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1993)
이 책의 마지막 100페이지쯤은 한강 공원 반포 지구의 주차장에서 읽었다. 어제 저녁이었다. 약속까지 시간이 좀 남았는데, 어딘가 가봐야 시끌벅적해서 읽는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가슴이 터질 듯 답답할 때까지 운전석에 찌그러져 앉아 끝을 보았다.
2005년은 그전까지의 삶이 홀랑 타 버리고 남은 잿더미 위에서 보낸 한 해였다. 재가 날리면 숨까지 막힐 것 같아서 가끔 눈물을 흘려 재를 촉촉하게 적셔주곤 했다. 그때만 해도 이 책을 번역한 박 아무개님은 이글루스의 인기 블로거였다. 종종 덧글을 달곤했다. 이 책이 나오고 관련글(+옮긴이의 말?)이 블로그에 올라왔는데, 아마도 거기에다가 ‘글쓰기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라는 덧글을 비공개로 달았던 것 같다. 아니면 다른 글이거나. 어쨌든 5년이 흘렀다.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 잿더미 위에 뭔가를 다시 쌓아가고는 있지만 아직도 불안불안하다. 눈물을 더 많이 흘려 재를 더 단단하게 다졌어야 되는 건 아니었을까, 늘 생각하게 된다.
꽤 오래 전에 사 놓은 책을 이제야 읽었다. 사실은 눈에 대한 글을 쓰겠다는 아주 큰 목표가 있다. 뭐라고 설명할 수도 아직은 없는 큰 틀은 벌써 짜 놓은지 오래다. 몇 권의 책도 모았다. 그러나 당분간은 쓸 여건이 안 될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은 그 시작이다.
대부분의 책이나 영화를 볼 때는 아무런 정보도 가지지 않은 채 시작한다. 그러면 한참은 뻑뻑하지만 갈수록 몰입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해서도 나는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었다. 그래서 가장 개인적인 것처럼 펼쳐지는 이야기가 그런 규모까지 펼쳐진다는데 사뭇 놀랐다.
사실 나를 정말 놀라게 한 것은 이야기의 팽창보다는 그 팽창의 방식이다. 주인공인 스밀라는 건조한 사람이다. 굳이 눈을 빌어 표현하자면 쌓이는 젖은 눈보다는 날리고 마는 마른 눈과 같다는 느낌이랄까. 원문이 어떤지는 물론 알 재간이 없지만 문장도 가급적이면 짧은 호흡을 유지해 그런 느낌을 더한다. 거기에 가장 사물에 대한 가장 개인적인 해석, 이해, 그리고 기억을 통해 자신이 맞닥뜨리고 있는 사건을 이해하는데 그 과정이 때로 흠칫, 놀랄 만큼 까끌까끌하게 다가온다. 쌓인 눈을 파고 또 파고 들어가면 그 안쪽이 따뜻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접할 수 있는 건 차갑디 차가운 바깥의 눈이라는 느낌뿐이었다.
쉬지 않고 읽어 끝을 보기는 했지만, 1부 <도시>에 비해 2부 <바다>는 그 촘촘함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위에서 말한 그, 주인공이 가장 개인적인 기억 등등을 바탕으로 삼아 사건을 이해하는 그 과정 또는 방식이 배라는 공간적 배경에는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 그것도 아니면 스밀라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차도녀’라서 도시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칠 때 더 빛나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고(이건 웃기지 않는 농담;;;)… 2/3쯤까지 읽었을 때도 감을 잡을 수 없었던 결말은 그 지점 이후로 의외로 쉽게 풀려 나가는데 생각해보면 이 소설은 결말보다는 그 결말을 향한 전개 그 자체, 즉 결말까지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말 자체에는 그다지 큰 집착이 없었다. 그래서 결말이 굉장히 뚝, 하고 떨어지는 느낌이었지만 오히려 그게 더 마음에 들었다. 그야말로 대단원의 막을 거하게 내려주는 식이었다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책을 읽고 약속 장소에 딸려 있는 서점에서 우리말 번역본을 들춰보았다. 