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사월
오후 세 시까진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소파에 누워 있었다. 오히려 이런 날이 좋다. 아무런 의지도 품지 않고 싶다는 의지가 정말 다른 모든 의미 있는 의지들을 압도한다. 그런 날이 가뭄에 콩나듯 찾아오면 기꺼이 몸을 맡긴다. 결국 일어난 건, 배가 고파서보다 빗발이 좀 잦아든 것 같아 외출을 할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 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그러나 빗발은 곧 더 거세져서 생각을 접었다. 사실은 내일 외출을 해야할 다른 이유가 있기도 했는데, 그건 곧 의미가 없어져버리고 말았다.
늦은 시간에 추적추적 걸어나가 몇몇 재료를 사다가 부침개와 비빔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간만에 하겐다즈를 먹어볼까 생각했다가, 9500원이라는 가격에 그냥 물러섰다. 돈을 아껴야 될 시기다. 빨리 아이스크림을 만들겠노라고 마음 먹었다. 뭔가 불량식품을 더 먹고 싶은 욕구에 시달렸지만, 참고 그냥 양치질을 했다. 변죽을 울려서는 안된다. 문제의 핵심은 언제나 알고 있다. 그것도 분명하게.
의외로 잔인한 4월이었다. 잇몸이 퉁퉁 부어, 치실을 넣으면 피가 터져 나오는 것을 밤마다 남의 일, 또는 이처럼 들여다보았다. 딱 날씨에 맞는 느낌이어서 노래를 찾아 들었다. Where’s the love song to set us free? 사놓고 끝까지는 듣지 않았어도 이 노래는 종종 들었는데, 가사가 이렇게 시작되는 줄은 몰랐다. 그러나 뭐, 사랑노래 심지어는 사랑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나 있나 요즘 세상에서? 인적 없는 골목에서 쥐어터진채 울고 있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블러의 이 앨범을 언제 어디에서 샀는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유럽으로 여름학기를 들으러 가기 며칠 전, 허겁지겁 필요한 또는 그렇지 않은 물건들 속에 묻어 왔었지?
경로당 앞의 목련은 아직도 꽃잎 두 어개를 달고 있었다. 그 아래를 지나치면서 그냥 떨궈버려, 라고 속으로 외쳤다. 그거 몇 잎, 며칠 더 달고 있는다고 봄이 더 오래 머무르지 않으니까, 이제는 파란 잎들도 거진 다 났으니까. 이제 시간의 손에 너를 맡겨, 매년 그래왔던 것처럼. 참고 기다리면 또 돌아오니까, 못다 운 건 내년으로 이월하세요.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머물면, 아무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거에요. 궁상, 쩐다고. 나는 사실 궁상을 좋아해서 너를 사랑하지만, 모두들 싫다고 말하는 틈바구니를 비집고 커밍아웃할만큼 용기는 없거든. 아니, 그건 사실 그만큼 너를 사랑하는 게 아니겠지만. 그래서 여태껏 모든 걸 손가락 사이로 흘려 보낸건가, 그 과분한 온정들을.
# by bluexmas | 2011/05/01 00:37 | Life | 트랙백 | 덧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