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우물

그 우물의 존재를 믿는 사람의 비율은 아주 적다고 알려져 있다. 혹자는 미련이 많은 사람일수록 존재와 크기, 또는 깊이 면에서 확률이 높다고 이야기하는데 대개들 믿는 눈치이다. 아마 그가 스물 셋부터 알콜 중독이 되어 시도 때도 없이 술병을 끼고 다니면서, 물론 취한 채로 주절거리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사람이 믿었을 것이다. 그는 지금, 예순 둘이다.

우물은 기본적으로 꽤 깊다. 두레박을 내려도 내려도 끝도 없는 것처럼 내려가서, 자기 안에서 그 존재를 발견한 사람이라도 웬만큼 긴 줄을 두레박에 달지 않으면 닿기조차 어렵다. 물론 닿는다고 해서 뾰족한 발견이 영겁의 세월을 기다리고 있다가 두레박을 반겨주는 것은 아니다. 우물은 겉보기에 말라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기까지 시도하고는 두레박을 걷어 올리는데, 미련이 많은 사람들은 두레박을 높이 들어 바닥을 내려친다. 그러면 크림 브륄레 위의 그 태운 설탕이 쪼개지는 것처럼 파삭,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이 쪼개지는데, 두레박을 퍼올리면 빨갛고 살짝 걸쭉한 액체가 담겨 올라온다. 그래서 엄마들은 상처에 딱지가 앉으면 가렵더라도 긁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새를 못 참고 긁는다. 결과는 물론 뻔하다. 새살이 반, 흉터가 반이다. 설익은 새살이 흉터의 형태로 남는다.

거기까지 보았음에도 미련을 채우기 못한 사람은 빨간 물이 안 나올때까지 두레박으로 길어 올리는데, 그럼 모두가 예상한 것처럼 까만 물이 나온다. 그 색깔이 말해주는 바를 재빨리 눈치채고 물을 들이키는 사람은 원하는 바를 얻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까만 물까지 계속해서 퍼올리는 사람은 두레박이 정말 바닥을 친 다음 여태껏 열심히 자기 속을 긁어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긁힌 속은 아파서 후회스럽다. 후회할 걸 뭐하러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사람들은 후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매달린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사람들은 상처받거나 받지 않는 경계선에서 줄타기하는 것을 즐긴다. 그래서 그가 스물 셋부터 알콜 중독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바닥까지 파고 난 다음, 마지막으로 올라오는 한 두레박의 맑은 물을 마셨다는 것이다. 물처럼 맑은 술을 마시고 그 이후로 그는 물 대신 술만을 찾았다. 그 물에서 술맛이 났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 말고는 미련의 힘에 이끌려 그만큼 깊이 파들어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아무도 장담은 하지 못한다. 그가 취한 채로 주절거리지만 않았더라면 더 많은 사람이 그의 말을 믿었을 것이다.

 by bluexmas | 2010/11/13 00:34 |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by 풍금소리 at 2010/11/13 12:52 

기억의 우물에 두레박이라니…

어디선가 책에서 대했던 것 같은 비유입니다.

이 글에 아무도 코멘타리를 달지 않은 이유는 너무 어려워서인가.

(블루마스님의 소설 인가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1/14 00:38

그러게요, 어디에선가 본 비유일지도 모르겠어요.

원래 이런 글에는 답글이 잘 달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쓰기 민망할 때도 많아요 사실. 글쎄 뭐 당황하시는 분들도 있을 듯…

소설이라 말하기는 뭐하고 그냥 거기 가기 위한 연습이나 뭐 그런 것 아닐까요…

 Commented by settler at 2010/11/14 00:09 

이상하게 찔리는 글이네요 전 술도 안 먹는데요

기억을 집요하게 시추하기도 하지만 어쩔 땐 기억들이 도처에 머물다

막 덮쳐들지요…괴롭고도 충만한 방식의 삶인 듯.

이런 글 좋아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1/14 00:39

기억이 무섭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구요. 얼마만큼 살다보면 ‘이런 기억이 나를 힘들게 만들테니 만들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고 경계하지만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기도 하잖아요…