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 골든 라거-거품처럼 넘치는 구태

지난여름 전주 맥스 공장에 취재차 다녀온 후, 나는 국산 맥주에 가지고 있었던 실낱같은 희망도 버렸다. 그래서 솔직히, 이 맥주가 나오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어디에선가 무슨 맥주를 새로 내놓는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게 이건지 아닌지도 몰랐다. 다만 수입 맥주의 저변이 갈수록 넓어지는 이 상황에서 뭔가 새로운 것이 나오면 좋겠다는 마음만은 있었다.

아직도 그 맥주가 이 맥주인지는 모르지만, 어디에선가 <골든 라거>라는 맥주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라거? 지금 라거라고 하셨습니까? 물론 라거가 문제는 절대 아니다. 다만 재탕에 재탕을 거듭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새로 나오는 맥주가 라거라면 예전 것과 별 다를 바 없을 것임을 미리 말해주기 때문이다. 제목만 보고도 영화의 분위기를 알 것 같아요. 왜? 이번 영화는 속편 제 16편이거든요. 남녀 주연을 비롯한 등장인물도 다 같고 감독도 같고… 대사 몇 개만 다른 수준이지요.

그래도 직접 마셔는 봐야 하니까, 그제 마트에 들른 길에 640ml 한 병을 사왔다. 낱병 포장은 그보다 더 작은 게 없었다. 식스팩 따위를 살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밤 새워 일하고 새벽에 삼치를 구워 함께 먹어보았다. 참고로 삼치는 참 실망스럽게도 퍽퍽했다. 내가 조리를 못한 것 같았다.

어느 동네 홉을 썼다느니 하는 미사여구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단 마셔보았다. 새 국산 맥주가 나왔다면 신경 쓰는 점은 오직 한 가지이다. 끝에 남는 단맛. 그리고 언제나 옥수수라고 추정하는 재료의 쏘는 듯한 냄새. 의외로 이 맥주는 그 측면에서 양호했다. 뒷맛이 거슬리지 않았다고나 할까. 사실 이 두드러지는 단맛은 비단 국산 맥주만의 특징도 아니다. 지난주엔가 싱하를 두 캔 사다 먹었는데, 비슷한 단맛 때문에 한 캔은 아직도 냉장고에 모셔 두고 있다. 이건 당을 먹고 발효를 시키는 주류의 일반적인 특성이니 정도 차이만 있는 것 아닐까 싶다.

어쨌든, 그러한 측면에서 의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만족스러웠지만, 이 맥주는 딱지 가운데에 떡허니 붙여 놓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풍부함의 깊이”가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얕다면 얕다고도 할 수 있는 느낌이었다. 국산 맥주 특유의 단맛조차도 없기 때문에 이 맥주는 정확하게 두드러지는 맛이 없어 좋게 말하면 둥글둥글했고, 나쁘게 말하면 밋밋했다. 목에 걸리지도 않고 넘어가지만, 넘어가고 나면 ‘어라 내가 방금 마신 게 뭐냐’ 하며 딱지를 한 번 보고 ‘풍부함의 깊이가 다른???’이라며 물음표를 세 개는 달아줘야 할 것 같은, 그런 맥주였다. 한마디로 하자면, 병 크기도 그렇듯 아주 예전 기억 속의 오비 맥주를 특유의 거슬리는 단맛 없이, 조금 나은 재료로 다듬은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가격(1,480)까지 감안했을 때 이 맥주는 드라이피니시처럼 매도당하는 게 조금은 억울할 수 있는 정도는 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쁘게 말하면 밋밋하지만, 드라이피니시의 그 “드라이”하신 “피니시”처럼 정말 억지로 만든 듯한 느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문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왜 아직도 라거여야만 하는 것일까? 아직도 우리 맥주는 그 바탕에 대한 회의나 재고 없이, 가지고 있는 것들의 디테일만을 적당히 바꿔가면서 새로워 보이는 제품을 만든 뒤 적절한 마케팅으로 팔아먹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바뀌고 바뀌고 또 바뀌어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전략이 먹혀들 것 같지 않은데도, 내게 이 맥주는 여전히 그런 전략을 고수한다는 반증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구태는 여전히 거품처럼 넘치고, 한민족의 핏줄을 이어받은지라 나는 걱정을 완벽히 지울 수가 없다. 어떤 맥주 개발하시는 분들은 너무 연구에 몰두하시느라 “둘마트”에 가면 직수입한 맥주 500ml 캔을 1,500원에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시는 걸까? 그것들 가운데 한 두 개는 정말 괜찮기까지 한데? ㅠㅠ 마이스터님들 좀 쉬어가면서 맥주 만드세요ㅠㅜㅠ

 by bluexmas | 2011/04/05 10:31 | Taste | 트랙백 | 덧글(9)

 Commented by 아프란시샤아 at 2011/04/05 10:36 

한국도 외국처럼 홉의 사용량을 규정화 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맥주가 아닌 것이 맥주 상표를 달고나오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4/07 00:47

네 참 맥주라고 하기 민망하죠. 얘도 뭐…

 Commented by 措大 at 2011/04/05 11:10 

한국 음식 반주에는 “시원한” 라거가 잘팔린다는 굳건한 믿음 때문이겠죠. 그나마도 이런 신제품은 식객업소에는 단가 때문에 못들어가고. 맥주는 시원한거, 탄산이 짜릿짜릿하고, 원샷해도 무방할 정도로 잘 넘어가는 것. 이게 디폴트인한, 수입맥주에 밀리고 저도 탁주에 치이는 일은 계속되겠죠.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4/07 00:47

근데 이거 별로 시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국내 맥주들 다 잘 안 넘어가요 단맛 때문에. 참 안타깝습니다.

 Commented by 술마에 at 2011/04/05 12:24 

국산맥주 나올때마다 계속 커지는 실망이야 이젠 뭐 말로 안해도 다 그렇죠…

특히 OB는 정말 정이 안가네요. 전에 그 일도 그렇고…막걸리건 와인이건 변화주기가 있고 선호하는 맛도 계속 이동하는데 맥주는 정말 안바뀌고 있죠. 빨리 지방맥주가 활성화 되길 바랍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4/07 00:48

글쎄요 그럼 좀 나아질까요?

 Commented by 하로君 at 2011/04/05 13:32 

여전히 우리나라 맥주라는 그 느낌뿐이었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4/07 00:48

그랬습니다…

 Commented by Sean at 2011/04/10 02:12 

국산 맥주는 냉장고에 필스너 우르켈이 없을 때 울며 겨자먹기로 사 마시는 편이죠. 입맛이 괴상해 백스 다크만 마시다가 맛이 달라진 이후로는 아직 정착을 못했죠. 전 단맛보다는 홉맛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다음엔 맥스 대신 마셔볼만은 랄 듯 하네요. 물론 마트가서 필스너를 쟁이는게 우선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