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동선

 여전히 편도선이 부어있다. 늦잠을 잤다. 밤에 안쳐놓고 잔 밥을 눈도 못 뜬채로 우겨 넣는다.

오산역 열 시 십오 분 기차. 아예 집에 올 기차표까지 어젯밤에 사 두었다. 늘 타던 여섯 시쯤의 기차는 벌써 매진. 그 앞뒤의 표를 다 산다. 취소하면 400원만 손해보면 된다. 서서오는 것보다는 낫다. 느긋한 마음으로 서울로 향한다.

명동교자 브런치로 칼국수를 먹었다. 오늘은 돌아와서 먹어본 가운데 가장 맛이 없었다. 이곳의 음식은 간이 센다. 짠 것과는 다르다. 오늘은 짰다. 맛이 어우러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만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 집 김치를 한 번도 용서한 적이 없다. 그 집 김치 또는 겉절이는 폭력이다. 그거 먹으러 그 집에 가지는 않는다. 그 사이 가격도 천 원이 올랐다. 생각이 많아졌다.

(당신의 상상력으로 채워주세요)

에릭케제르 내일 먹을 빵을 몇 덩어리 샀다. 빵까지 굽기는 너무 힘들고 또 날씨가 이래서 빵이 더더욱 구려진다. 내 앞의 아저씨/할아버지는 빵과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샀는데 “이거 안 새는 컵이지?”를 10초 동안 스물 두 번 정도 점원에게 물었다. 에릭케제르의 케이크는 좀 조잡한 편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오늘 파는 것들은 한결 더 조잡해보였다. 학생들이 연습삼아 만든 느낌. 계산대도 하나라 복작거렸다.

방산시장 크림과 버터를 산다. 매일유업 크림 밖에 없다. 음… 그러나 일단 산다. 두 통이나 산다. 버터도 두 덩어리나 사 버린다. 혹시 연말에 어딘가 뭘 만들어 가지고 가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버터가 금도 아니고 사재기는 또 뭐하는 뻘짓일까. 노랗기도 하고 무겁기도 한게 어째 느낌은 비슷하다. 앵커버터를 사 봤다. 버터덩어리만한 금괴가 있으면 짐 싸서 통영으로 바로 내려간다.

광화문 동대문까지 걸어가 지하철을 타고 이동. 동대문 5호선 역은 내부를 싹 바꿨는데, 의자가 너무 없다. 물론 유동인구를 위한 공간을 확보해야 되겠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참… 잡지를 한 권 사고 일에 필요한 책을 한 권 들었다 놓았다 했다가 놓았다. 27년된 기출문제까지 포함하는건 확실히 허세 또는 오바지. 계산을 하려는데 웬 아저씨가 “내가 여기 20년 단골이라 얼굴 다 기억하니까 종이 봉투를 내놔!”라며 진상을 떨고 있었다. 친절한 여직원이 짐을 받아 봉투에 담아주자 뒤에 있던 다른 아저씨가 어디에선가 공짜로 얻은 커다란 달력을 내밀며 그것도 담아달란다. 아저씨들이 20년 단골이면 나는 30년 단골이오… 곱게 늙어야 한다, 곱게…라고 곱씹으며 길을 걸었다. 시간을 보니 네 시 기차도 탈 수 있을 것 같아 표를 한 장 또 예매한다. 서울을 빨리 빠져나가는 것이 오래 사는 지름길이다.

롯데본점 파슬리를 샀다. 카르파치오를 만들어 먹으려고 방어를 찾았으나 없다. 역시…

신세계 방어가 있다. 비싸다. 떠나기 전에 찾으러 오겠노라고 말하고 길을 건너 도향촌에 간다. 요즘 갑자기 도향촌 월병에 관심이 간다. 내 돈 주고 사먹어 본 건 지난 번이 처음인데… 아주머니는 인기 많은 가게의 주인인 것치고 친절한 느낌-전형적인 화상인걸까?-인데 크리스마스에도 잘 팔린다고 한다. 케이크 대신 산다고. 아주머니와 잠깐 프랜차이즈 케이크를 씹는 시간을 가졌다.

