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통다리에 담긴 희망

학생 그거 광고 아니야? 아닌데요. 그럼 뭐야? 이걸 보고 학생들이 학원에 오는 거에요.그게 광고지 뭐야? …… 광곤지 아닌지 나랑 같이 경비실 가서 알아볼까? 경비실에 왜 가요? 그럼 광고지? …. 얼른 가.

그때 딱 걸리지만 않았어도 아마 나는 그 중고삐리를 닦아 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청소를 하려고 대대적으로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들어오던 참이었다. 문이 막 닫히던 차 그가 쑥,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는 내가 보는 앞에서 우편함에 광고지를 집어 넣었다. 아마 내가 사라진 다음에 했더라도 나는 그를 닦아 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광고고 뭐고 다 좋은데, 쓰레기는 내가 치워야 한다.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시켜 먹지 않을 족발이며 해물탕 광고가 잔뜩 실린 안내책자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집에 올라와서 경비실에 인터폰을 날렸다. 그 이후에도 일이 있었지만, 귀찮으니까 여기 늘어놓지 않기로 하자. 꼭 이런 일 있으면 먹고 사는 얘기 하는 사람이 있을텐데, 나 또한 먹고 살기 바쁘고 짜증나는데 필요 없는 광고 전단까지 치우고 싶지 않다. 여기가 무슨 강남 한복판의 부촌 아파트도 아니고, 그거 돌리는 중고삐리네 집과 내 수준을 따져보면 아마 중고삐리네 집이 훨씬 더 잘 먹고 잘 살 것이다. 그리고 같은 이치로 서울 웬만한데 노점상하는 집안이 나보다 훨씬 더 잘 먹고 잘 살 것이다. 내가 정말 돈 얘기를 안 해서 그렇지.

밤에 부랴부랴 이마트에 갔다. 본가에 차를 가질러 갔는데 열쇠를 안 가지고 갔다. 부랴부랴 본가에 다시 올라가서 원래 열쇠 말고 비상 열쇠를 가져왔는데, 돌리니 도난경보장치가 울렸다. 패닉 일보직전,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올라가 진짜 열쇠를 가져 온다. 요즘은 뭐랄까, 내가 나 꼬라지를 보고 웃을때가 많다. 기술은 없고 감정만 앞선 연극배우의 1인극을 보는 듯한 기분이다. 파도는 쉴새없이 치지만, 이게 글쎄 담수인 것이다. 짜지 않다. 그래서 바위로 몰아쳐도 별 충격이 없다. 그래서 바위는 늘 담담하다. 바위니까. 오늘도 그런 기분이었다. 미트볼 스파게티를 만드려고 소와 돼지고기 간 것을 사려는데 돼지고기에서 핏물이 너무 많이 빠져 나왔다. 가서 물어보니 아주머니가 돼지고기는 쇠고기랑 달라서 육즙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다른 날이라면 아무런 말도 안 했을 것이다. 냉장고에는 갈아놓은 돼지고기가 잔뜩 있었다. 그냥 그걸 주셨으면 애초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을… 딱딱하게 굳은 기분은 수프를 만들기 위한 국물을 내는데 필요한 닭통다리를 한 팩에 이천원씩 파는 것을 발견하고 누그러졌다. 남아 있는 세 팩, 그러니까 닭 세 마리 분을 냉큼 집어 들었다. 셋 모두 다리가 튼실해보였다. 원래 통으로 파는 닭보다 더 큰 것들이니 뭐 그래보일 것이다. 어쨌든 그 튼실함에 감동을 먹고, 이 다리들의 도움을 받아 이 풍진 세상을 뚜벅뚜벅 걷고파!!! 라는 지극히 새마을운동스러운 감회에 젖어들었다. 그러다가 나보다 백만 배는 잘 생긴 정우성에게 돈을 주기 싫다는 이유로 샀던 대형컵 포함 기네스 세병 들이 셋트 두 상자를 도로 술 선반에 가져다 놓고는 그냥 얌전하게 낱병으로 두 병만 집어들었다. 가격을 비교해보니 잔이 1,500원꼴이었다. 컵덕여러분들에게는 좋은 아이템이겠지만 솔직히 나에게는 별 필요가 없었다. 집에 좋은 맥주잔, 예전에 집들이했을때 받은 멋진 맥주잔이 있으니까! 라고 스스로를 자제시키며 집에 돌아와 방금 막 냉동실에 잠깐 넣어 두었던 기네스를 따서 따랐더니 아 글쎄 이게, 가장자리에 불룩하게 솟은 부분이 있는 불량품이었던거라… 아 이 새끼, 분명히 이 잔 셋트 한 5불에 떨이 할인 매장에서 샀을거야. 그때 내가 20명 넘는 사람들 먹인다고 들인 돈이 얼마고 그 사람들 음식 다 만든다고 시간이… 그러고 보니 그 인간, 내가 같이 점심 안 먹으러 간다고 Why don’t you join us?라고, 다분히 원망 섞인 메일도 보냈었지? 마누라가 부동산 중개인인데, 사실은 그녀를 통해 집을 샀었다. 그랬더니 200불인가를 상품권인지 수표로 주었고, 나도 아이 생일인지 뭔지 턱으로 50불을 돌려주었는데, 나중에 얘기 들어보니 보통 집 사면 냉장고 한 대 정도를 준다고 하더라. 그도 그럴 것이 집 한 채 팔면 커미션이 3%인가로 알고 있는데 아무리 내 집이 싸구려라고 해도 그 정도였다면 냉장고가 몇 대였을지…

 by bluexmas | 2010/12/24 00:43 | Life | 트랙백 | 덧글(12)

 Commented at 2010/12/24 01:2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2/25 00:18

네 알겠습니다. 상황 조망중입니다… 절차가 복잡해서요.

 Commented at 2010/12/24 08:2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2/25 00:18

근데 또 이걸 읽고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별로 없어요. 그렇게 느끼셨다면 빙고!

 Commented at 2010/12/24 08:5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2/25 00:19

네 추천 감사드려요^^ 그렇지 않아도 따로 감사 인사 드리려 했습니다~

 Commented at 2010/12/24 14:2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2/25 00:19

네 거기에 꽉차게 채우려면 그것도 좀… 저는 기네스를 썩 좋아하지는 않아요. 진저브레드에 넣으려구요.

 Commented by 풍금소리 at 2010/12/24 16:18 

릴랙~스…앤,메리 크리스마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2/25 00:19

네~ 저게 릴랙스한 상태로 쓴 거라면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메리크리스마스입니다~^^

 Commented by windwish at 2010/12/24 18:23 

그래도 닭은 맛있었죠? ^^;

이런 잡담 좋아요. 현관문에 붙이는 전단지도 짜증나고..알고보면 손해본 거 같은 일 투성이.

그래도 Happy holiday~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2/25 00:20

닭 아직 안 먹었어요. 닭이 아니라 국물을 내려고 사서 닭은 따로 먹게 되는 뭐 그런 이상한 상황이랄까요;;;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