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지동]발우공양-질긴 속세 입맛의 업보

자리를 잡고 앉으니 바로 옆자리에 나이 지긋한 스님 몇 분이 계셨다. 나야 그분들이 누군지 전혀 모르지만 뭔가 거물급들이신지 식당의 주방을 책임지는 것으로 알고 있는 아무개 스님이 계속해서 들락날락하며 신경을 썼다(물론 그 분이 아닐 수도 있기는 하다…). 그러다 보니 혼자 옆자리에 앉는 나의 존재감이 흐려지고 덕분에 내가 원했던 것보다 더 오래, 아무도 주문을 받으러 오지 않았다. 이것은 내가 속세의 존재이기 때문인 걸까? 라는 생각이 찰나 들었다. 만약 내가 승복을 입고 삭발을 했더라면 나의 존재는 보다 더 두드러져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간 주문을 받는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절밥의 기억은 대여섯살 때, 초파일이나 뭐 그 가까이에 할머니의 손을 잡고 따라가 먹었던 열무김치와 흰 쌀밥이었다. 동네를 생각해보았을 때 아마도 수덕사였을 것이다. 밥은 적당히 찰졌고, 국물이 자작자작한 열무김치는 시원했다. 꽤 자란 열무였다고 기억하기만, 억세지 않았다. 그 시원한 맛으로 기억해보건대 아마 젓갈을 쓰지 않은 종류였을 것이다. 절이기도 하고, 사실 열무김치라면 찹쌀풀만으로 발효시킬 수 있을 것이다.

고기가 나오지 않는다거나, 오신채를 쓰지 않고 음식의 맛을 낼 수 있는지 없는지를 딱히 따지고 싶은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보다는 어떤 생각으로 코스라는 것을 꾸미는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맛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었다. 그와 더불어 과연 이런 음식이 정말 수양을 하는 사람들이 속세의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은 음식인지 알고 싶기도 했다. 또한 어떤 생각으로든 양념이 적게 되는 음식일텐데, 재료 그 자체가 어떤 식으로 두드러지는지도 궁금했다. 우리 음식은 재료의 특성을 염두에 두고 그를 살리는 방향이라기 보다, 간장, 된장, 고추장과 같은 양념류로부터 비롯되는 음식이 되어 버렸다. 나쁘게 말하자면 속세의 입맛은 양념류에 정복되었다. 거기에 강한 단맛이 방점을 찍은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세 가지 코스 가운데 중간급인 (36,000, 부가세 10% 별도)를 시켰다

시작은 옥수수죽(맨 윗 사진). 곡식류를 끓이는 음식은 전분 때문에 지나치게 끈적거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조금 덜 끈적거렸더라면 보다 더 가벼운 느낌을 주어 코스를 여는 음식으로 보다 더 나았을 것이다. 건더기 격으로 들어 있는 옥수수 알갱이 또한 조금 딱딱했는데, 종 자체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조리 또한 그 정도로만 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예상했던 것처럼 역시 소금이 부족해 옥수수의 느낌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가장 인상에 남았던 건 고명으로 얹은 대추. 코스 전체를 통틀어 대추의 향이 가장 두드러졌다. 마지막에 먹은 연잎밥에서도 마찬가지.

샐러드. 달았다. 다른 속세 음식을 파는 식당의 단맛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재료들은 신선하다는 느낌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고유의 향이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특히 샐러드의 주재료하고 할 수 있는 생더덕이 그랬다. 단맛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재료가 딱 거기까지인지는 헤아리기 조금 어려웠다. 사진 뒤편의 깍두기 또한 시원하고 아삭해서 싱싱한 느낌이었는데 달았다. 몇 주 전에 나주에 내려가서 먹은 곰탕에 딸려 나온 깍두기와 느낌이 너무 비슷했다.

삼색전. 녹두전, 고추장떡, 흑임자 연근전이라고 했다. 좋은 고추장의 깨끗한 매운맛, 연근의 아삭한 식감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그보다는 녹두나 흑임자의 향이 두드러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장식으로 나온 신선초의 향기가 훨씬 더 두드러졌다.

