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폭의 대가
몇몇, 돌아보면 굉장히 심각한 분수령이 될 수 있는 상황에 처했을때 나는 늘 자폭과 같은 선택을 했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돈이나 명예 같은 것들보다 작은 행복을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삶은 짧고 단 한 번 뿐이니까 뭐 그런 생각으로.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갑자기 우스워질때가 있다. 그야말로 풉, 하고 뿜을 것만 같다. 아 치기어린 생각의 결과,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행복을 행복으로 믿고 안 믿고는 차치하더라도, 내가 정말 그런 행복을 추구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런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있어보인다고 믿었던 것인지 이제는 왠지 알 수 없어졌기 때문이다. 누군가 ‘저는 생선회를 좋아해요’라고 말했는데 그게 정말 회의 맛을 좋아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말하는 것이 어떠한 이유에서든 있어보이기 때문인지 다들 오랫동안 앉아서 곰곰히 생각해보지 않으면 잘 모른다. 대답은 언제나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아, 게다가 생각해보면 큰 행복을 얻지 못하고 작은 행복만 얻는 것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이런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예를 들어 ‘우리는 돈을 많이 못 벌지만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아요’라는 상황은 돈을 많이 벌면 불가능한가? 돈을 많이 벌면 오순도순 못 사나? 돈을 많이 버는 가족은 그 안에서 단란한 행복을 찾지 못하나? 아니 뭐 내가 그런 말의 가치를 통째로 무시한다는 건 아니지만(아 나도 그렇게 살고 싶기도 하고)…
작은 행복, 물론 아직도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내가 좇는 가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자폭해서 나는 정말 내가 원하는 행복을 얻었나…그 물음에 대한 답은 부지불식간에 나오지 않는다. 혹시 그러한 작은 행복조차도 내가 들이는 노력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뿜다가도 소름이 좍 끼칠때가 있다. 그래, 어차피 짧은 삶인데 나는 왜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했을까. 양날의 칼을 받으면 어째 나는, 언제나 내 피를 보는 쪽으로 날을 잡았던 것만 같다. 다른 사람을 배려해서가 아니다. 나는 그런 것 잘 모른다. 그저 빨간색은 나에게만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피의 빨간색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검은 색에 가까웠다는 점이다. 후회해도 이미 흘린 피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입으로 상처를 빤다고 삼킨 피가 다시 피가 되어 바로 혈관으로 되돌아가지는 않는다. 피 흘린만큼의 현기증은 감수해야만 한다. 또한 그만큼의 피를 다시 만들기 위해 밥도 한참동안 꼭꼭 씹어 열심히 먹어야만 한다. 고기를 싫어하더라도 좀 먹어줘야만 한다. 내 피에서도 그런 냄새가 날 수 밖에 없다. 생각한만큼 새빨갛지 않더라도 피가 정직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것만큼은 잊지 말아야 한다.
# by bluexmas | 2011/01/31 00:40 |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