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우가-맛보다 맛을 찾는 방법론
갔다오자마자 쓰겠노라고 마음먹었던 글이 이렇게 늦어버린 건, 글이 얼마나 길어질지 너무나도 뻔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렇게 쓰지 못해 밤에 잠을 잘 수 없는 상황까지 간 다음에서야 쓰게 된다.
얼마 전, 가을소풍 삼아 횡성의 <우가>에 다녀왔다. 물론 가볍게 다녀올 수 없는 소풍이었기 때문에 마음을 먹고 가는데 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우가>가 뭐하는 집인지 내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 집에 대한 글, 아니 사실은 사진을 올렸을테니까. 대부분의 글, 아니 사진들을 보면 ‘이곳 사장님의 <철학>이 대단하다’는 말을 하는데, 내가 덜 찾아봐서 그런지 정작 그 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는 사람을 찾아보지 못했다. 이곳의 고기는 왜 웰던으로 먹어야 하는가? 손님에게 특정한 형식을 따라 먹어주기를 그렇게 적극적으로 원한다면 그 뒤에 깔려 있는 사고의 근거가 확실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그걸 알고 싶었다. 그래서 찾아간 자리에서 나는 무슨 양식 맛보기 코스를 먹듯 세 시간에 걸쳐 고기를 먹었다. 그때 들었던 바로 그 ‘철학’을 정리해본다. 앞으로 펼칠 이야기는 철저하게 <우가>사장님의 견해이다(굵은 글씨로 표기된 부분이 동의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나의 의견이다). 이걸 받아들일지 말지, 그 판단은 읽는 사람 마음이라고 노파심에 기대 미리 밝혀두기로 하겠다.
1. 왜 ‘웰던’인가?
서양, 특히 미국에서 고기를 위해 소비하는 앵거스 종의 경우, 한우와 비교해서 볼 때 근섬유가 더 굵다. 거기에 우리보다 고기를 많이 먹는 문화권이다 보니 대량 생산을 위해 소를 방목하게 되고, 놓아길러 운동을 많이 하면 근육, 즉 고기가 질겨 진다는 것이다(기본적으로 같은 동물에서도 운동을 많이 한 부위는 질기고, 안 한 부위는 연하다). 이를 스테이크라는 형식으로 구워 먹을 경우, 끝까지 바싹 익히면 당연히 질겨진다 것. 이를 보완하기 위해 스테이크를 구울 때 높은 열로 겉은 바싹 익히고 속은 덜 익혀 식감의 대비를 주는 조리방법을 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대비되는 식감의 고기를 함께 먹으면 맛은 익은 부분에서, 식감은 덜 익은 부분에서 느끼게 된다. 요즘의 소, 특히 한우의 경우에는 그런 정도로 방목을 하지 않고 지방의 비율(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우의 올레인산 비율이 와규를 제외한 미산 또는 호주산 소에 비해 높다고 한다)이 높기 때문에 웰던으로 익혀도 질겨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2. 그렇다면 왜 덜 익히는 것이 문제인가?
인류는 불을 사용해 음식을 익혀먹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불에 익히면 맛이 좋아지기 때문이다(언제나 논란이 되는 ‘겉면 지져 육즙 가두기’와 같은 경우도 사실, 몇 번을 글을 통해 언급했지만 단백질을 방수처리하는 과정이 아니다. 카라멜화의 일종인 마이야르 반응으로 인해 그 맛이 좋아지는 것뿐이다. 이에 대해 <우가>의 사장님은 ‘어느 정도 그런 효과도 있다’라고 언급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건 정말 실험을 통해 밝혀야 하는데, 누군가 벌써 실험을 하기는 했을 듯?). 열을 가해서 맛을 발달시키는 것이다. 밥을 태우기 직전까지 가열해서 만든 누룽지나, 식빵 또는 빈대떡에서 노릇노릇하게 구운 부분이 맛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치에 기댄 것이다.
그렇다면 회를 날로 먹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 또한 어느 정도는 식감에 기대는 것이다. 지방 함유랄지 기타 이유로 육질이 전혀 다른 몇 가지 종류의 생선을 골라 아예 식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갈아버린 다음 눈을 가리고 맛을 본다면 그 맛의 차이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려낼 것인가? 결국 안 익힌 음식은 식감에서 우월할 수 있지만 맛은 익힌 음식에 비해 못 미친다는 것이다.
3. 그래서 익히거나 익히지 않은 고기에서 어떠한 맛의 차이가 있다는 것인가?
고기의 맛에 대해서 언급하기 전에, 그 맛을 발달시키는 숙성에 대해서 먼저 짚고 넘어가는 것이 맞는 순서라고 생각한다. 동물성 단백질을 잡자마자 먹는 것은 맛의 측면에서는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일단 사후강직이 일어나기 때문에 식감이 떨어지고, 숙성을 통해 맛이 발달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숙성했을 경우 맛이 발달되는가? 카뎁신이라는 효소는 온도, 공기, 습도가 맞을 경우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하고 지방을 올레인산으로 분리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이 숙성이고 이를 통해 아미노산과 올레인산이 발달되는데, 올레인산은 고소한 맛을 책임진다.
