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첨가물과 경향신문 후기
지난 한 달 동안 경향신문의 <착한 시민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식품 라벨을 읽고 첨가물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맛보자는 취지였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그 후기를 올리면서, 그동안 올렸던 글들의 링크를 한데 모아보았다. 관심 있는 분들은 링크를 따라 읽어 보시기를 바란다.
시작하는 글: <인간이 만든 위대한 속임수 식품첨가물>을 소개하며
간장은 이 회사 제품이 최고라니까. 전통이 장난이 아니거든.
마트에서 간장을 고르다가 짜증이 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바로 옆의 부부도 간장을 고르고 있는 듯 보였다. 남편은 계속해서 특정 회사의 간장을 ‘밀고’ 있었다. 그야말로 오랜 전통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글쎄, 라벨에 쓰여 있는 그 온갖 식품첨가물들 또한 전통의 산물인지 나는 그걸 헤아리기 좀 힘들었다. 전통이 있고 없고를 떠나, 매대에 있는 수십 가지의 간장들 가운데 나의 기준에서 살 수 있는 건 단 한 종류도 없었다. 결국 고귀한 제품들을 모셔 놓은 유기농 매대로 향했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식품첨가물이 들어 있지 않으면 유기농인가? 물론 그런 것은 아니지만, 왜 그 중간 지점이 없는 것일까? 결국 식품 제조회사의 상술에 놀아나는 경우 밖에는 되지 않는다. 어차피 같은 회사가 식품 첨가물을 넣은 제품을 만들어 내고, 그것에 대해 항의하는 소비자들을 배려한답시고 그렇지 않은 제품을 유기농-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데-으로 만들어 비싸게 파는 형국이니까.
한 달 동안 <착한 시민 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 사실 평소의 생활 습관을 따로 시간 내어 기록하는 수준이었다. 굳이 이러한 경향에 새삼스러워 하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그렇다고 해서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알아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식품 첨가물이 나쁘다는 것은 알고 그러한 것들이 든 음식을 안 먹으려고 해도 규제의 그물을 요리조리 피해 첨가하는 것들까지는 피할 수 없다(얼마 전 글을 올린 참치캔만 해도, 다시마 엑기스와 야채즙이 정말 필요한가? 그 두 첨가물은 정말 자연재료라고 어떻게 믿나?). 그리고 둘째는 그런 것들에 대해 전혀 모르거나, 식별할 여력이 없는 사람들의 건강은 누가 어떻게 보장하느냐는 것이다. 나이 드신 부모님은 깨알같이 쓰인 제품의 라벨 읽기에 어려움을 토로하신다. 젊은 나도 하나하나 들여다보기 짜증날 때가 많은데, 어른들은 오죽하시겠나.
현실이 이렇다보니 상식이 이끌어주는 생활방식을 영위하는 것이 지극히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검증도 되지 않은 주장이나 이론에 휘둘린다. 내 집에는 화학조미료나 식품 첨가물이 들어간 제품, 또는 가공 식품이 전혀 없다. 냉장고에 그 흔한 냉동 만두 한 봉지도 없으며, 라면이나 햄, 소세지 같은 것도 거의 먹지 않는다(햄이나 소세지 같은 경우는 그 자체를 문제라고 생각은 하지 않는데 향미증진제가 안 들어간 제품을 찾을 수 없다. 무슨 대학 제품과 같은 고급 상표도 마찬가지다). 어묵을 좋아하기 때문에 아주 가끔 식품 첨가물을 무릅쓰고 먹기는 하지만, 그나마도 한 달에 한 번 꼽을까 말까하고, 이제는 먹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이렇게 살지만 백설탕이 문제라는 생각에 아가베 선인장 시럽으로 대체해야겠다거나, 내가 먹을 빵은 내가 굽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베이킹을 하면서도 버터 대신 포도씨 기름을 써야 되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버터를 녹이기 귀찮거나 비싸서 식물성 기름을 쓰는 경우는 아주 가끔 있다). 몇몇 특별한 경우를 빼놓고는 설탕을 먹을 일도 거의 없고(음식을 만들 때 설탕을 쓸 일이 거의 없다. 단 음식은 디저트로 족하다), 버터도 많이 쓸 일이 없다. 아가베 시럽이 무슨 근거로 설탕보다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선인장을 잘라서 사람 손으로 손을 쭉 짜서 병에 담아서 파는 것도 아니다. 설탕에 정제과정이 필요하듯, 아가베 시럽도 어떤 식으로든 비슷한 공정을 거친다. 설탕은 색이 하얗기 때문에 건강에 나쁘고, 아가베 시럽은 그렇지 않나? 아가베 시럽-설탕보다 1.6~1.8배 달다-도 많이 먹으면 몸에 해롭기는 마찬가지다. 같은 이유로, 올리고당이 몸에 좋은 근거는 무엇일까?
물론 이렇게 나름 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식생활을 지키려 노력한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의심을 걷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불안감은 그림자처럼 상존할 뿐이다.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아예 불가능한 일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이러한 불안감을 떨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못된 소비자가 되는 것이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그러한 의심을 원동력 삼아 계속해서 이의를 제기하고, 항의해야한다. 라벨에는 원재료나 첨가물 뿐의 목록뿐만 아니라, 소비자 상담 전화번호도 찍혀 있다. 귀찮다고 해서 넘어가면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착한 시민이 되는 길은 역설적으로 못된 소비자가 되는 것뿐이다.
그와 더불어 음식에 관한 최소한의 이해를 갖추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음식을 해 먹는다는 것이 한 편으로는 지극히 구차한 습관,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그야말로 쿨한 라이프스타일을 만드는 도구처럼 극과 극의 상황으로 인식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인데, 사실은 둘 다 아니다. 음식을 만들어 먹는 행위는 그저 보다 나은, 즉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궁극적인 수단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알아야 당하지 않는다. 하나, 둘 귀찮다고 생각하면 결국 삶이 귀찮음 덩어리처럼 느껴질 뿐이다.
*사진은 나주에서 촬영한 우리밀 파종. 시중의 우리밀 밀가루는 제분 상태가 빵을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고, 글루텐 또한 부족하다.
# by bluexmas | 2010/11/30 11:26 | Taste | 트랙백 | 덧글(11)
회사가 제품 컨셉으로 미는 재료가 들어간 건 비록 0.1% 들어있어도 크게 표기하면서 말이죠
아무래도 사람이 먹을 거리에 관심이 많다보니 즐겁게 읽었어요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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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음식 문화에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늘 질보다 양이잖아요. 정말 굶고들 사는 거 아니면 왜 이러는지… 치킨 오천원에 나왔다고 난리 났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