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만 온다

동대문에서 버스를 내렸다. 건널목에서 파란불을 기다리는 동안 고개를 돌려 오른쪽 멀리 어딘가를 내다보았다. 다닥다닥 붙은 주택들이 보였다. 나는 동네 이름도 몰랐다. 그러나 저런 동네에서 사는 건 어떨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사근동이 저랬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는 거기가 아니었다. 언제나 가보지 못한 곳과 살아보지 못한 삶만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늘 여기나 가까이, 그리고 지금은 무의식 또는 습관적으로 천대를 받는다. 그들도 그걸 알아서 이제는 별 불평이 없다. 나도 언제나 그렇게, 갈 수 있었을 뻔한 삶에 대해 궁금하게 생각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삶이 있다. 그때는 믿을 줄도 알았다. 지금은, 믿을 줄만 모른다.

청계천을 따라 걸었다. 오늘은 정말 지는 햇살의 느낌이 꽤 봄 같았다. 봄이 온다. 아니, 봄만 온다.  유난히도 지독했던 겨울이 너무 많은 것을 그 차가운 품에 안고 이 땅을 떠난다. 봄만 온다. 그렇게 봄만, 온다. 겨울의 품에 안긴 소중한 것들의 밭은 기침 소리가 들린다, 하얗게 질린 얼굴도 보인다. 그렇게 다 떠나고 봄만, 온다.

 by bluexmas | 2011/02/19 00:25 | Life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