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내 집을 보여주는 것도 싫지만, 남의 집을 보는 건 어쩌면 더 싫다. 마지막으로 들른 집에서는 할머니가 거북선 비료 포대로 콩나물을 키우고 계셨다. 그 바로 전에 들른 집에서 남동생은 떡국 반 공기로 점심을 때우고 있었고, 누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는데 나는 처음 들었지만 그 노래가 요즘 말 많은 모 걸그룹의 그것이라고 알 수 있었다.
마음의 여유는 없었지만 하루 종일 어머니와 나들이를 겸한 집 탐색에 나섰다. 시간을 내어 늘 가는 곳들에서 어머니와 점심을 먹고, 또 커피를 마셨다. 여러 구석으로 마음이 착잡했다.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은 다른 사람의 삶을 보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이었고 또 나머지는 오산에서의 생활을 어쩔 수 없이 접어야만 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제대하고 자취를 위해서 집을 찾을 때 느꼈던 기분을 그대로 느꼈다. 역시 인생은 데자부, 풍경은 바뀌지 않는데 보는 눈만 늙어간다. 이런 시간은 언제 또 다시 찾아올까요? 언제나 많은 것들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조여온다. 그러나 또 대부분은 다시 돌아온다. 하지만 상황은 늘 전과 같지 않기 때문에 더 착잡해진다. 헤어지는 건 언제나 슬플 수 밖에 없는데, 만날때는 정말 그걸 너무 생각하지 못한다. 만남이라는 상황은 애초에 그렇게 설계되어 있지 않는 것 같다. 시작부터 슬프면 정말 너무 슬플 수 밖에 없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나만 이렇게 생겨 먹어서 이딴 생각만 하고 있는 걸까.
# by bluexmas | 2011/02/13 01:49 | Life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