자세히 읽어보지 않았으니 번역 그 자체에 대해서는 알 수 없고, 다만 스밀라가 모국어인 그린란드어로 표현하는 눈이며 얼음, 또는 바람의 이름들(예를 들면 kanangnaq, hikuliqq, kangirluarhuq 등)의 우리말 발음 위에 철자를 달아줬으면 그 이국적(이질적?)인 느낌이 한층 더 다가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있었다. 영역판(미국에서 출간된)에는 이러한 단어들이 이탤릭체로 표기되어 있는데, 그래도 낯익은 영어와 꼴에 며칠 가 봤다고 상대적으로 덜 낯선 덴마크어에서 이런 단어들이 이탤릭체로 표기되어 시각적으로 두드러지는 느낌이 소설의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어째 우리말로도 나중에 꼭 읽고 싶어 인터넷 서점을 뒤져보니 번역이 나쁘다며 별 한 개를 준 사람도 있던데, 믿을 수 없다. 번역이 뭔지는 아나? 모르긴 몰라도 이 책이 <장미의 이름>보다 번역하기 쉬웠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물론, 기본적으로는 영어판에 바탕을 둔 중역이겠지만…). 책을 다 읽고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이 책의 영국판과 미국판은 다른데, 영국판의 경우 원작자와 출판사가 번역자의 작업에 너무 손을 많이 대서 결국 번역자가 자신의 이름을 빼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 번역의 차이에 대해서 쓴 글도 읽어봤는데 읽는 재미는 있었지만 영국과 미국의 영어 차이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나로서는 엄청난 주의를 기울일 필요는 없어보였다. 다만 미국판의 경우 단위를 다 임페리얼로 친절하게 고쳐서 오히려 도움이 안 되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익숙하지만…
참, 글을 읽고 궁금해져서 위키피디아에서 그린랜드 항목을 찾아 한참 읽어보았다.
*다음 책: 미하일 불가코프(Mikhail Bulgakov)의 <The Master and Margarita(1967)>, 전자책판. 당분간 목록을 올릴 여유는 없지만 앞으로 읽을 소설 101권의 1번이다. 전자책에도 적응이 안 돼 약간 버벅거리고 있다.
책, 독후감, 스밀라의눈에대한감각, 덴마크, 그린란드
# by bluexmas | 2010/12/06 22:31 | Book | 트랙백 | 덧글(9)
비공개 덧글입니다.
기억은 잘 안나요…ㅠㅠ;;
고비를 넘겨볼 걸 그랬나봐요
사실 거장과 마르가리타도요 그건 읽다 책이 훼손되는 바람에…;
시간이 나면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요즘은 성석제가 쓰는 식의 가벼운 글만 읽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편이기 때문에
나름 깊이가 없어지는 삶이 되고 맙니다.
번역본의 미묘함과 짜증스러움은 느껴본 사람만이 알지요. 뜬금없지만 화폐전쟁2는 번역이 너무 잘되어있더라구요. 음?
지난 주말에 계속 미루던 콰이어트 걸을 읽었는데, 많이 다르네요 이건… 술은 한 방울도 안 마시는데 알콜중독자처럼 감각과 사고와 표출 사이에 각기 얇은 막이 둘러져 있는 데다 은유들도 어쩐지 낯간지러워서 읽히기는 쉬웠는데도 몰입과 동요가 얕은 느낌이었습니다.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악마와…’의 제목이 달린 쪽을 구하고 싶었는데 그리 못 되어서 아쉬워했어요. 개인적으로 파우스트를 읽기 전에 (멋대로) 기대했던 식의 이야기라 즐겁게 읽었습니다. 여유가 되시면, 그리고 장르문학에 대한 거부감이 없으시다면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도 한 번 보실 만할 것 같습니다. 눈은 한 톨도 안 나왔던 것 같지만 흑백 마쵸영화 냄새가 진하게 나는데 건조하니 괜찮습니다.
눈이라는 테마에 몰두하신다는 느낌은 있었는데 취하실 것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꼭 ‘이야기’를 써 주시라 말씀드리고 싶었기에 반가왔습니다. 한동안 책을 거의 놓고 살다 퍽퍽해서 안 되겠다 싶어 남들 다 보았는데 혼자만 안 본 클래식(?) 위주로 깔짝거리고 있는데, 책들 보다 여유 되시면 종종 단순 언급 식의 추천이라도 부탁드릴게요. 독서 자체가 단편적으로도 계속해서 충분히 즐거우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