다시 신세계 갭 세일. 으음… 사려고 점찍어둔 코듀로이 바지가 세일인데 지금 사면 수선을 고려할 때 네 시 기차를 타지 못한다. ( )에서 만만치 않은 지출을 했으므로 일단 넘어간다. 세일하는 면 스웨터 몇 벌을 입어봤다. 잠시 망설인다가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옷이 아니고 몸이라는 사실을 다시 뼈저리게 느끼고 전부를 탈의실에 두고 나왔다. 굉장히 친절한 여직원이 계속해서 쭈그리고 앉아 여자 손님들 바지 길이를 봐주고 있었는데 (                         ). 다시 지하로 내려가 방어를 산다. 춥지만 차비를 아끼기 위해서 서울역까지 걸어간다.

서울역 하루 종일 무슨 콘서트를 한다. 열차에 몸을 들이니 앞에 앉은 아저씨가 거의 소리를 지르며 전화통화를 한다. 자리에 앉아 나머지 기차표들을 다 취소했다.

오산역 짐이 많아서 택시를 타야지… 라며 걸어가는데 멀리에서 88번 버스가 온다. 근데 색이 연한 라임그린이라 아주 당황했다(평소에는 노란색). 처음 보는 기사는 차를 미친듯 험하게 몰았다. 집에 돌아온 시간은 다섯시 반이었다.

 by bluexmas | 2010/12/25 00:14 | Life | 트랙백 | 덧글(6)

 Commented by 펠로우 at 2010/12/25 00:52 

명동보다 이제 강남교자가 더 낫다는 거 아시면서 굳이 가셨군요^^;; 그쪽 김치는 조미료 폭력을 마구 휘두르는 깡패로 유명한가 봅니다;; 도향촌 사람들은 화교가 아닌 한국인이라 줏어들었습니다.

요새는 춥다고 광역버스에서 난방을 엄청 틀더군요. 히터가 있는 좌석에 앉으면 죽을 맛입니다.. 성탄절 잘 보내세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2/26 21:49

아 그렇군요. 도향촌 이야기는 쇼킹합니다@_@ 그랬군요. 겨울 광역버스는 정말 죽음이죠. 특히 강남역 이런 데서 막히면 정말 대책없어집니다… 광역버스 인생 15년이라 제가 그건 좀 잘 압니다ㅠㅠㅠ

 Commented by 풍금소리 at 2010/12/25 11:53 

명동교자 김치 너무 웃기죠?ㅋㅋ매일 김장을 하시나봐요.

전 모르는 팀이랑 같이 앉아야 한다는 게 짜증나요.

특별히 2인용 테이블을 더 늘리던지 해야 할 것 같은데…(장사가 잘되니까 그거 준비하는 데는 별로 힘도 안들건데…)

가격 오르기전 기억은 안나는데 양,많은 건가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2/26 21:50

처음 먹었을때부터 지금까지도 이해를 못 하겠어요. 시원한 김치가 더 잘 어울릴텐데… 명동에서는 정말 밥 먹을만한 집이 없으니까요. 차라리 조계사까지 걸어가서 단골 중국집에서 굴짬뽕 먹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양은 별로 바뀌지 않았던데요.

 Commented by 홈요리튜나 at 2010/12/25 21:30 

방산시장은 재료보다 도구가 저렴하다고 들었는데 정말인가요?? 용서할 수 없는 맛인데 ㅜ블루마스님을 또 찾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요..자비를 베풀러 가시는 걸까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2/26 21:51

근데 인터넷에서도 대부분 그 업체들 매장이 있어서 살 수 있어요. 김치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먹는거죠. 국수나 만두는 괜찮았는데 이번엔 좀 허술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