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행복에게

좀 지났지만, 1,900번 대신?

잘 지내남? 그게 벌써 2004년이니 대략 7년쯤 지난 셈이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했는데, 이제는 가물가물하다. 뭐 이제 나도 사십을 바라보는 나이니까 기억력이 감퇴…라는 드립을 치고 싶은데 솔직히 그건 아니고 그냥 생각하기 싫으니까 머릿속 어딘가에서 차단을 시켜버리는 것 같다. 나이를 먹으니까 이런 기능이 발달하게 되는 줄은 몰랐어. 엄밀히 말하면 퇴화겠지만 나름 긍정적인 구석이 있으니 발달일 수도 있지 않겠냐? 뭔가 굉장히 모순화법 oxymoron 같기는 하다.

나는 뭐… 그동안 그럭저럭 살았다. 우리나라로 돌아온 건 알고 있나? 관심이 있는지 모르겠으니 간단히만 이야기하자면, 그렇게 됐어. 물론 내가 원해서 돌아온 건 아니고.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려 했는데 오히려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서 집단에 별 이득을 못 가져다주는 존재가 되었던 것일지도 모르지. 아니면 누군가 관심법 또는 독심술을 가지고 있어서 속을 들여다보니 어째 온 몸과 마음을 다 바쳐 헌신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 기회가 닿을때 냅다 잘라버린 것일 수도 있고. 어쨌든 그래서 급히 돌아와야만 했다. 집은 물론 냉장고, 세탁기까지 다 그냥 두고. 뭐 싸게 세 들어서 사는 사람들이 호강하는거지. 애 셋 있는 집이라데. 애들 그 정도 있으면 그 집에 살기 정말 딱 좋지. 세탁기도 그렇고, 특히 냉장고는 정말 쓸만한 건데. 여기서는 온통 디자인한답시고 꽃무늬니, 크리스탈이니 하는 조잡하고 시시껄렁한 것들을 잔뜩 박아서 파는데, 정작 거기에서는 표정도 없는 걸 살 수가 있었다니까.

그렇게 돌아와야만 돼서 좀 짜증은 나는데, 그래도 적당하게 잘 살고 왔다. 그냥 낮에는 적당히 일하면서 월급 받고, 저녁에는 블로그에 글 쓰면서 살았지. 돌아와서는 그걸 밥벌이에 연결하려고 발버둥치면서 살고 있는데,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 뭐 그냥 그럭저럭… 견디다 못해서… 까지는 아니지만 이러면 너무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아서 우연한 기회에 부업도 하게 되었는데, 현재는 부업이 약간 본업처럼 압박을 주는 상황이랄까. 그래서 시작했던 1월부터 지난 주까지는 굉장히 힘들었는데, 이제 숨통도 살짝 트이는 것 같고 다음 달만 넘기면 어떻게든 안정세에 접어들 것 같아. 뭐 거기까지 오는 과정에서도 만만치 않은 대가를 치러야만 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어쩔 수가 없는 듯. 아, 부업도 아직은 신통치 않아. 그냥 쏟아 붓는만큼 수익이 안 나오는 단계. 다 그렇지 뭐. 처음 일하는 게 그렇고,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고.