보충 설명을 위해 해롤드 매기의 책을 찾아보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고기의 숙성은 근육에 있는 효소의 작용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물이 도살되면 세포가 기능을 멈추는데, 효소가 다른 세포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무미의 큰 분자를 맛을 지닌 작은 분자로 변환시킨다. 그리하여 단백질은 감칠맛(savory)이 나는 아미노산으로, 글리코겐을 단맛이 나는 포도당으로, 그리고 ATP를 역시 감칠맛이 나는 IMP(Inosine Monophosphate, 이노신산)으로 분해한다. 또한 지방은 향이 풍부한 지방산으로 분해한다. 조리 과정에서 이 분해된 성분들이 열로 인해 서로 반응해서 새로운 분자를 만들어 내고, 이는 고기의 향을 한층 더 강화시킨다.
육질의 측면에서는 칼페인이라는 효소가 근섬유를 지지하는 단백질을 약화시키는 한편, 카뎁신이 같은 단백질을 분해하는 동시에 근섬유에 있는 콜라겐의 연결 고리를 끊는다. 이는 고기를 조리할 때 콜라겐을 젤라틴으로 바꾸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칼페인은 섭씨 40도, 카뎁신은 50도에서 활동을 멈추는데 이보다 낮은 온도 범위에서는 높을수록 활발하게 숙성과정을 진행시킨다.
가정교과서에서도 나온다는, 도살 후 1주일은 숙성의 시작이고 보통 고기의 맛이 들기 시작하는 시점은 2주 정도이며 21일에서 25일 사이에 그 절정을 이루고 그 이후로 급격히 떨어진다고 한다. 보통 건식 숙성(Dry Aging)과 습식 숙성(Wet Aging)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우가>에서 쓰는 숙성 방식은 한마디로 그 둘을 합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론적으로 안다고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여기에 들은 걸 낱낱이 펼쳐 놓아도 되지만 귀찮아서 그러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요점만 말하자면, 이 숙성방식은 습식 숙성에서 효소의 작용이 원하는 만큼 적극적이지 못한 단점과 건식 숙성에서 겉면에 곰팡이가 슨다거나 해서 손실이 나는 두 가지 모두를 상호 보완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걸 딱히 ‘고기의 맛’이라고 한정지어 생각할 필요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기의 맛은 과학적인 분류방법을 따라 네 가지로 분류된다. 고소한 맛, 신맛, 단맛, “크리미” 한 맛(이는 결국 우마미라고 생각한다)이 바로 그것이다. 입 안에서 맛이 찾아오는 순서는 일단 고소한 맛이 먼저 찾아오는데 그 위로 신맛이 맴돈다. 계속 씹으면 곧 단맛이 찾아온다. 그리고 고기를 계속 씹으면 마지막에 침샘을 통해 “크리미”한 맛이 쭉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 들게 된다.
맛을 비교해준다는 의도 아래 일단 살짝 익힌 고기를 먹어본다(내가 먹은 건 16일 숙성된 것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이 점은 불만이었다. 1주일 전에 예약을 했는데, 아마 그보다 더 빨리 해야 할 듯?). 고소한 맛과 그 위로 맴도는 신맛이 압도적이다. 차츰 더 익힌 고기를 먹을수록 신맛의 비율이 떨어지고 고소한 맛에서 단맛으로 넘어가는 시기가 빨라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크리미”한 맛의 여운이 남는데, 이게 갈수록 길어지게 된다. 1센티미터 정도의 두께로 잘라 끝까지 바싹 익힌 고기는 나의 기대와는 달리 전혀 질기지 않았다.
이것으로 나름 고통스러운(;;) 맛보기의 과정이 끝나고, 그 뒤로는 고기 먹기에 박차를 가했다. 반찬의 종류도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그것도 사실 먹을 필요를 많이 느끼지 못했다. 김치에서는 마늘 냄새가 두드러지는 편이어서 고기랑 어울린다는 생각이 안 들었고, 동치미는 너무 달았다(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사장님과 나눈 이야기가 있는데 굳이 여기에 쓸 필요는 없을 듯). 고기판에 파를 올렸다가 먹는데, 이게 그냥 파의 수분에 의해 익는 것이라 딱히 곁들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냥 소금과 그게 심심하면 같이 나온 간장 정도면 질리지 않고 한참 동안 먹을 수 있는 고기였다.
