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붓처스 컷-‘가성비’와 스테이크 사이의 갈등
이번 달 에스콰이어에 <우월한 스테이크의 디테일>이라는 기사를 투고했다. 갈등하다가 구 스테이크를 마지막으로 간 뒤 원고를 마무리했는데, 기사를 쓰기는 했지만 붓처스 컷도 가봐야 할 것 같아서 어제 들렀다. 예약을 하지 않았는데 점심이라 그런지 자리는 넉넉했다. 무엇보다 공간이 금방 눈에 들어왔다. 기사에도 남성적이다 못해 마초 냄새 풍기는 스테이크하우스의 공간적 분위기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런 원형을 세련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느낌이었다. 특히 사진에서 보이는, 고기 갈고리를 이용한 조명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점심에는 두 가지 전채에 스테이크, 차와 디저트까지 나오는 메뉴가 4만원(+10%)이었는데, 솔직히 처음이 아니었다면 다른 음식은 딱히 먹지 않았을 것이다. ‘먹어봐야 무슨 맛이나 있겠어?’라기 보다, 스테이크하우스라는 특성상 다 필요 없고 고기만 맛있으면 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고기문화 관점에서 보면 또 다르기는 하다. 고기도 맛있어야 하지만 된장찌개나 밑반찬, 그리고 밥도 맛있어야 하니까. 어디 그뿐인가? 쌈야채도 좋아야… 따져보면 사먹는 입장에서야 다 좋아야 하지 않겠는가. 어쨌든 그런 생각에서 그냥 저녁 메뉴의 스테이크를 주문하려다가 런치 메뉴를 주문했다. 무려 드라이에이징한 한우 스트립을 200g이나 준다고 했다. 사실 기사에서도 숙성방법을 드라이/웨트로 딱 잘라 이분법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느냐고 써서, 드라이에이징이니까 꼭 먹어야 되겠다는 생각은 안 했지만 맛이 궁금한 건 사실이었으므로 스트립을 골랐다.
먼저 나온 빵은 꽤 납득할만한 수준이었다.
첫 번째 전채는 일종의 메들리(모둠?). 왼쪽은 스테이크하우스 단골메뉴인 새우 칵테일인데, 새우는 우리나라에서 보통 잘 익혔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꽤 더 익힌 상태였다. 소스는 달고 시고 매운 정도를 한 단계 정도 낮췄고, 칵테일 소스의 속성을 생각한다면 사실 양상추는 금방 시들어버리기 때문에 썩 좋은 짝은 아니었다. 그러나 못마땅한 수준은 아니었고.
가운데는 부라타(burratta, 영어로 “buttered.” 간단히 말해서 모차렐라와 크림으로 만든 생치즈)와 토마토의 부르스케타. 토마토의 신맛과 부라타의 부드러움이 잘 어울렸는데, 빵을 대각선으로 잘랐으면 표면적도 넓고 보기에도 더 좋았을 것이다. 뭐 별 결 다 트집잡느냐고 하겠지만, 실제로 브루스케타 만들 때 빵을 그렇게 자르지 않나?
오른쪽은 프로슈토와 멜론. 씹을 필요도 없을 정도로 잘 익은 멜론이 마음에 들었다. 멜론은 익은 냄새가 날 때까지 뒀다가 먹어야 되는데 그게 두려워서 사다가 바로 까면 무처럼 아삭해서 낭패를 본다. 세 가지 모두 딱히 떨어지지 않는, 익숙한 또는 안전한 조합이었다.
다음 전채는 겉만 익힌 (“타다키”) 참치가 두 쪽 든 샐러드. 역시 딱히 못 마땅한 구석은 없었는데, 레드와인 또는 셰리 식초로 만들었다고 짐작되는 비니그렛은 대부분의 음식점에서 먹을 수 있는 것처럼 단맛이 두드러졌다. 역시 단맛이 굉장히 강한 포도와 풍부하거나 진한 맛의 참치 그리고 리코타 치즈를 감안한다면 레몬과 같은 시트러스류의 즙을 이용한 신맛의 비니그렛이 더 좋은 선택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참치에 코리앤더나 큐민같은 향료 크러스트를 입히면 더 좋았겠지만, 그건 또 대다수의 입맛과 반할 가능성이 높으니 일단 통과.
그리고 주연이어야만 하는 스테이크. 익힌 정도를 알려주는 소 모양 장식을 꽂아가지고 나오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일종의 귀여운 제스처로 받아주면 되는데, 이런 것들이 지나쳐 주객이 전도되거나 음식 값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은 상황을 너무 많이 보기 때문이다.
