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현재만 보고 살 수 없다. 미래도 준비해야 한다. 애석하게도 내가 준비하는 미래는 재테크가 아니라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다. 재테크도 하고 싶기는 한데 사실은 돈이 없어서 못한다. 민둥산에서 감히 모닥불 피우려 시도도 하지 마라. 풀? 그런거 없다. 얼어죽는 게 당신의 운명일 뿐이다.

얘를 만들어 내면서 마감을 하면서 또 다른 일까지 하느라 마감이 그렇게 버거웠었다. 서로 다른 일을 한꺼번에 할 때의 문제는 솔직히 몸에 있지 않다. 마음에 있다. 각각의 세계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강박관념 때문이다. 더 웃긴 건, 이 모든 것이 사실 재물의 이득과는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이상하게 정말 뭘 해도 나는 ‘아 이걸 해서 돈을 벌어야 되겠어’라는 식으로는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부끄럽지 않은 게 먼저다. 그러면 잘 하는 거고 잘 하면 돈이 따라오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솔직히 그렇지 않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정말 ‘열심히 하면 누구나 잘 먹고 잘 살 수 있어요’의 지극히 ‘나이브’한 원칙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지도 오래지 않던가. 이렇게 말하면 또 ‘아니 저 새끼는 왜 저렇게 어둡고 비관적…’이라고 또 말하겠지만.

여름에 정동진과 삼척의 눅눅한 모텔에서 3박 4일 동안 묵으면서 세째를 만들었는데 그 이후 자괴감에 좀 시달렸다. 왜 꼭 이렇게 해야만 하느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치약도 와사비도 아닌데 짜내야 된다는 게 싫었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숨을 쉬듯 쓰고 싶었다. 힘을 빼고 쓰고 싶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네째는 게으르게 만드는 게 목표였다. 슬렁슬렁 밥 먹고 부른 배를 움켜쥐고 음악 틀어놓고 썼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도 쓰고 일이 가장 잘 안 되는 시간대인 오후 서너시 대에도, 밤에도 썼다(그러나 웬만하면 밤에는 쓰지 않으려 했다). 결과는 바란 적도 없고, 과정을 스스로 학습하고 싶어서 만들었다. 잠정적으로 마흔 살이 되기 전에 나를 찾겠다고 정해놓았는데 그런 과정의 일환으로 생각하며 만들었다.

더 쓸 말은 있는데 결과도 아닌 과정을 가지고 너무 말을 많이 늘어놓는 건 꿈보다 해몽이 더 좋은 지랄인 것 같아 여기에서 줄여야 되겠다. 그래도 올해는 둘이나 만들어서, 나름 뿌듯하다. 이런 비유가 좀 그렇지만 얘들은 아직 손발가락이 몇 개 없거나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안나서 평생 대머리로 살아야 될 슬픈 운명을 지니고 있거나 뭐 그렇다. 죽을 때까지 이런 애들만 만들어야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사실 만만치 않다. 누군가 알아준다는 측면에서 나는 비정상이다. 그래도 계속 만든다. 앞으로도 계속 만들거다. 이 다음 녀석도 벌써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죽을때까지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나는 이걸 내 삶의 지극한 즐거움이라 규정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by bluexmas | 2010/12/16 00:36 | Life | 트랙백 | 덧글(7)

 Commented at 2010/12/16 08:1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10/12/16 13:1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10/12/16 18:0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백면서생 at 2010/12/16 22:51 

또 한권 나오는건가요. 마지막까지 잘 마무리하시고 순산하시길 바랍니다.

 Commented at 2010/12/17 16:2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풍금소리 at 2010/12/17 17:55 

다른 건 모르겠고 마감재(?) 처리 너무 깔끔하시며 글씨 또한 이쁨.

전 얼마전에 전국 각지로 대량소포 보낼 일이 있었는데 저러지 못해서 택배상자 이용했다지요.

올 한해 마무리 잘하시고 멋진 요리,기대합니다.

 Commented by 바다아빠 at 2010/12/18 05:41 

크리스마스빵을 본격적으로 만들고 있어요 시간나실때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