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오산-강남역-압구정동-명동-종로-홍대-청담동-역삼동-오산.

어제는 거의 그냥 놀러나갔다. 저녁 약속 시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서 오랫동안 걷기도 하고 또 오랫동안 버스를 타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아주 오랜만에 그런 시간을 가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없이 걸어다니면서 멍에나 굴레, 방정식이나 변수, 상수 따위를 생각했다. 상수를 생각하니 대학교 1학년 때 미적분 공부를 하던 생각이 정말 뜬금없이 나기까지 했다. 돌아보면 나는 언제나 적분을 더 좋아했다. 정말 하릴없이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더 적게 만나야 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안 만나도 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도가 그렇지 않은데 그런 것으로 보이고 싶지는 않다.

모처에서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위치로 따지면 서울의 번화가임이 분명한데 무슨 비밀결사 저녁 모임이라도 가지는 듯한 착각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돈도 만만치 않게 들었던 자리라서, 먹고 나서 생각을 많이 할 수 밖에 없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민이었다.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그런 것이 될 수 있겠다. “과정에서 들인 노력만 가지고 얼마만큼 좋은 평가를 할 수 있을까?” 술자리는 3차까지 이어졌는데, 더 마시고 싶었지만 피곤해서 그럴 수 없었다. 다음에는 저녁에 그런 약속이 있으면 낮에 내내 자다가 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은 그러려다가 이래저래 일찍 나갔는데…

어쨌든 그렇게 한계보다 조금 덜 마신 덕에 오늘은 생각외로 멀쩡했다. 술을 많이 마시고 들어오면 가방을 홀딱 뒤집어 뭔가 잃어버리지는 않았나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지난 번에 지갑을 잃어버리고 나서 한층 더 심해진 버릇이다. 아무 것도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도 하루 종일 불안해하는 버릇도 있다. 오늘은 그게 좀 덜했는데. 그건 내가 술을 마셔도 끈을 놓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게 꼭 좋은 건 아니다. 나도 좀 느슨해져야 가끔 살지 않겠는가. 보통 술자리가 있다면 그런 생각부터 하게 된다. 오늘도 잘 버텨보자…

배가 고파서 밥을 해 먹었는데, 냉장고에 반찬이 몇 가지라도 있으니 마음이 훨씬 덜 궁핍했다. 정말 1주일에 한 번이라도 반찬을 좀 해 놓아야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소파에 누워 책이나 비디오를 보다가 낮잠을 잤다. 난방을 틀어놓으면 소파로 따뜻한 온기가 올라와서 등이 따뜻해져서 좋다. 갑자기 냉장고에 상자째 사들인 레몬을 처리하기 위해서라도 뭔가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원래는 머랭파이를 만들까 했으나 머랭까지 올리기는 귀찮아서 타르트를 부랴부랴 구웠다. 피곤한데 가서 자야 되겠다.

 by bluexmas | 2010/11/21 00:37 | Life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