뭐 나야 그렇고, 한 번 좀 들르지 그래. 나도 뭐 지은 죄를 아니까 아주 돌아오라고 할 낯짝은 없어. 그래도 집 나간지 벌써 7년인데 한 번쯤 얼굴 보여줄 때도 되지 않았냐? 옛날엔 그렇게 무심했던 것 같지 않은데 내가 너무 닦아세워서 그렇게 된 것 같아서 미안해지려고 그러네. 그래도 혹시 올까봐서 매주 목요일이면 저녁에 김치찌개 끓여놓고 기다리고 있어. 그래서 수, 금요일에 밖에 나가고 목요일에는 웬만하면 집에 있는거다. 가끔 목요일에 외출할 일이 생기면 전날 끓여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가는데, 손 댄 흔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걸 보면 그새 왔다간 것 같지는 않지? 사실 미국에 있을 때는 김치찌개를 끓여도 안절부절 못했던 게, 깍두기나 뭐 이런 건 대강 토하지 않고 먹을 수 있을 정도로는 담글 수 있었지만 포기김치는 그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돌아와서 솜씨가 더 나아진 건 아니고, 어머니 김치가 아직은 짱짱하잖아^__^ 문제는 요즘 이 땅에서는 갈수록 매운 맛의 강도가 심해지고 있어서 고추가루 덕분에 좀 맵다는 건데… 그래도 뭐 그만하면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그러니까 무심하게 그러지 말고, 한 번 들러서 밥이나 한 끼 먹고 가. 예전처럼 구차하게 징징대면서 붙잡지 않을테니까. 뭐, 나이 먹고 좀 죽었네 싶으면 잊지 않고 한 번씩 튀어나와 주는 성질 꼬라지를 보면 그때보다 썩 나은 인간이 되지는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나름 국민 평균 수준에 거의 맞먹을 수 있을 만큼의 무심함은 길렀잖냐. 특히 여기에서 살려면 무심해지는 법을 좀 갈고 닦아야 하는지라… 게다가 너 없으면 죽는 것도 아닌 거 알거든. 뭐 그때야 정말 내일 죽을 것처럼 생난리를 피워댔는데, 시간 지나고 나니까 참 민망하데. 근데 또, 그때 그러지 않으면 사람 사는 것 같지도 않잖아. 주변 사람 죽었을때 설사 슬프지 않더라도 곡은 남들 보는 앞에서 구성지게 한 판 해 줘야 하는 것처럼. 일종의 상황 또는 맥락에 대한 예의 아니겠냐 그것도. 그래서 요즘도 봄앓이하는 듯, 안 하는 듯 그렇게 보내고 있어. ‘하는 듯 안 하는 듯’ 이라는 표현을 쓰는 건 나도 진짜 어떤지 잘 몰라서.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아.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냥 흘려보내려고. 할 수만 있다면.

어쨌든, 언제 한 번 꼭 들러. 나 한 달 있으면 서울로 이사가는데, 그러면 주소 알려주고 그러기 번거로와지니까 그 전에 들르면 좋지. 그래도 이 블로그가 한 6,7년 오래 굴러 먹어서 나름 사람이 좀 오니까 건너건너 소식이 가면 네 귀에도 들어가지 않을까 싶어서 글을 쓴다. 아직 바람도 차고 황사도 만만치 않은데 잘 지내고. 3월이나 9월에는 늘 환상에 빠져서 산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거 기억나지?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잖아. 그러니까 조심. 아,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혹시 노파심에서 해 두는 얘긴데,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너 없어도 그럭저럭, 괜찮아. 너의 부재가 삶의 의지까지 좀먹는 상황은 아니라구. 살아야만 하잖아, 그 어떤 경우라도.

그럼.

 by bluexmas | 2011/03/23 01:07 |  | 트랙백 | 덧글(14)

 Commented at 2011/03/23 07:1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3/24 00:32

뭐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딱히 큰 의미는 없이 고른 숫자입니다. 그때부터 망조가 들리기는 했지만.

 Commented at 2011/03/23 10:3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3/24 00:32

아이쿠 귀신이세요 쿠쿠쿠.

 Commented by 풍금소리 at 2011/03/23 16:37 

저자리…저기저기.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3/24 00:32

어딘지 아시겠어요?

 Commented by 파고듦 at 2011/03/24 21:53 

서울로요? 어디루?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3/24 22:09

왜요? 세제 들고 오시게요?

 Commented by 파고듦 at 2011/03/26 17:17

세제 ? 왠 세제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3/26 17:19

이사하면 왜 집들이 선물로 휴지나 세제 등등…

 Commented by 파고듦 at 2011/03/26 17:26

집들이 가도 됨?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3/26 17:27

할까요?

 Commented at 2011/03/25 13:0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3/26 17:19

그럴까요? 쿠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