일단, 2센티미터 정도 되는 두께는 마음에 들었다. 물론 이 정도도 충분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무게를 생각한다면 무리가 없고, 크러스트를 만들기 어려운 정도는 아니다. 그렇지만 크러스트는 생각보다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한쪽에만 약하게 있었고, 그나마도 반대쪽에는 없었다. 마침 직원이 다가와서 익은 정도가 마음에 드는지 물어보기에, 크러스트에 대해 되물었다. 스테이크의 목표 온도와 내오는 접시의 온도를 감안해서 한쪽만 만든다는 대답을 들었는데, 나는 그것보다 아직도 크러스트를 놓고 고기가 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우려를 감안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크러스트는 만족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 다음은 온도(“템퍼?” ㅋㅋ). 미디엄 레어로 구울 경우 스테이크 내부의 권장 온도는 섭씨 55~60도다. 이 정도면 어떤 느낌이어야 할까? 각 탕에 온도계가 달린 공중목욕탕들이 있는데(예를 들어 왕십리 민자역사의), 열탕도 40대 중반을 넘지 않는다. 보통 온탕의 온도는 체온에 2도를 더한 정도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스테이크의 내부 온도는 수치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최소한 차가운 느낌은 아니어야만 한다. 그런데…(하략)
아, 사진을 다시 보니 정말 미디엄 레어라고 말할 수 있는 건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혹시 해서 찾아보니 나오는 이이미지와 참조를 한다면 이 스테이크의 상태는 레어가 아니었을까?
다음은 맛. 여운이 길지 않았다. 어차피 점심 코스에 나오는 거니까 뭐 그렇게 깐깐하게 따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떻게든 숙성된 고기가 줄 수 있는 맛의 여운이라고 하기에는 약했다. 간은 약했고, 그보다 고기가 질기다는 느낌을 완전히 떨쳐버리기가 힘들었다. 나 자신도 이렇게 말하는 걸 믿기 어렵지만, 정말 그랬다.
곁들이 야채는, 다 좋았는데 브로컬리는 데친 뒤 불을 안 댔는지 차가운 부분이 있었다. 데친 상태 자체는 훌륭했다.
그리고 디저트. 구색을 맞춘다는 차원에서 떨어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더 언급하기 귀찮아서 통과. 다만, 초콜릿 케이크니까 크림이 더 낫지 않았을까?
딱히 다른 곳이 잘 생각나지 않는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가성비’로 따져본다면 이보다 더 좋은 점심 코스가 있는지 모르겠다(<더 반>이 조금 낫다고 생각하지만…). 분위기나 전체적인 조화, 이런 걸 따져본다면 개업초기라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높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사업이나 데이트용 점심으로는 정말 최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직도 글을 올리지 못하고 있지만 부티크 블루밍의 충격을 감안한다면, 같은 회사에서 내는 레스토랑이라고 믿을 수 없는 구석도 있다. 공간의 느낌도 싼 느낌 없이 세련된 것이, 대강 해서 날로 먹으려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러나 가성비에 기댄 단순 평가에서 한 발짝 벗어나면 사정은 조금 다른데, 그건 아무래도 고기 때문이다. 드라이에이징이라고 내세우는 것만큼의 맛은 과연 어느 정도여야만 하는 것일까? 스테이크 때문에 꽝이라고 말할 정도까지는 아니고 또한 점심 메뉴이기 때문에 이걸로 전체를 평가하는 건 무리가 있지만, 업체의 모태가 고기를 다루는 한식당이니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거기에 전체적으로 ‘안전빵’을 추구하는, 대형 사업체 특유의 느낌도 완전히 가셔내기는 어렵다. 긍정과 부정이 혼돈스럽게 머릿속에서 얽히고설키는데 전체적인 경험을 놓고 본다면 긍정적이고, 고기만을 놓고 본다면 아주 부정적이지는 않지만 만족스럽다고 하기는 어렵다. 선택은 가는 사람의 몫일 텐데, 나는 기회가 닿으면 한 번 정도 스테이크만 다시 먹어볼 생각이다.
# by bluexmas | 2011/04/29 14:53 | Taste | 트랙백 | 덧글(7)
비공개 덧글입니다.
그렇죠. 사실 고기만 맛있으면 그만인데… 너그러워지기로 했습니다-_-
붓쳐스컷도 더반도 상위에 올려놓았는데 블루님이 리뷰하신 걸 보니 기대감이 조금 들기도 하네요. 아, 미디엄레어에 대한 건 저도 동감이예요 저는 레어한 걸 좋아하는 편인데 그냥 레어를 시키면 정말 생고기를 줄 것 같은 구이의 정도;; 그래서 미디엄레어를 시키죠 =0=;;;
비공개 덧글입니다.
인테리어는 참 좋더라구요. 졸부 분위기 아니구요, 감각적이고 신경 쓴 듯한… 사시는 동네에 스테이크로 유명한 집이 있던데요. 여자 셰프였다가 나갔다고 들었어요. 저도 저런 소는 싫어합니다. 겉멋이죠. 그리고 고는 레어가 맞는 것 같아요. 육즙이 없더라구요. 그냥 퍽퍽.
temperature에서 나온 거 맞아요. 정말 그렇게 말합니다. 기절할 일이죠.
그런데 텍사스쪽은 그냥 로드하우스 그릴 그런데가도 고기가 워낙 좋아서. T.T
참, 쓰고보니, 템퍼링은 그 뜻이 아닌데, 민망했어요. ^^; 와, 다들 혀에 온도계를 단 듯. 저는 온도를 따질 정도는 못 되는데.. 구운 정도야 구분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