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비엥 에트르-손버릇에 관한 비유
기타, 특히 속주기타리스트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손버릇’ 이라는 표현을 쓴다. 같은 기타리스트의 곡, 또는 솔로를 계속해서 듣다보면 그게 음계든 주법이든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는 음의 나열 또는 조합을 되풀이해서 들을 수 있게 되는데, 이걸 보통 손버릇이라고 표현한다. 이런 손버릇은 주로 한 음절(phrase)이 끝나는 부분에서 많이 들을 수 있는데, 결국 아주 오랫동안 특정 음계나 주법을 연습하거나 아니면 그렇게 연습하는 과정에서 굳어진 습관이라고 할 수 있다.
비엥 에트르에 다녀와서 계속 머릿속이 복잡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 의도를 바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왜 이래야만 하는가? 누군가는 ‘프렌치니까’라고 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프렌치라면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걸까? 그냥 단순하게 ‘프렌치=복잡, 이탈리안=단순’이라는 이분법의 공식으로 양식을 이해하면 되는 것일까? 일단 그것부터가 헛갈렸다.
그리고 만약 그 이분법을 아주 편안하게 적용할 수 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도 나는 ‘비엥 에트르의 음식은 그 복잡함이 프랑스 음식 답다’라고 하기를 주저할 것 같다. 그 음식들의 첫 인상이 굉장히 복잡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게 첫인상과는 달리 기술보다 요소의 조합에 더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와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부분에 무심한 듯 보이거나, 디테일의 측면에서 매끈한 마무리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러한 접근 또한 ‘질보다 양’의 또 다른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한 접근이 글의 맨 처음에서 언급한 손버릇과 같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코스를 여는 아뮤즈 부시. 정확하게 무엇이 어떠한 맛이었는지 세세하게 기억나지 않는 가운데, 참치 냄새와 어떤 소스의 점성, 그리고 옥수수 수프의 바닥에 깔려 있던 덩어리의 꿀럭거림이 기억에 남아 있다(사진에 보면 옥수수 수프의 표면에 크게 거품이 올라와 있는 게 보인다. 이런 마무리는 좀 그렇다). 시작부터 그리 선명한 느낌은 아니었고 이러한 느낌은 끝까지 계속되었다. 특히 재료의 측면에서 그랬다.
그리고 빵이 나왔는데, 어떤 빵인가는 문제가 아니지만 그 빵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문제가 될 수 있다. 기름에 쩐 느낌이었다. 같이 나온 버터 또한
전채는 팬에 구운 거위 간. 늘 말하지만 나는 프와 그라 같은 재료를 먹는데 별 관심이 없다. 이런 코스에는 인사 또는 체면치레로 많이들 나오던데, 어떤 사람들은 ‘아 코스에는 프와그라나 안심 스테이크, 그리고/또는 농어가 나와야 돼’라는 이야기를 하겠지만 나는 셋 다 안 나와도 상관없다. 차라리 같은 가격이라면 그것들 말고 남들이 잘 안 하는 재료를 쓴 음식이 더 좋다. 남들과 다른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게 능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계산을 하면서 셰프님과 몇 마디 나누었는데, 음식이 이렇게 복잡한 이유는 재료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의도(‘프렌치’라는 것의 정체성을 기본으로 깔고?!)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 전채가 코스에서 가장 성공적이라는 생각이었다. 느끼한 것과 상큼한 것의, 지극히 공식에 가까운 조합에서 상큼함의 정도가 다르거나, 정도는 같지만 조리 상태에 따라 식감이 다른 것들을 병치해서 균형을 잘 잡은 음식이었다. 다만, 내가 먹은 거위 간에는 핏줄이 남아 있었는데, 이러한 것들에서 디테일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스에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거나 쓸 수 없었다.
