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느린마을 막걸리 발효빵

아직 글도 올리지 못했는데, 지난번에 사다 마셨던 느린 마을 막걸리 마지막 병을 2/3쯤 남겨 막걸리 발효빵을 만들어보았다. 6일째까지도 그럭저럭 마실 수 있는 막걸리는 8일째 되자 무시무시한 놈으로 변해버렸다. 그걸 가지고 발효빵을 만들어본 것이다. 사실 ‘만들었다’는 동사를 붙일만한 자격이 없는 것이기는 하다. 귀찮아서 레시피도 없이, 막걸리에 반죽이 될 정도까지 밀가루를 섞은 정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소금과 밀가루, 막걸리만을 썼는데, 일단 아무리 밀가루를 더해도 반죽이 생각하는 만큼 뭉쳐지지 않아 이 실험이 어디로 갈지 예측하기는 아주 쉬웠다. 통밀로 반죽을 하면 밀가루를 엄청나게 많이 때려 부어도 반죽에 힘이 생기지 않고 그저 끈적거리는 상태를 유지하는데, 꼭 그런 상태였다. 시작부터 망조랄까. ‘스폰지’의 상태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하룻밤 정도 추운 다용도실에서 발효를 시킨 다음 거기에 밀가루를 더해 진짜 반죽처럼 만들어보고자 했으나,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 밀가루를 웬만큼 섞자 진짜 빵 반죽처럼 되는 듯 보였으나 시간이 좀 지나자 다시 스폰지처럼 퍼져버렸다. 경험은 일천하지만 이 정도 상태의 반죽이라면 돌덩어리가 나올 것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는 나, 그렇지만 결과라도 보려고 오븐에 구워보았다. 형태를 잡을 수 있는 반죽이었기 때문에 냄비에 넣고 무반죽빵처럼 구워보았다.

결과? 보시다시피 눈으로만 보면 뭔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한 대실패. 껍데기는 먹으라면 먹을 수도 있는 상태였지만, 속은 살짝 덜 구워져 찐득거리는 밀가루 떡이었다. 물론 정확하게 예상했던 결과. 서너입 정도 먹어보다가 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중세시대 순례자에게 들려 낮에는 먹고 밤에는 베고 자는데 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빵이었다.

물론 레시피도 없이, 어린아이들 무슨 찰흙 놀이하듯 만든 반죽이라 실패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반죽이 계속 스폰지와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이유는 궁금했다. 막걸리가 알코올이라 그런 것일까? 일부를 발효종으로 쓰려고 남겨놓기는 했지만, 솔직히 별 기대는 없다. 개인적으로는 자연발효종마저 굳이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특히 우리나라라면 마케팅 말고는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막걸리나 기타 수단을 이용한 발효빵들에도 별 미련은 없다. 그냥 평범한 효모로나 빵 잘 만들었으면 좋겠다. 괜히 김탁구 잘 나간다고 막걸리빵이니 뭐 이딴 것들 내놓아서 본질을 호도하는 마케팅이나 펼치지 말고. 아, 빵 만드는 것보다 그걸 더 잘하지 참… ‘Play your strength’랬으니 뭐.

 by bluexmas | 2011/01/06 09:52 | Taste | 트랙백 | 덧글(9)

 Commented by pachi at 2011/01/06 09:58 

저 어릴 때는 어머니가 막걸리로 야채롤 빵을 만들어주셨었는데 , 막걸리를 넣고 반죽하면 심하게 찐득거렸었죠.

 Commented at 2011/01/06 10:1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홈요리튜나 at 2011/01/06 14:20 

막걸리가 들어가면 왠지 건강해질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는 듯..실제로 별 차이 없을 것 같지만요

전 발효빵은 무조건 적당히 계량하고 적당히 문질거리면 되는 줄 알았는데 제과보다 더 섬세히 다뤄야 하더라구요..어려운 발효빵의 세계-_-;;

 Commented by 풍금소리 at 2011/01/06 23:12 

저 빵 읃어먹고(얻어먹고) 싶네요.-.-

 Commented by 딸기쇼트케이크 at 2011/01/07 00:16 

저희집에서는 막걸리를 가만 두면 밑에 하얗게 가라앉는 가루 부분만 모아서 빵을 만들어봤었어요. 부모님이 위에 맑게 된것만 드셔서; 찜빵 형태로 만들었었는데 좀 퍽퍽하긴해도 꽤 독특한 풍미의 빵이 됬었거든요. 부모님은 괜찮다고 하셨지만 저는 빈말로라도 맛있다고 여러개 먹긴 힘들었지만; 뭐뭐 막걸리로 빵 만드는건 꽤나 난이도 있는 작업일지도;

 Commented by 푸디 at 2011/01/07 01:55 

분자요리 글 읽고 이거 읽는데, 역시 한국에서는 이 버즈워드가 너무 잘 통하는 거 같습니다. 막걸리부터 녹차까지…. 어제 녹차피자테러를 당한 뒤라 -_-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1/18 01:06

녹차 피자 그 존재 자체가 난센스입니다. 아무런 효과도 없고 웬만큼 말차가루 넣어서 그 색도 안 나죠. 그렇다면?

 Commented by bitchfever at 2011/01/07 15:02 

실패해도 좋으니 남는거 있으면 부산으로 보내주세요..아..배고파라. 아직 커피 밖에 못마신 비취입니다.

 Commented by cleo at 2011/01/07 16:28

비취는 ‘밀가루 떡’을 보내줘도 그게 실패한 거란거.. 모를꺼에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