먹고 책을 읽다가 다시 재미없다고 느껴졌을 때쯤 덮고(또는 스위치를 끄고) 산책에 나섰다. 이 동네가 좋은 건 바로 옆에 물이 있기도 하지만, 그 물 옆의 땅이 평평하지 않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 물론 농담이다. 하지만 미미하나마 닮은, 극적인 느낌이 지형에 숨어 있다. 그것도 규모가 크지 않은 건물의 무리와 함께. 달리기를 하기에는 힘들지만, 역시 걷기에는 강가가 좋았다. 바람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한강과 안양천이 만나는 지점의 벤치에 앉아 노래 몇 곡을 들으며 강 건너를 바라보았다. 그냥 때로 이런 순간이 있으면 사는 게 빡빡하고 고달퍼도 그럭저럭 흘려 보내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안분지족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세뇌된 소시민처럼 생각했다. 가끔은 정말 무엇을 위해 사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할 때가 있다.내가 원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알아도 떳떳하게 말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사는데요? 그건 너무 막연한 이야기잖아. 그냥 삶이니까 열심히 살면 되나? 그의 물음에 나는 정말 뒷통수를 한 대 얻어 맞은 듯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어쩌면 나를 속이면서 살아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내가 생각한 것만큼 열심히 살지 않았고, 내가 겪는 어려움들은 바로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 정말 그럴 수도 있다. 정말, 그럴 수도 있다.
서너곡쯤 노래를 듣다가,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순간에 떠나고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들렀는데, 먼저 들어와 있던 남자가 세면대 앞에서 거울만 보고 나갔다. 손을 닦고 나섰는데, 그 남자가 바로 화장실 옆에서 여자친구의 얼굴을 만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상대 몰래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과 저렇게 하는 사랑표현 가운데 어떤 것이 더 나쁜가 생각해보았다.
# by bluexmas | 2011/05/15 23:34 | Life | 트랙백 | 덧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