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는 표정

사람들 복작거리는 대로를 걸어 내려오는데 그를 보았다. 나보다도 더 봄을 기다리는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이었다. 먼발치에서조차 알아볼 수 있었다. 확인하고 싶어져서 일부러 마주쳐 지나가면서 어깨를 부딪혀보았다.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심지어 내가 자신을 치고 지나갔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보였다. 눈을 보니 알 수 있었다. 어딘가 바라보고 있지만 어딘지는 알 수 없는 눈이었다. 바라보고 있는 곳이 봄이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아직은 어디까지 왔는지조차 가늠하기 힘든 봄, 매년 이맘때쯤이면 어쩌면 안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 불안해지는 봄. 익숙해져서 본격적으로 아끼고 사랑해주려고 하면 바로 여름에 쫓겨 사라져버리는, 그래서 언제나 봄인, 봄.

등을 돌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그러는 동안 또 몇 명의 어깨가 나에게 부딪혀왔지만 다들 봄이 무엇인지조차 기억하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남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급한 사람들일 뿐이었다. 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까지 여러 사람들을 만났지만 아무에게도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봄에 대해 관심을 가질 사람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모두 남자인지 여자인지, 여자라면 예뻤는지 키는 큰지 작은지 몸매는 좋은지 나쁜지 치마였는지 바지였는지 힐은 얼마나 높았는지 뭐 그런 것들만 물어볼 게 뻔했다.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정말,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렴 뭐.

 by bluexmas | 2011/02/09 20: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