주요리로는 세 가지 고기가 준비되어 있다고 메뉴에 쓰여 있었지만, 양고기에 대한 언급은 없었으므로 일행과 나는 닭과 쇠고기를 하나씩 시켰다. 스테이크라는 음식 자체에 기대도 없지만, 이 스테이크는 이런 정도의 레스토랑에서 먹을 수 있는 것들 가운데 주저 없이 최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구운 정도(습관처럼 미디엄을 요청했다)도 아니었지만, 고기 자체도 별로였다. 열 명 정원의 작은 식당이 아니라면 돌려보내도 아무런 하자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기본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화려한 가니시가 접시를 메워도 스테이크 한 접시를 내오면 결국 인상을 좌우하는 건 스테이크일 뿐이다. 가니시가 맛있는 고기를 더 맛있게 만들어 줄 수는 있다고 해도, 안 좋거나 못 구운 고기를 구해줄 수는 없다. 만약 고기가 맛없다면 복잡한 가니시 ‘따위’는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돈을 내고 음식을 먹는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일행에게 간 닭고기는 바삭한 껍데기에 촉촉한 속살의 조합이 좋은 편이기는 했지만, 또한 최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치즈코스. 솔직히 오천원짜리 치즈 코스에 무엇인가 기대하는 것마저 잘못이겠지만, 냉장고에서 갓 꺼내온 듯 차가운 치즈는 할 수 없는 기대조차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다. 물론, 이 식당의 규모나 치즈 코스에 대한 사람들의 기호를 생각한다면 상온에 내놓은 덩어리 치즈를 손님 앞에서 잘라 내놓는 것을 절대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코스를 시작할 때 주문을 하는 것이니만큼, 적어도 그때 치즈를 꺼내 놓아서 냉기는 가시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어차피 오천원짜리인데 저렇게 많은 종류를 내놓기 보다는, 절반 정도로 줄이면서 셰프의 기호나 코스의 특성에 맞는 서너가지만을 내놓는 편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러한 점이 비엥 에트르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요소가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디저트. 사진에서 보아왔던 수플레가 나왔는데, 이것이 바로 비엥 에트르였다. 셰프의 능력을 시험하고 싶을 때 가장 기본적인 재료인 계란을 준다고들 많이 하는데, 패스트리 셰프의 경우라면 수플레를 시켜본다는 말이 있다(이제 막 끝난 ‘탑 셰프 저스트 디저트’에서도 수플레 챌린지가 나왔다). 물론 일반 요리의 일부분으로도 수플레를 만들 수 있지만, 디저트에서 잘 부푼 수플레는 맛은 물론이지만 그 자태로도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 수플레는 오로지 자태만 아름다운 반쪽짜리였다. 일단 계란 냄새가 거슬리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적당히 두드러지는 편이었는데, 그걸 상쇄하기 위한 바닐라나 다른 향의 존재가 너무 미미했고, 디저트임을 생각해 보았을 때 단맛도 부족했다. 결국 계란찜을 먹는 느낌이랄까? 그 전까지의 코스가 아주 부담스러운 설정은 절대 아니었지만, 그게 어떤 느낌이든지 덜어주기 위한 역할은 할 수 없는 수플레였다(이제야 메뉴를 보고 이게 피스타치오 수플레라는 것을 알았다.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온 ‘오늘의 디저트(망고?)’와 커피.
그리고 프티 푸르. 껍데기가 터지면서 그 안에 있는 크림이 나오는 느낌.
한 접시의 음식은 과연 어떻게 탄생할까? 라는 생각을 계속 했다. 조금 생뚱맞은 비유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건축가 루이스 칸은 ‘벽돌에게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어보았더니 아치가 되고 싶다고 해서, 벽돌 아치를 넣었다’라는 선문답과 같은 이야기로 유명하다(물론 다른 수많은 것들로도 유명하지만. 남기고 간 건축은 물론 서로 다른 여자 셋으로부터 낳은 딸 둘 아들 하나 도합 셋까지 해서;;;;;;). 정확하게 일대일 대응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좋은 음식으로 가는 길은 재료가 잡거나 닦아준다는 생각을 한다. 훌륭한 상상력을 가진 조리사라면 좋은 또는 싱싱한 재료를 접했을 때, 손질서부터 시작해서 음식의 완성까지 가는 과정이 씨앗이 싹을 틔워 가지를 뻗은 나무가 되는 것과 같은 과정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는 의미이다. 그 전체적인 과정을 도와주는 수단이 테크닉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나의 믿음이 절대적인 것은 될 수 없다. 음식을 하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철학과 접근 방식(또는 방법론)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 비엥 에트르의 음식은, 재료가 어떤지를 떠나 이미 도달하고 싶은 하나의 상태, 또는 시스템을 지키는 것이 목표인 것처럼 보였다. 달리 말자하면 그 상태가 이미 설정되어 있고, 재료를 포함한 나머지의 요소들이 그에 맞춰서 움직이는 상황인 것이다. 계절이나 재료에 무관하게 비엥 에트르의 음식은 이렇게 그 자체적으로는 완결된 시스템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일정 수준의 복잡함을 이루고 싶은 것이 그러한 접근 방식의 이유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복잡함이 절대 평가의 수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대부분의 사람들이 100/100이라고 생각하는 음식, 그러나 나에게는 70/100 정도의 느낌밖에는 들지 않았다.