다음은 절집만두, 두부숙회, 쌈밥이었다. 만두에서는 들깨의 그것이었다고 기억되는 향과 피의 차진 느낌이 좋았지만, 정작 알알이 흩어지는 속의 식감은 무성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두부 숙회는 입에 넣으면 다소 비지처럼 흩어지는 식감이었는데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위에 얹은 장아찌는 이런 상황에서 기대할 법한 짠맛이나 아삭거리는 식감의 액센트 모두 없어서 존재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쌈밥은 새콤달콤했다. 장식으로 나온 신선초의 향은 역시 두드러졌다.

버섯강정. 코스 가운데 가장 못 만든 음식이었다. 일단 버섯에 비해 반죽이 너무 두껍고 바삭거리지도 않았으며 딱딱해서 정작 가장 중요한 재료인 버섯을 죽인다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소스는 맵고 달았지만, 그런 맛의 구성을 지닌 양념이 대부분 그러하듯 간은 맛지 않았다. 왜 튀김인가? 왜 고추장 소스인가?에 대한 고민이나 ‘이 표고를 어떻게 빛낼까’ 에 대한  고려보다는 전체 코스를 생각해 보았을 때 이쯤에서 이런 음식, 튀긴 음식 또는 매운 음식이 들어가야 되어야 한다는 판단에서 만든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삼과 마 구이 구운 마는 의외로 포실포실했다. 삼에는 벌꿀, 마에는 유자소스를 찍어 먹는 건데 둘 다 달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냥 꿀에 절인 유자는 안 되는 것일까?

능이초회와 더덕구이 오돌오돌 씹히는 능이버섯의 식감이 훌륭했다. 코스 가운데 가장 좋았던 차례. 구이로 다시 등장한 더덕 또한 향이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신선초는 고정 조연. 차라리 식용 꽃 같은 것이 훨씬 더 보기에도 좋지 않았을까?

송이 누룽지탕 송이와 누룽지는 눈으로 먹고, 입으로는 마(로 기억하고 있다)의 아삭거림을 즐겼다. 누룽지를 오래 끓이면 구수한 맛이 날텐데, 밍밍했다. 물에 누룽지를 끓이기만 하면 되는 거라면 차라리 조금 더 많은 누룽지로 오래 끓여 보다 더 구수한 맛이 우러나도록 할 수는 없는 것인지 궁금했다. 송이는 체면치레였다.

연잎밥과 된장국 밥과 반찬의 양이나 가짓수를 생각해 본다면, 결국 이 코스의 또한 밥으로 배를 채우도록 고안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건 우리나라 사람들의 습관에 가까운 식생활인지라 의식하지 않으면 그런 식으로 귀결될 확률이 너무 높기는 하다.

찹쌀밥은 훌륭했으나 반찬들은 간이 들쭉날쭉했다. 달지만 먹을만했던 깍두기에 비해 배추김치는 생배추를 고춧가루에 버무리는 수준이었다.

이건 여기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코스를 다 먹고 마지막에 먹는 밥에 이렇게 많은 가짓수의 반찬을 낼 필요가 있는지 나는 언제나 잘 모르겠다. 게다가 이전 기본적으로 사찰 음식 아닌가? 왜 음식의 경우 거의 대부분 ‘금전적인 가치=양’으로 귀결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심지어 원래 속세의 것에서 비롯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런 음식조차도…

후식 물론 반찬에서 단맛이 많이 두드러지기는 했지만, 후식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무엇이라면 어느 정도는 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교적 후하게 나온 부각이나 “칩(찹쌀풀을 안 바르면 그냥 칩인가?)”은 대부분 단맛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기름진 느낌인 것들이 많아서 후식으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차라리 생과일이 낫다는 생각이었다. 만약 그렇게 기름진 것이 많다면 그걸 씻어낼 수 있게 식혜를 보다 더 많이 주어야 균형이 맞을 것이다(물론 달라면 더 주었을 수도 있지만 그걸 딱히 즐기지도 않는다).

