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낮술(22)-광어 세비체, 닭다릿살 데리야키 소스 구이

회를 먹는데 회의를 조금 가지고 있다. 따지고 보면 회 자체보다 회를 먹는 양에 대한 회의인지도 모르겠다. 너무 금방 질린다. 생선의 종류가 다양하면 조금 낫지만, 그래도 질리기는 마찬가지. 사실 따지고 보면 고기, 특히 불에 익힌 것도 마찬가지기는 하다. 똑같은 걸 너무 많이 먹으면 질린다. 요즘 무쇠팬에 너무 무관심했던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을 담아 굵은 소금으로 닦고 있다.

아, 사진을 보고서야 전채도 먹었다는 걸 기억해냈다-_- 내 식으로 만든 콘버터. 무쇠팬에 버터와 마요네즈로 옥수수를 볶고, 체다치즈를 뿌려 브로일러에서 마무리했다.

그래서 마트 같은데서 쉽게 살 수 있는 광어에 아주 살짝 산을 더해서 먹으면 어떨까 생각을 했었다. 글의 제목에는 ‘세비체’라고 정의하기는 했지만, 국물이 생길 정도로 산을 넣지는 않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세비체라고 하기는 좀 그렇다. 사실 그렇게 질척거리게 만들 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사진에서도 볼 수 있지만 세비체의 원리는 단백질, 즉 생선살을 산으로 익히는 것이다. 레시피를 찾아보면 온갖 재료들을 넣으라고 나오는데, 다 건너뛰고 정말 꼭 필요한 것들만 썼다. 주재료인 생선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만들어야지, 덮어버리도록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는 데는 얼마전 EBS에서 보았던 요리 프로그램에서 전문가시라는 김 아무개씨가 나와서 초고추장과 방울 토마토를 비롯한 수십가지 야채로 광어를 묻어버리는 데서 느꼈던 반발심이 크게 작용했다. 맛은 괜찮았으나 색깔면에서 많이 부족했다. 다 먹고 나중에서야 미나리를!이라며 아쉬워했다. 색도 맛도 훨씬 나았을 것이다.

곁들인 술은 빨리 먹어야 되는 무엇인가. 베르디키오 80%, 트레비아노 20%의 백포도주다. 입에 넣으면 신맛이 탁 치고 적당한 쓴맛이 끝에 남는다.  무난한 선택이랄까? 어차피 염두에 둔 다른 것도 없었다.

정말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가슴살을 먹는 게 아니라면 허벅지살로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한다. 맛도 좋고 웬만해서는 퍽퍽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닭을 먹으려고 이전저런 레시피들을 뒤졌지만 마음에 드는 게 없었는데, 우연히 데리야키 소스를 발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만들었다. 디저트가 아닌 이상 단 음식은 만들어 먹지 않는데 데리야키 소스는 몇몇 예외 가운데 하나이다.

이렇게 해먹고 싶은 음식을 찾았지만 닭 허벅지살만 찾는 건 사실 불가능하다. 다리를 팔기 위해 허벅지와 다리를 분리하면, 그건 전부 뼈와 껍질을 발라내서 친절하게 조각까지 낸 다릿살고 포장해서 팔기 때문이다. 결국 통다리를 사서 허벅지와 분리하고, 뼈에서 발라내야 한다. 허벅지살을 발라내는 건 쉽지만 다리, 즉 봉은 그것보다 조금 까다롭다. 통다리 한 마리분에 5천원, 게다가 노동력까지 더하면 절대 싼 가격이 아닌데 남는 뼈로 국물을 내 쓸 수 있어서 참는다. 두 마리 분이면 이런저런 음식 만들때 적어도 두 번은 쓸 수 있는 국물을 낼 수 있다. 부지런하면 식혀서 위에 뜬 기름도 걷어내고 커피 필터로 걸러서 쓰면 되지만, 혼자 먹을거라면 되는대로 그냥 써도 상관없다.

데리야키 소스는 실로 간단하다. 기본적으로 간장과 설탕을 일대 일로 섞으면 된다. 간 생강과 마늘, 맛술에 점성을 좀 주기 위해 옥수수 전분을 조금 넣으면 된다. 조리법을 읽으면서 왜 소스를 발라서 굽지 않고 구운 다음에 위에 올려 먹는지 궁금했는데, 구워보니 너무나도 쉽게 타버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고 보면 간단한 건데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원래는 브로일러에서 끝까지 구우라고 권장하고 있으나 집 오븐의 브로일러는 믿기가 힘들다.