루이스 칸을 언급한 김에 건축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들먹이기로 하자. 그 바닥에서 영글지 않은 어린 아이부터 고명하신 건축가님들까지 세대와 잘나가는 정도를 막론하고 쓰이는 표현이 하나 있다. ‘비움으로써 채움’이다. 이건 정말 들먹이기는 쉬워도, 잘못 나불거리면 그 말빚을 평생 갚을 수 없는 말이다. 비엥 에트르의 음식을 먹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바로 ‘비움으로써 채움’이었다. 손버릇은 무섭다.
*사족 1: 작은 공간이라 불편한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개인적인 대화가 상당 부분 어려운 정도까지라는 건 레스토랑을 ‘평가’할 때 감안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음식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공간이 나쁘면 특히 서양 음식을 내는 곳에게는 약점으로 작용한다. 와인 리스트를 보고 주저되는 면이 있어서 일행과 이야기를 좀 더 하고 싶었으나 그 모든 것이 너무나도 가깝게 있었다. 그 이후의 사적인 대화도 그다지 느긋하게 하지 못했다. 물론 이러한 점은 식당 측에서도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사족 2: 와인 리스트에 대해 언급한 김에. 나는 솔직히 술과 음식의 가격 조화가 어느 정도의 수준이어야 하는지 잘 모른다. 예를 들어 음식이 ‘A일 경우 술 한 병에 2A’라든가 하는, 그런 수준의 가격 산출 공식이 있나? 비엥 에트르의 와인 리스트는 코스의 가격을 생각해 보았을 때 높게 책정된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다. 하우스 와인에 대한 언급은 리스트에 없었고, 물어 보았을 때도 가격 등에 대해 세세한 정도를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주문을 꺼리는 것은 아닌가, 라는 느낌이 살짝 들 뻔 했다. 복잡한 코스의 음식이 나오기 때문에 권해주는 술을 시킨다고 할지라도 어느 정도로 잘 어울릴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차라리 코스에 어울리는 포도주를 미리 정해서 추가 요금을 받고 선택할 수 있게 하는 편도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코스가 57,000원이라면 각 코스에 어울리는 술을 곁들일 경우 8~9만원대로 책정하는 것이다. 한 병을 시키는 것과 가격 차이가 크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보다 더 다양하게 음식과 술의 궁합을 음미할 수 있다는 이점은 있을 수 있다. 물론 이건 엄청나게 새로운 제안도 아니다. 그렇게 하고 있는 곳도 많지 않은가?
# by bluexmas | 2010/11/25 10:23 | Taste | 트랙백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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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보통 30%정도죠. 그 이상인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저 음식들의 재료는 별로 좋지 않았어요. 수플레는 부푼 모양만 예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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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다 줄줄 흐르는 듯한 것이 이해하기 힘든 모양새네요..
안봐도 맛은 짐작이 가려해요.
저는 사진만 보고
어느 변두리지역의 레스토랑인가보다 했는데 청담동이네요.-_-;;;
소스에 있어서는 변주없이 다 달기만 하고… 해서 ;;
심하게 말하면 뻔하고 지겹고 뭐랄까.. 아무튼 제가 보고들었던 호평에 비해
너무나 실망스러운 인상을 받았었죠. 단, 세공에 정성이 들인다는 느낌은 받았습니다만
지금 사진을 보니 세공에도 그닥.. ;;;
그 이후 안 가고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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