마지막으로 먹은 양갱은 너무 안 달았으며 견과류는 습관적으로 넣은 느낌이었다. 굳이 넣지 않아도 된다. 가끔은 후식도 지나치게 씹어 먹어야 되는 경우에 맞닥뜨릴 때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야말로 후식 아닌가. 그렇다면 힘을 들이지 않고 먹고 싶은 것이다.

과연 이 음식은 어떤 사람들을 겨냥하고 만들었을까? 정말 사찰음식을 표방했다면, 나는 막말로 코스의 처음부터 끝까지 생풀만을 씹고 나오더라도 불만이 없을 것 같다. 만약 자극적이지 않은, 내가 아니라 만드는 사람들이 건강하다고 느끼는 음식이 그것이라면 그것도 좋다. 그렇다면 단맛도 두드러지지 말아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음식에서 가장 잘못된 경향이라고 느끼는 그 두드러지는 단맛이 속세의 음식도 아니라고 하는(이 말인 즉슨, 나는 정확하게 이 음식이 속세의 그것인지 사찰의 그것인지 분간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음식들에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 속세의 질긴 입맛이라는 것이 정말 끊을 수 없는 업보와도 같다고 느껴져 슬펐다. 코스를 표방하는 이 음식의 짜임새나 뭐 이런 것들까지는 굳이 이 글에서 따지지 않겠다.

*사족: 건물 이름이 ‘템플 스테이’인 건가? ‘템플 스테이’에 있는 음식점 ‘발우공양’이라…

 by bluexmas | 2010/12/02 12:58 | Taste | 트랙백 | 덧글(10)

 Commented at 2010/12/02 13:0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2/15 23:47

솔직히 별로 소박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 정도면 화려하지요. 바빠서 다음 식당 글을 못 올렸는데 오늘 내일 내로 올라갑니다^^

 Commented by zeitgeist at 2010/12/02 13:31 

앗..다녀 오셨군요. 찬으로 나오는 버섯강정은 진짜 너무 달아요. 제 생각엔 외국인 입맛에 맞춘 사찰음식 정도로 포지셔닝하려는 것 같아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2/15 23:48

아 그 말씀도 일리가 있군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의도적으로 저런 식으로 만들었다는 느낌 때문인 것 같아요.

 Commented by 정하니 at 2010/12/02 13:56 

제 생각엔 뭐 발우공양이 아주 훌륭한 [진짜 사찰음식]을 잘 보여주고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유독 안좋은 날 가신것같아요.. 뭐 그게 더 큰 문제겠죠, 일관성이 없다는게, 하지만 전 개인적으로 발우공양을 되게 좋게 생각했거든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2/16 00:40

저도 그 취지는 좋아합니다. 다만 사찰음식이 어때야 하는가, 를 제시할 수 있는 음식점은 아니라고 생각되네요.

 Commented by 笑兒 at 2010/12/03 12:52 

발우, 초창기에 가보고-

지난 9월에 감로당을 다녀온 결과, 🙂

감로당 음식이 조금 더 좋더라구요…^^*

감로당 한번 다녀와보세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2/16 00:41

아 그렇군요. 다음에 꼭 가볼게요~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백면서생 at 2010/12/04 18:22 

저 음식들의 제목에 왜 ‘발우공양’이 쓰일까요. 좀 민망합니다. 겸손과 소의소식에 쓰일 이름을 저런 화려한(육류와 그 기름만 없을 뿐) 과잉에 사용하는군요. 스님들이 저리 공양 받으실 리는 없고, 그냥 채식주의 식당의 무엇무엇 쯤으로 해야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뭐 주인 맘입니다만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2/16 00:41

네 뭐 주인님 맘입니다만;;;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더라구요. 주방장도 스님이시던데 좀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은 사찰음식, 몸은 속세음식 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