결국 팬에 올려 껍질을 바삭하게 굽고 소스를 뿌려서 마무리했다. 껍질을 살리는 것이 이 레시피의 관건이다.

같이 마신 술은 오레곤 주 피노 누아. 사실 데리야키 소스가 강한 편이므로 같이 먹어도 되나 싶었지만 딱히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그동안 먹어왔던 피노 누아보다 알싸한 느낌, 흔히 ‘peppery’하다는 느낌이 두드러졌는데 그게 체리/베리의 느낌이었는지도 모르겠다(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디저트는 이것.

 by bluexmas | 2010/11/29 09:45 | Taste | 트랙백 | 덧글(17)

 Commented by Auss at 2010/11/29 10:51 

노련함이 때묻어 보이는 후라이팬이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2/06 22:36

때가 아니라 무쇠팬에 길이 든 거랄까요? 무쇠팬은 물로 자주 닦아주지 않습니다. 무거워서 다루기는 참 힘들어요.

 Commented by Auss at 2010/12/07 14:44

긍께 표현을 하자면 (…) 때가 묻었다! 라는게 아녜요 노련함이 묻었다!라는거다요ㅋㅋㅋㅋ

 Commented by settler at 2010/11/29 12:27 

새삼스런 말씀이지만 글이 건조하면서도 씹는 맛이 있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요

전 음식과 요리라면 일자무식인데도 늘 재미 있게 읽고 있는 건 그래서인 것 같아요

이번 디저트는 때깔도 진짜 화사한데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2/06 22:37

레몬 색이 원래 그러니까요^^ 표면도 고르지 않은 게 그렇게 잘 만든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프로의 손길은 아니지요.

 Commented at 2010/11/29 12:3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2/06 22:37

구워서 상온에서 식혔어요. 아무래도 계란이 좀 많이 필요한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계란 아홉개짜리…

 Commented by 허멜선장 at 2010/11/29 12:43 

후훗…닭허벅지살은 내걸 베어쓰라능…

나도 따로 없으니 그렇게 사서 쓴다능…

월요일 낮은 역시 전멸이군..ㅋㅋ

갑자기 레몬타르트가 생각나서 지금 꺼낼거라능…

띵하우 활우럭찜(굳이 활이 아니어도 좋을텐데) 쩝….

한 주 잘 보내시게.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2/06 22:38

아니 며느리도 아닌데 왜 허벅지를 내어주시려 하신답니까ㅠㅠㅠ 신세계 강남점에 껍질 벗긴 다리살은 있더라구요. 그냥 껍데기도 벗기지 말고 팔면 좋은데 아쉽더라구요. 껍질이 있어야 나중에 벗겨내더라도 맛이 있는데. 레몬타르트 드실만 하던가요? 시간이 좀 지났을텐데;;;

 Commented by Cheese_fry at 2010/11/29 13:14 

레몬 타르트 색깔이 정말 곱네요. 와.. 광어가 씹는 맛이 있어서 세비체로 하면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제가 마셔본 오레곤 피노 누아는 체리-베리향이 그득했던 기억이 납니다. 음..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2/06 22:39

그러게요. 너무 오래 절여놓지 않으면 괜찮더라구요. 오레곤 피노 누아가 좋기는 좋지요… 문제는 비싸서…

 Commented by enif at 2010/11/29 16:40 

이렇게 낮술먹으면 떡실신 ㅠ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2/06 22:39

떡에 낯술 먹고 떡실신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요?

 Commented at 2010/11/29 22:3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2/06 22:40

저건 우리나라에서 산 건 아니었어요. 빨리 마셔 제끼고 있습니다. 치즈는 거의 안 사구요, 그냥 이마트에서 파는 호주산 덩어리 체다만 가끔 사다 쓰곤 해요.

 Commented by 홈요리튜나 at 2010/11/30 03:02 

고추장만큼 이기적인 식재료도 없을 거예요..전 장을 안 찍어먹는데 뭔 맛으로 먹냐고 핀잔 들어요 그럼 고추장맛으로 먹나-_-;;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2/06 22:40

고추장맛으로 먹을지도 몰라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