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생각보다 훨씬 힘든 마감이었다.
마감을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생각도 잘 정리되어 있고, 그 정리된 생각이 잘 나오는 마감: 최선의 상황
2. 생각은 잘 정리되어 있으나 잘 안 나오는 마감: 괴롭다
3. 생각도 잘 안 정리되어 있고 잘 나오지도 않는 마감: (….)
이번의 상황은 2번이었다. 뼈대를 세워 놓은지가 여러 천년인데 살이 도무지 붙지 않았다. 붙이다가 긁어내고 또 긁어내고 다시 붙이기를 되풀이했다. 게다가 모든 게 다 몰려버려서 양만 놓고 보아도 괴로운 마감이었다. 그러나 글공장은 돌아가야만 한다. 결국 마지막에는 싸구려 술 한 병을 까 놓고 조금씩 윤활을 시켜가면서 돌려서 겨우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대학교 2학년 2학기 스튜디오 마감한 했을때와 똑같은 느낌이었다. 15년 전의 일이다. 재능도 기술도 없던, 지난하고 비참했던 시간들.
집이 먼지 반 내 머리카락 반이어서 너무 괴로와, 어제는 오후에 일어나 밖에 나와서는 새벽까지 돌아다녔다. 마지막엔 바에 들렀다. 손님이 아무도 없어서 매니저님과 즐거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는데 문 닫기 5분 전에 남자 둘과 여자 한 명이 들어왔다. 딱 한 잔만 마시고 가겠다고 했다. 조용하던 공간이 금새 담배연기와 왁자지껄한 대화로 가득찼다. 어차피 나올 시간이었는데 가장 나이 많아 보이고 또 껄렁해보이는 남자가 능글맞게 말을 섞으려 하는 게 더 싫어서 바로 챙겨 집으로 향했다. 뭐 그 사람들이 딱히 잘못했다고 말하기는 사실 어려운 상황이었다. 원래 술을 그렇게 마실 때도 있고, 또 조용하게 마실 때도 있으니까. 그러나 받은 느낌으로는 조용하게 술 마셔본 적은 없는 사람들이라는 느낌이었다. 요즘 세상이 조용한 걸 미덕으로 쳐 주는 것도 아니고, 사실 나도 그렇게 조용한 사람은 아니니까. 그런 남자의 능글거림은 못마땅했다. “USB에 음악 담아다 줄테니 하우스 좀 틀어달…” 그 바의 음악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하우스가 어울리는 곳은 더더욱 아니다. 게다가 USB에 뭐 음악을 담으시려고. 그 사람들이 또 거기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내가 갈 때는.
마치 다음 삶을 사는 것처럼 다음의 일이 기다리고 있다. 어제까지의 삶은… 세상에서 가장 넉넉한 자의 마음으로 가늠해보았을때 그저그런 정도의 것이었다. 빛이 조금 더 밝았으면 좋겠다, 이 다음의 삶에서는.
# by bluexmas | 2010/12/15 00:43 | Life | 트랙백 | 덧글(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