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 국내 출간!(축)
블로그를 통해 두어 번 언급했던 해롤드 맥기의 책 <On Food and Cooking>이 <음식과 요리>라는 제목(그대로;;)로 번역 출간 되었다. 이런 책은 번역하고픈 욕심은 있으나, 그 양이나 책의 성격으로 보았을 때 이름을 남기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솔직히 내키지 않는다.
대체 어떤 종류의 책이라고 마케팅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판매가 꽤 좋은 것 같아 한편 어리둥절하면서도 기분이 좋다. 어리둥절한 이유는, 예전의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은 사실 reference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쭉 숙독을 하시겠다는 용자가 있다면 말릴 생각도 없고 존경심도 표현할 수 있지만, 그래서 재미를 느낄만한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의미다. 그보다는 눈에 잘 띄는 곳에 모셔두고 먹는 음식, 재료, 또는 조리에 관한 궁금증이 생길 때 들춰 항목 별로 몇 페이지쯤 읽어보면 재미있는, 뭐 그런 책이다.
어쨌든, 이 책은 조금이라도 음식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쓰는 음식 관련 글에서 언급하는 과학지식도 거의 대부분 이 책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내세우거나 잘난체 할만한 것도 아니다. 음식에 대해서 글을 쓰자면 음식과 조리에 관한 이치를 알아야 될 필요가 있고, 이 책 한 권만으로 그 대부분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해롤드 맥기의 전공은 과학이 아닌 문학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과학 전공으로 시작했던 모양이지만…), 정말 최첨단의 “분자요리”가 아닌 이상 음식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음식 관련 과학 지식 또는 정보의 수준이 그렇게 높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첨언하자면, 폄하하기 위해 그가 문학 전공임을 밝히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에 나도 서점에 가서 책을 들춰보았다. 나도 책 번역해놓고 만만치 않게 씹혀봤기 때문에 뭐라 말할 입장이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문장은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솔직히 나는 번역본에 딱히 관심도 없다. 번역본에는 항상 위기가 따른다. 예를 들어 로버트 울키의 책들은 사실 이런 류의 진지한 책인데 우리나라에서 너무 아동용 과학 분답 분위기로 만들어서 책의 의미가 깎였다고 생각한다). 가격 문제는 어쩌면 원서와 일대일로 비교할 수 없는 것이, 번역하면서 분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원서는 896, 번역서는 1,328쪽). 영어에 문제가 없고 가격이 너무 높게 책정되었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원서를 보면 될 것이다. 전자책도 있으니 킨들이 있는 사람이라면 적시적소에 최고의 레퍼런스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쉽고 편한 문장으로 되어 있어, 영어 때문에 이해 못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판매지수가 가격이나 책의 성격에 비해서 만만치 않으니 관련 업종 종사자들이 많이 샀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정말 이 책을 참고해서 보다 더 좋은 음식도 많이 만들고 좋은 글도 많이 써서 우리나라 음식 문화가 더 많이 발전했으면 좋겠다. 트위터에 ‘와 해롤드 맥기 책 샀어염 ㅋ 이거 읽고 저도 훌륭한 셰프가 될래요 ㅋ’ 한 줄 날리려고 산 다음에 모셔만 두지 말고 제발 좀. 지금까지 이런 책이 없어서 꼭 이랬던 것도 아니겠지만… 사실 이런 책이 번역 출간 되었다는 것 자체를 무슨 화젯거리나 되는 것처럼 글을 쓰는 자체도 쪽팔린 건 아닌가, 갈등이 생긴다.
그런데 비싸다고 생각할 수 있는 한 편, 정말 돈 아깝다고 생각되는 어떤 곳에서의 저녁 한 끼보다도 싸지 않나…
# by bluexmas | 2011/04/09 12:20 | Taste | 트랙백 | 덧글(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