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이야기
검색을 통해 서대문구 소속 시의원으로 밝혀진 백금산 의원으로부터 새해 인사를 받았다. 서울로 옮길 계획을 세우고 있기는 하지만 서대문구는 후보지가 아니어서 좀 어리둥절했다. 차차차기 후보 정도를 목표로 삼고 부지런히 기반을 다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귀찮아서 열심히 하시라고 답문은 보내지 않았다.
그와 거의 같은 시각, 모 레스토랑으로부터 또 다른 새해 인사 문자를 받았다. 그것도 두 통에 걸친, 인사 치고는 다소 긴 문자였다. 물론 단체 문자였다. 그 문자를 받고 나니 사실 지난 해가 가기 전에 털어버려야만 했을 이야기가 둘이 아닌 셋이라는 걸 기억하게 되었다. 나는 그 분이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그래서 쫓겨나듯 그 자리를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는지 했는지 그 이유를 아직도 모른다. ‘잘못한 게 없으니 억울하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지만 무엇인가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다. 진짜 문제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조율할 가치조차 없었느냐는 것이다. 아니 뭐, 그것마저도 개인의 선택이므로 내가 왈가왈부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답답하더라도 존중할 수는 있다. 그런 상황이라면 내 전화번호는 레스토랑의 홍보 목록에서 지워지는 것이 맞다. 어떠한 식으로든 상종할 사람이 아니라는 낙인이 찍혀야 하는 상황이라면, 뒷끝없고 깔끔한 게 좋지 않은가. 설사 잘 가는 곳이라고 해도 홍보문자를 받는 건 거슬린다. 하물며 이제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어진 곳-시험해보기 위해 가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다. 문전박대 당하는 손님놀이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의 문자는 받아 무엇하겠나.
어쨌거나 음식은 참 좋았다고 생각했다. 안 그랬다면 굳이 그런 상황을 만들었을 이유가 없다(물론 작년 말에 깨달음을 얻었으니 앞으로는 절대 그런 상황조차 만들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그냥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들만을 하겠다는 의미이다). 그 때가 봄이었고 그 뒤로도 정기적으로 이런저런 곳에 가게 되었지만 거기보다 잘 하는 곳보다 못하는 곳이 더 많았다. 그래서 나는 가기 뭐한 상황이 되었지만 사람들에게 갈만한 곳이라고 이야기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않겠나. 그렇다고 해서 무슨 화해의 제스춰처럼 이런 이야기를 꺼내느냐면 그건 또 아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이다. 만약 대체 원인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어떤 결과를 낳더라도 해명 또는 사과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거기에 못가게 된다고 해서 내 삶이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결과보다 거기에 이르는 과정이 사람을 더 성가시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생전 볼 일 없는 어떤 사람은 그저 내 존재 자체만으로도 불쾌함을 느끼며 살아갈 것이다. 그런 상황에 비한다면야. 메일 따위를 보내는 것조차 그렇게 바람직해보이지 않으니, 다음에도 홍보 문자가 날아온다면 가장 정중한 어투로 편지라도 한 통 써서 내 전화번호를 홍보 목록에서 지워달라고 부탁드려야 하겠다. 그래야 균형이 맞지 않을까. 나도 더 이상 마음에 두고 살고 싶지 않다.
# by bluexmas | 2011/01/02 23:47 | Life | 트랙백 | 덧글(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