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의 낮술(22)-알바리뇨와 홍합, 연어

짐더미에 이 술이 있는 걸 발견하고는 사실 경악했었다. 내 졸저에 보면 저 땅에서의 마지막 날 싸구려 모텔에서 마시다가 맛없어서 남긴 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게 바로 이 술이었던 것… 마지막으로 마셔야지, 라며 아무데서나 아무 생각도 없이 샀는데 짐을 보낼 때 추천받은 것들 가운데 한 병이었던 것이다. 기억하기로 이건 정말 이상했다. 넓을 것 같으나 넓지 않고, 시지 않을 것 같으나 신맛도 살짝 치고 올라오는 등, 전체적인 맛의 조합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어쨌든, 그런 기억을 버리고 맛있게 먹어보기로 한다. 딱지에도 붙어 있지만, 이 포도 품종의 이름은 알바리뇨(Albariño),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의 북서쪽에서 많이 나고, 주로 백포도주를 만든다고 한다. 찾아보니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귀찮으니까 일단 건너뛰고… 홍합이나 연어와 잘 어울린다고 하니 그 둘을 한꺼번에 준비한다.

이제 슬슬 홍합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철이 다가온다. 이번에 홍합을 먹어보니 아직 시간이 살짝 더 필요할 듯. 씨알이 조금 더 굵어야 할 것 같다. 찔까 직접 끓일까 잠시 고민하다가 직접 끓인다. 마늘과 샬럿, 파를 버터와 올리브 기름에 볶다가 홍합을 넣고 같이 볶아서 열릴 기미가 보이면 물을 적당히 넣고 열릴 때까지만 끓인다.

마침 아침 방송을 잠깐 틀었는데, 홍합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나왔다. 당연히 연예인 일색인 출연진이 맛있는 음식을 먹는 기쁨에 당장 옷이라도 홀딱 벗고 춤을 출 것 같은 표정과 말투로 “홍합 진짜 맛있어요 쫄깃쫄깃한게!”라고 외쳐대는데 솔직히 어이없었다. 아무리 우리나라 사람들이 쫄깃한 식감을 좋아한다고 해도 홍합마저 쫄깃하냐? 만약 홍합이 쫄깃하다면 그건 너무 익힌 거다. 제대로 익힌 홍합은 조개보다 훨씬 더 “크리미”하다. 그래서 서양에서 홍합을 더 좋아하는 것이다. 조개는 웬만하면 질겨지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쫄깃쫄깃한 거 너무 좋아한다. 쫄깃거리는 건 다 씹지 못하고 삼킬 확률도 높다는 건 아나. 참고로 내가 끓인 홍합도 살짝 쫄깃거렸다. 오래 끓였다는 얘기.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씨알도 너무 잘아서.

그리고 거기에 무슨 셰프라는 젊은 남자가 나와서 음식을 만들어주는데, 이게 또 가관이었다. 홍합을 무슨 깨수제비로 싼 뒤 무청으로 감아서 끓이는데 거기에다가 또 오뎅까지… 마지막에 넣은, 홍합을 속에 터질세라 채운 오징어는 그래도 애교로 봐줄만 했다. 어쨌든, 홍합을 홍합으로 놓아두지 않고 온갖 고문을 가한 그는 인터넷에서 프로필을 찾아보니 이탈리아 음식을 주로 만드는 셰프라고 했다. 홍합과 깨수제비… 일견 파스타의 변형 같아 보이기도 한다. 파스타의 종류가 워낙 무궁무진하니 내가 모르는 것도 많을 테니까.

5분만에 홍합을 끓여 먹고, 연어크림 파스타를 만든다. 사실 크림파스타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크림파스타가 아닌 크림수프파스타를 너무 많이 봐서 그렇다. 웰던으로 퍼석퍼석하게 익힌, 비린내 물씬 풍겨보이는 연어조각을 질척질척한 크림 국물에 만 연어크림파스타가 신촌과 이대를 중심으로 전염병처럼 전국에 퍼지는 듯한…

일단 연어를 굽는다. 목표는 레어에서 미디엄 사이. 2센티미터 정도 두께의 연어를 굽는다고 하면, 팬에 연어를 올려 바닥에서 1/3이 정도 익어 올라오면 뒤집고, 반대편도 똑같이 한 뒤 불에서 내린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온 기름에 마늘과 샬럿 등등을 볶는다. 내키면 버터도 조금 섞는다. 마늘이 적당히 익으면 크림을 자작자작할 정도로만 넣고 불을 줄여 끓인다. 물론 그 사이에 끓는 물에 소금을 넉넉히 더해 면을 삶는다. 면이 익으면 건져 바로 팬에 넣고, 조금 말랐다 싶으면 바로 전에 먹은 홍합의 국물을 더한다(원래는 면 삶은 물). 마지막에 연어를 다시 넣어 맛이 어우러지게 잘 섞어준다. 연어의 식감이 크림보다 많이 두드러지면 너무 익어서 실패한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술은 좀 이상하다. 색깔도 옅은 호박색에 가깝다. 맛과 향은… 어째 싸서 가끔 마시는 론 백포도주와도 조금 더 비슷하지만 살짝 얇은 느낌이다. 많이 시지 않을 것 같은데, 가운데에서 탁 치고 올라오는 느낌이 있다. 이런 종류의 포도주가 해산물과 잘 어울리는 이유는 많은 해산물들이 가지고 있는 그, 바닥에 깔리는 flavor profile을 상큼함이 바탕을 이루는 신맛으로 균형 잡아주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얼마전 이노시시에 갔다온 걸 바탕으로 글을 한 번 올려 볼 생각이다.