<우가>에 간 사람이라면 누구나 먹는 차돌박이 초밥을 시켰다. 일단 차돌박이 자체에 다른 곳에서 먹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단맛과 감칠맛이 깃들어 있었는데, 차돌박이의 천성이라고 할 수 있는 기름진 맛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초밥을 곁들이는 건 일단 맛의 균형면에서 좋은 선택이었다. 거기에 찬밥과 갓 구운 뜨거운 고기의 대조 역시 훌륭했다. 다른 블로그에서 들었던 것처럼 생 와사비와 가루 와사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생와사비의 향이 뛰어난 대신 농축된 느낌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보았을 때, 흔히 짝을 지어주는 생선보다 훨씬 더 강하고 기름진 맛의 차돌박이라면 차라리 가루 와사비를 쓰는 것이 더 이성적인 선택이라는 데 동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온 토장찌개. 정말 보기와는 달리 전혀 짜지 않는데, 이는 장을 담근 뒤 간장을 따로 걸러내지 않은 상태에서 그 다음해에 콩만 다시 삶아 덧장을 하는 방식으로 만들어 간을 맞추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름진 고기를 먹은 다음 된장찌개 정도만으로도 균형을 잡아주는 마무리가 될 수 있는데, 토장의 경우 간장의 그 찝찔함, 또는 시큼함이 좋은 느낌으로 살아있어 훨씬 더 적절한 식사의 마무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많은 고깃집에서 마지막에 내오는 된장찌개가 그저 모든 재료를 섞어 센 불에서 한 번 부글부글 끓여낸, 그래서 재료가 어우러진 맛도 안 나고 감자며 양파가 설컹거릴 정도로 설익은 것들인데 반해 <우가>의 찌개는 모든 재료가 적절한 수준으로 잘 익어 있었다. 그게 뭐 그리 대수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세 시간에 걸쳐 고기를 먹고 집에 오는 길에 들었던 생각은, 이것은 철학이 아니라 과학이라는 점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우가>에서 고기의 맛에 접근할 때 쓰는 방법론은 이미 과학적인 연구에 의해 검증된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결국 <우가>에서 먹을 수 있는 고기의 본질은 가짜 아닌 진짜 분자요리의 본질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음식의 종류를 불문하고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 자체가 크게 화젯거리가 되어야 하는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우가>에서 가지고 있는 노하우의 가치는 뛰어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갖추기가 불가능한 것도 전혀 아니다. 그 노하우라는 결과도 중요하겠지만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이나, 그 과정에서 사용된 방법론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음식, 또는 조리=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게 틀린 건 아니지만, 그 감을 뒷받침 해 주거나 시너지 효과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이론, 특히 과학의 존재에 대해 사람들은 너무 둔감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언제나 예산부족에 시달리기 때문에 이런 집들을 자주 찾아다니지 못하는 내가 잘 모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만큼 재료와 자기가 내는 음식에 대해서 철저하게 이해하고 접근하는 사람을 찾기란 식종(食種)을 불문하고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족 1: 이보다 더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지만, 쓰기도 전에 지쳐버려서 일단 꼭 필요한 부분만 정리했다.
*사족 2: 사장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맛은 객관적인 영역에 있다’ 라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맛 자체를 느끼는 건 생리학 또는 의학에 기댄, 철저하게 객관적인 과정이다. 다만 이를 해석하는 과정이 주관적일 뿐. 이에 대해서는 곧 글을 쓰기로 하겠다(맨날 이렇게 말만…;;;).
*사족 3: 기본적으로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쓰는 집이지만, 특히 소금이 마음에 들었다. 기억이 좀 가물가물하는데, 구운 다음 말차가루를 써서 단맛을 살짝 더한다고.
*사족 4: 이곳 사장님의 “강의” 방식이나 태도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데, 만약 이 양반이 무슨 호텔의 조리명장이라거나 아니면 그런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그만큼 불만을 가질까? 물론 음식을 앞에 놓고 있으면 배고프니 빨리 먹고 싶기도 하고, 또 왕 노릇하고 싶으니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거슬릴 수는 있다. 하지만 돈 내고 고기 먹으면서 공짜 지식을 얻는 셈인데… 물론 사장님의 발화 방식이 좀 부담스럽게 다가올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양식당에서 소믈리한테 포도주의 궁합을 물어본다거나, 오늘의 메뉴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거나 할때는 또 그보다 덜 거부감을 보이겠지?
횡성, 우가, 쇠고기, 한우, 꽃등심, 차돌박이, 숙성, 스테이크
# by bluexmas | 2010/11/17 12:25 | Taste | 트랙백 | 핑백(1) | 덧글(20)
Linked at The Note of Thir.. at 2010/12/31 22:47
… 동] B Pot-단골 삼고 싶은 카페가장 많이 추천 받은 글 [횡성]우가-맛보다 맛을 찾는 방법론 … more
어찌되었건 중요한건..고기가 너무 땡긴다는거.ㅠㅠ
수많은 튀김을 봐도 그렇고…
비공개 덧글입니다.
맛은 객관적인 영역에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더 듣고 싶네요. 글을 더 쓰신다니까 ㅎㅎ
저 사장님께서 실제 black angus류를 구하셔서 같이 비교해주시면 학술적인 맛의 방법론에서 더욱 의미있지 않을까 싶내요.
한우는 well done으로 angus는 rare(우리나라분들은 피 뚝뚝 떨어지는 거 싫어하니 medium)으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