마트에 유채가 있기에 맛이 어떨까 사와 봤다. 눈으로 보면서 예상했던 것처럼 쓴 맛은 전혀 없었다. 적당히 상큼한 정도였다. 삼겹살에 주니퍼베리와 소금 후추, 월계수잎을 대강 버무려 약식으로 팬체타 비슷한 걸 만들어 냉장고에 며칠 두었다가 기름이 조금 빠질 정도로만 구워 냉동시켜두었는데, 그걸 볶아 기름을 내어 레몬즙으로 비니그렛을 만들었다.

디저트 없이는 코스라고 할 수 없다. 대미를 장식한 건 북해도산 단호박으로 만든 파이. 이건 다음 포스팅. 뭐 이렇게 먹었다. 음식이 있어서 그런지 술도 좋았다. 조금 더 빨리 마셨어야 되는 건 아닌가 생각도 들었지만 뭐…

 by bluexmas | 2010/11/16 10:02 | Taste | 트랙백 | 덧글(20)

 Commented by leinon at 2010/11/16 10:05 

알바리뇨 품종의 백포도주는 숙성시키지 않고 바로 마시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숙성시켜도 되는 것이 일부 있긴 하나, 저 와인은 그렇지 않고 2007 빈티지면, 너무 오래되었습니다^^;;

맛의 균형이 깨진 것이 당연합니다. 겉절이를 세 달 묵혀 드신 것 같은 일이니까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1/17 01:19

아 네^^

 Commented at 2010/11/16 10:1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1/22 11:21

아 저 파이는 만들기가 너무 번거로워서 당분간은 만들게 되지 않을거에요ㅠㅠ 너무 손이 많이 가더라구요.

 Commented at 2010/11/16 10:4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1/22 11:21

네 맞습니다 어깨 때문이지요^^

 Commented by 대건 at 2010/11/16 11:09 

아우, 술은 잘 모르겠지만, 연어크림스파게티는 정말 맛있어보입니다.

언젠가 주말에 한번 도전해 봐야겠네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1/22 11:21

네, 연어를 많이 익히시지만 않으면 될 거에요. 파스타라는 음식이 딱히 만들기 어렵지는 않지요 정말…

 Commented by drtrue at 2010/11/16 11:25 

홍합 물이 안 좋아서 한참 끓였나보죠 ㅋㅋㅋ 아직 마트에서 파는 홍합들은 알이 좀 작죠?

& 판체타로 저렇게 해먹을수가 있군요… 퇴근할때 겨자잎좀 사서 해봐야겠어요. 맛있겠다… 아 퇴근퇴근 ㅠ.ㅜ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1/22 11:22

네 겨자잎도 좋고 시금치도 좋고 아예 야채도 살짝 볶아 먹어도 되구요. 점심에는 시금치를 그렇게 먹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Commented by 나녹 at 2010/11/16 12:40 

집에서 먹어도 한 코스네요! 저도 내일 점심으로 파스타 싸갑니다 ㅋ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1/22 11:22

네 뭐 가끔 해먹는 거 여유 있을때 갖춰 놓고 먹는게 좋더라구요.

 Commented by JuNeAxe at 2010/11/16 15:52 

버터와 크림을 아끼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나기는 하지만,

소스가 꼭 국물처럼 넘쳐나는거 보면 참… 이것보다 적어도 될텐데 싶어도 꼭 남는 데가 많더라고요.

음식프로에 꼭 나오는 설명은 쫄깃하다 담백하다… 시뻘건 해물탕을 먹으면서도 담백하다는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1/22 11:23

그러니까요 왜 국물을 그렇게 질척하게 만들어서 먹는지 저는 이해가 잘 안 가요. 시뻘건 해물탕도 담백한가부죠 뭐. 정확하게 담백한 맛이 뭔지 모르는 모양이에요.

 Commented by 민짱 at 2010/11/16 21:09 

우와 정말 맛있겠어요… 부러워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1/22 11:23

아이고 별 말씀을요;;;;

 Commented by 풍금소리 at 2010/11/16 21:52 

어우…….저 파스타와 홍합…배가 잔뜩 부른데도 군침이…

제가 이래서 살을 못빼나 봐요.

뇌끼리도 이렇게 협조가 안되어서야 원.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1/22 11:24

먹으면 계속 들어갑니다. 저도 그래서 살을 못 빼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_-

 Commented by 홈요리튜나 at 2010/11/17 00:18 

저 술로 홍합찜을 만들면 괜찮지 않을까요

근데 블루마스님 가스렌지는 저 지저분함이 관록처럼 느껴져서 왠지 멋져요 헐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1/22 11:25

홍합찜도 좋죠. 그럴 경우 조금 더 싼 술을 삽니다. 포도주라는 게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비싸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